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살 아버지가 새로 산 휴대전화를 들고 몸부림 중이다. “하이 빅스비, 김소민에게 반갑다고 문자 보내줘.” 아버지는 옆방에 있는 나한테 물었다. “문자 갔냐?” “안 왔어요.” “하이 빅스비, 문자 보내주세요.” “안 왔다니까요.” “빅스비, 문자 보내!” “안 왔어요.” “빅스비! 이제 불러도 대답도 안 하네. 지랄하네. 내가 너무 많이 불러댔나?” 부엌에 있던 엄마는 구시렁거렸다. “전화 올 데도 없는 양반이 비싼 휴대전화는 사서….” 나는 전화 올 데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가 ‘빅스비’를 샀다고 생각했다.
요즘에야 아버지가 궁금해졌다40년 넘게, 이 ‘빅스비’를 애타게 찾는 경상도 남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씨앗에서 거대한 블랙홀이 싹텄다. 아무한테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고 허겁지겁 빨아들이는 그 블랙홀에 수많은 타인이 제물이 됐다. 그 재물에 나 자신도 포함됐다는 걸 조금씩 깨닫는 요즘에야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종로3가 구경시켜주세요.” 일 없는 아버지가 시간을 때운다는 곳이다. 이 말을 할 때까지 진짜 용기가 필요했다.
평생 말이라곤 “다녀올게요”와 “다녀왔습니다” 말고는 섞을 생각도 않던 딸이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니 아버지는 어색해했다. 탑골공원 앞에서 만난 그는 여행가이드 같았다. 공원 안 팔각정에는 할아버지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서로 친한 것 같지는 않았다. 계단에 앉은 한 노인은 신발을 벗은 채 졸았다. 오다리를 뻗고 있다. 영화 에 나올 듯한 선글라스를 낀 아버지는 의기양양해 보였다. “에~, 그러니까 이건 원각사지10층석탑이다.” “아, 오래됐네요.” 아버지는 공원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원래는 여기 벤치가 많았는데, 그 뭐랄까, 노인네들이 서로 꾀기도 하고, 뭐랄까, 퇴폐랄까. 하여간 유적지 분위기를 해친다고 벤치를 다 없앴다.” “퇴폐는 아닌 거 같은데….” “뭐, 그렇게 됐다. 그래서 저렇게 층계나 돌덩이 위에 앉아 있다.” 정원을 꾸미는 돌들을 할아버지 한 명씩 차지하고 있다. 한국 노인판 ‘생각하는 사람’ 조각같이 꿈쩍을 안 한다.
“여기는 송해 거리다.” 탑골공원 옆 골목길 초입엔 정자가 있는데 송해 얼굴을 그려넣은 푯말이 보였다. 왜 하필 송해인지 아버지는 모른다고 했다. ‘홍콩가’ ‘차차차’… 그 거리엔 한두 집 걸러 노래방이 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맛집”이라는 펼침막을 내건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노인들 사이에 부킹도 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며 입구만 보여주겠다고 했다. “부킹해보셨어요?” “들은 이야기다.” “혹시 말 거는 할머니들 있어요?” “있다.” “무슨 말 하셨어요?” “할마씨가 뭐라뭐라 하던데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냥 왔다.” 아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는 건 사실일 거다. 이발관은 커트가 4천원이었다. “원래는 3천원인데 올랐다”고 아버지는 아쉬워했다. 송해 거리에서 아버지가 주로 가는 곳은 ‘고석인 팬클럽’(고석인이 누굴까?) 근처 기원들이다. 4천원을 내면 오전 10시부터 밤까지 들락날락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 기원을 가리키며 “저기는 이제 못 간다”고 말했다. 바둑 두다 싸웠단다.
“돈이 없어서 네 돌상을 높이 못 올려줬다”짬뽕을 먹고 피카디리극장까지 걸었다. 아버지는 노인은 영화 한 편에 4천원이라며 걸린 영화는 혼자 다 봤다고 했다. “ 재밌어요?”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극장 지하엔 즉석 사진관이 있다. “여기서 내가 한번 찍어봤다. 괴물같이 나온다.” 청계천 수표교에서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 팔을 슬쩍 잡았는데 뻣뻣했다. 어색해서 금방 뺐다. 40년 만에 처음 아버지와 단둘이 한 관광은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휴대전화엔 스타트렉 노인과 오다리 중년 여자가 정상회담 같은 자세로 서 있는 사진이 남았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처음 의심한 것은 직장을 그만두기 1년 전, ‘사추기’ 호르몬의 광란이 시작될 전조가 보일 즈음이었다. 정신이 나가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난동을 피웠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네 돌 때, 돌상에 떡이랑 과일을 올려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높이 못 올려줬다. 그게 마음이 아팠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 인생의 대전제에 두 번째 균열이 난 건 석 달 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에게 통보해야 했다. 아버지한테 꾼 돈 때문이었다. 그 돈을 빌릴 때 아버지는 여느 채권자처럼 상환 계획을 물었다. ‘이자 안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쓴 전자우편은 간단했다. “퇴사했습니다. 당분간 돈 못 갚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딱 한 줄로 답메일을 보냈다. “알았다.” 어떻게 살 건지 묻지 않았다. 눈물이 철철 났다. 세 글자에 담긴, 깊은 신뢰가 처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남자를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풍문으로 들은 수준이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고,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가출한 소년은 길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다. 40년 넘게 이 남자를 봐왔지만, 그리고 안다고 믿었지만, 이 중 어느 하나 직접 듣지 못했다.
니컬러스 에플리는 책 에서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6년 이상 함께 산 부부가 상대를 타인보다 더 잘 알까? 상대의 자존감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 생판 남보다는 서로 좀더 잘 알았다. 주목할 것은 이게 아니다. 짐작과 실제의 차이를 봤다. 부부의 경우, 상대에 대한 자신의 짐작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비율과 실제 맞힌 비율 사이의 차이는 모르는 사이보다 훨씬 컸다. 부부들은 상대의 자존감에 대한 질문 10개 중 8개는 맞힐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맞힌 건 10개 중 4개뿐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적어도 서로 알지 못한다는 전제라도 까는데 부부는 잘 알지 못하면서 ‘네 마음은 내 손금 보듯 한다’고 더 많이 착각한다는 거다. 저자는 상대의 마음을 척하면 알 수 있다는 과도한 확신을 버리고 물어보고, 들어보라고 말한다.
익숙한 냄새 아버지의 체취자고 일어나 내 잠옷에 코를 대보니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아버지의 체취가 나한테서 났다. 아버지에 대한 내 어떤 확신이 내 마음의 밑바탕을 그렸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야, 내가 잘못된 전제 위에 내 삶을 통째로 쌓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밑바탕 색을 다시 칠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이제 그는 젓가락을 잡을 때 손이 덜덜 떨리고, 나는 흰머리 염색을 한다. 다음주에는 피카디리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보자고 말해볼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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