‘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그림이 있다. 하얀 목련꽃 뒤에 서 있는 한복 입은 소녀로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김 할머니가 피지 못한 목련을 자신과 동일시해 그린 이 그림은, 소녀의 알 수 없는 표정에서 풍기는 애잔한 정서가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김 할머니가 그림을 그린 건 1990년대에 ‘나눔의 집’을 찾아온 젊은 미술가 이경신을 만나면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화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씨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할머니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글도 모르던 할머니들에게 생소한 붓을 들려주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가 할머니들과 함께한 미술수업 이야기를 담은 (휴머니스트 펴냄)을 펴냈다. 20여 년 전 이야기를 지금에야 꺼낸 건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가 계기가 됐다. 고통받는 할머니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서문에 적었다.
책은 할머니들과의 서먹했던 첫 만남부터 난생처음 붓을 잡아본 할머니들의 그림 배우기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와 고통이 어떻게 그림으로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하얀 캔버스에 조심스럽게 일본군, 소녀, 꽃, 나무, 배를 그려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목소리 증언 못지않게 강렬하다.
할머니들과 미술수업을 하면서 지은이가 가장 힘들었던 건 할머니들의 상처를 그림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심리적 회복은 지난하고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어서 그걸 마주해 그림으로 그려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할머니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수업에 적응해갔다. “외향적인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드러냈다. 조용한 몸짓에 말수가 유난히 적은 강덕경 할머니는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를 동경했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그림에는 새가 많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은 그림으로 점점 자신감을 얻었고, 그것이 할머니들의 삶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할머니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였다. 마음 붙일 대상이 하나라도 있으면 힘이 나듯, 할머니들에게 그림은 취미이자 놀이가 됐다. 지은이는 “고통을 그림으로 그려낸다고 해서 상처가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외면하던 고통을 마주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한 방편이 되었음을, 할머니들과의 미술수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의 만행과 피해를 고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에 제정됐는데, 올해부터는 국가기념일이 됐다.
일본의 진실한 사과 하나 받지 못하고 시간만 야속하게 흘러 올해만 8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책에 등장한 강덕경, 김순덕, 이용녀 할머니도 유명을 달리하셨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7명뿐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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