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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건축가의 ‘서울로’는 어땠을까

건축가 조성룡 대담집 <건축과 풍화>
등록 2018-05-29 22:35 수정 2020-05-03 04:28

2011년쯤부터였을까. 건축가 조성룡(73)은 토요일이면 서울 성북동의 한 막걸릿집에서 건축학도, 사무소 직원, 그리고 “건축과 별 상관 없는 이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젊은 남자들도 따라하기 어려운 검은 롱코트와 끈이 반쯤 헝클어진 캔버스화를 멋지게 소화하는” 멋쟁이 조성룡은 테이블에 냅킨을 펼쳐놓고 만년필로 서울 지도를 쓱쓱 그렸다. 지도의 시작은 늘 4대문 안, 즉 서울의 내사산(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에서 시작됐다. “신기한 지도 이야기에 반한” 출판사 수류산방의 심세중 실장이 조성룡과 본격 인터뷰를 벌였다. 2014~2017년 에 소개된 이 대담을 한데 묶은 책이 나왔다. .

건축물은 건축가의 손을 거쳐 탄생하지만, 이 땅에 꼴을 갖춘 순간부터 풍화작용을 겪으며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조성룡에게 건축가의 중요한 기능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동시에 “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기술로) 가능한 한 지연시키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노화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데 있다”. 분명, 건축이란 시간에 관한 문제다. 이는 어떤 구조물이 들어설 때면 오랜 시간을 견뎌온 주변 건축물과 경관, 지형과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첫 아파트 국제설계경기(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에 당선돼 화려하게 데뷔한 조성룡은 시민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던 선유도 정수장 구조물을 남겨 생태공원(선유도공원)으로 풀어내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눈치꾸러기 건물’로 남아 있던 1970년대 옛 클럽하우스를 ‘건물 속의 건물’이라는 콘셉트로 탈바꿈(꿈마루)시키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꾀하며 새것이 들어서는 장소의 기억과 역사를 존중하는 것. 그에게 ‘시간의 건축가’라는 표현이 마땅한 이유다.

이 인터뷰집엔 그의 설계가 실현된 곳뿐 아니라 설계경기 공모에서 떨어지거나 이런저런 이유가 작용해 도면에만 남아 있는 작품 이야기도 실렸다. 이 가운데 실현되지 않아 안타까운 작품 중 하나인 서울역 고가도로 재활용 프로젝트를 소개하겠다. 현재 ‘서울로 7017’이라는 840m 길이의 자동차길을 ‘사람의 길’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이 고가도로가 서울의 수많은 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가도로 주변 사람들의 현재 삶은 어떠하고 이 재활용 프로젝트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또 서울역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그는 택배노동자를 비롯해 고가도로에 연접해 살아가는 수많은 생활인과 인터뷰를 했고, 이 고가도로가 서울의 도시구조·지형지물 속에서 나름대로 합리적 기능을 해왔음을 포착했다. 구조 분석을 하던 중 고가 아래 거더(다리 상판을 떠받치는 키 높은 보)를 활용하면 여러 겹의 길을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떠올렸다. 다리 보강비를 반으로 줄이는 대신 성곽길, 양동, 남대문시장 등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데 돈을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안은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 건축가’ 위니 마스의 ‘공중 수목원’ 콘셉트에 에 밀려 2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할 길 없고, 600여 개의 콘크리트 화분에 식재돼 손이 많이 가는 현재 서울로를 걷다보면 이 한국 토종 건축가의 작품이 더욱 아쉬워진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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