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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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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세요, 저 상처받았어요

외모에 꽂히는 모욕…

상처받고도 괜찮은 척했던 날들이 수치스럽다
등록 2018-07-24 16:12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여드름. 이 세 글자를 쓰는 게 괴로워 냉동실을 다 뒤집어 청소하고 다이소에서 붙일 데도 없는 스티커 따위를 12개나 사고 말았다. 이 세 글자를 쓸 때마다 수치심이 올라온다.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사실이 또 수치스럽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무단 침입한 여드름은 첫 직장 다닐 때 창궐했다. 여드름은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어서 옵쇼. 모욕과 무례를 환영합니다.’ 모욕은 항상 우스개로 위장했다. 그러니 정색하고 항의도 못한다. 그랬다간 분위기를 깨거나, 농담 ‘따위’에 분기탱천하는 속 좁은 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깟 걸로’ 상처 안 받은 척했다. 나는 지적인 여자여야 하니까, 되레 내가 먼저 자폭하는 경우도 많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내 피부에 꽂혔던 낱말들을 기억하고 그때마다 수치스럽다. 몸에 대한 모욕은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겼는데, 나는 상처를 상처라고 인정할 자유마저 잃어버렸다.

상처받을 자유마저 앗아간

2002년 월드컵 때는 최악이었다. 나는 아마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지 않기를 바라는 유일한 한국인이었을 테다. 박지성 선수도 당시 여드름이 있었는데, 다들 날 닮았다고 했다. 박 선수가 골을 넣거나 좋은 도움을 한 다음 날이면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내 고난이 시작됐다. “어제 좋았어!” 그럼 또 내가 막 웃는다. “잘했으니 밥 사주세요.” 혹시 그럴 리 없겠지만 박지성 선수가 기분 상할까 덧붙이자면, 나는 여자다. 게다가 축구도 못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자인 내가 박 선수만큼 축구를 잘했던들 여드름이라는 외모의 ‘흉’을 덮지는 못했다는 데 전 재산의 절반을 건다. 그래 봤자 얼마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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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뾰루지가 났어?” 자꾸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내가 피부과 전문의인가. 그런데 또 설명을 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았나봐.” 마치 내 잘못인 듯 나는 자꾸 해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대체 왜 나는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수치스러워하나?

남성은 정신, 여성은 육체라는 이분법의 역사는 유구하다. 클로딘느 사게르가 쓴 를 보면 17세기까지 질료이자 ‘몸’인 여성은 존재 자체로 추했다. 근대 들어서면서 ‘미래의 어머니가 될’ 여성은 추함의 굴레를 벗었다. 그리고 21세기, “여성은 오롯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지만 외양이라는 또 다른 폭군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여성은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외모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게으르고 무례하고 자기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추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대에 올라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보이면 ‘성괴’라고 놀린다. 활어냐 양식어냐 횟감을 고르는 시선이다.

‘추함’은 폭력을 동반한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를 보면, 남성 기득권을 위협하는 모든 여자는 추했다. 아이와 남편 없이 독립적으로 살며, 식물과 몸에 대한 지식을 가진 여자인 마녀들은 실제 외양이 어떠했건 추한 여자로 그려졌다. 근대 들어 학구열을 가진 여자들은 프랑스에서 ‘파란 스타킹’으로 불렸는데 이들에 대한 묘사는 하나같이 추하다. 그리고 ‘추함’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그들은 타죽고, 격리되고, 모욕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추한 여자의 24시간 CCTV

“하나같이 추한 이목구비에, 목소리가 걸걸하거나 미친 사람 같다.” 19세기 피에르 프랑수아 티소가 프랑스대혁명에 참가한 여성을 묘사한 문장이란다. 많이 듣던 소리다. 요즘 페미니스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된다. 200년이 지나도 ‘추함’의 작동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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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함’은 잔인하다. 가해자는 아무런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책임은 ‘추한 자’로 지목된 피해자가 진다. 더 끔찍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자신의 시선이 돼버린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선이니 도망갈 곳 없는 24시간 폐회로텔레비전(CCTV)인 셈이다.

이 CCTV 감시에 갇혀 내 몸인데 내 몸처럼 움직이지도 못했다. 몇 달 전 춤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내 몸이 내 감옥이 돼버렸다는 걸 알았다. 첫 시간 60대부터 10대까지 10여 명이 둥그렇게 둘러섰다. 선생님이 발로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했다. 한 20대 여자는 발을 동동 구르더니만 아예 주저앉아 꿈틀거리며 이름을 말했다. 멋있었다. 60대 남자는 펄쩍 뛰며 두 발로 짝짝이를 쳤다. 멋있었다. 신발을 신고 도망가는 걸로 자기소개를 하고 싶었던 나는 겨우 발을 앞뒤로 한 번씩 내밀고는 내 차례가 끝난 것에 안도했다. 발을 2㎝ 내미는데 내 시선은 내 내부가 아니라 나에게 꽂힐지 모르는 타인의 시선에 가 있었다. 그 워크숍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지난 7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영화 속 털북숭이 ‘츄이’ 같은 사람을 봤다. 삼복더위에 온몸에 대걸레 같은 걸 달았다. 공룡 두 마리, 속눈썹을 무지개 색깔로 염색하고 반짝이는 먼지떨이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여자, 검은 망사 티셔츠를 입은 남자, 수많은 몸이 있었다. 폭염과 음악이 쏟아졌다. 뇌가 기포가 될 것 같았다. 집요했던 시선의 빗장도 흐물거렸다. 퍼레이드 차량을 털북숭이 츄이, 먼지털이 치마, 공룡, 전동휠체어, 여자, 남자, 인간들이 따라갔다. 종로 찻길을 함께 걸었다. 땀이 솟구쳤다. 그 위로 바람이 스쳤다. 눈에 하늘의 파란색이 쏟아졌다. 내 몸에 스미는 세상을 감각할 수 있었다. 같이 춤추고 싶었다. 364일, 거리는 서구형 미인들을 내건 광고판들 차지 아니었나. 내 ‘원죄’를 들먹이는 ‘기준’들 말이다. 1년의 하루, 그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시선의 독재를 비껴가는 해방감을 맛봤다.

내 몸의 종전은 언제일까

친구와 내년에는 옷장에 처박아두고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옷을 입고 오자고 했다. 어깨가 확 드러나는 공주풍 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흔들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안다. 내년에 그리 못할 거다. 몸은 치열한 전쟁터이고, 나는 이미 시선의 포로다. 이걸 뚫고 나가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안다. 그래도 내 인생의 주인까지는 탐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몸의 주인으로 살아보고 싶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 지난한 여정을 여드름에 꽂혔던 시선이 나에게는 상처였다는 걸 자신에게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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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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