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영화 가 개봉했지만, 게이머들에게 그보다 더 화제가 됐던 ‘스타워즈’ 콘텐츠가 있었다. 영화 개봉 한 달 전인 지난해 11월 일렉트로닉아츠(EA)가 출시한 였다. 좋은 의미의 화제가 아니었다. 지나친 랜덤박스와 소액 결제 시스템 적용으로 북미 게이머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다. 랜덤박스는 문방구 앞 뽑기 기계를 게임 속에 넣은 것으로, 국내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라 한다. 랜덤박스가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슬롯박스’에 견주는 이들도 있다. 덕분에 지난해 말부터 랜덤박스는 북미와 유럽 게이머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국회의원이나 유럽 각국의 게임 관련 위원회 등에서 랜덤박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줄이 제기됐다. EA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굴지의 게임회사 EA는 명성만큼이나 욕먹는 분야에서도 꿀리지 않는다. 역사도 깊다. 컴퓨터게임을 좀 해봤던 ‘올드 게이머’라면 EA의 유명한 별명을 기억할 것이다. 괜찮은 개발사를 모두 먹어버린다 해서 지어진 ‘이트 올’(Eat All). 전도유망하던 개발사들이 EA가 인수·합병만 하면 졸작을 만들어내다 폐쇄되는 일이 반복됐다. 시리즈의 웨스트우드, 의 오리진, 인공지능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의 첫 직장 불프로그 등이 그랬다. 게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개발사들이 2000년대 초반 모두 그렇게 사라졌다. EA에 ‘일리미네이트 올’(Eliminate All)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이 정도 비아냥은 약과였다. EA는 2012년과 2013년 최대 위기를 맞는다. 소비자 전문 매체 가 해마다 선정하는 ‘미국 최악의 기업’에 2년 연속 1등을 했다. 비영리단체와 소비자평가단은 뱅크오브아메리카나 월마트 등을 제치고 EA에 ‘황금의 똥’(Golden Poo)을 안겼다. EA가 페이스북과 모바일에서 과 가 만들어낸 충격적인 변화에 정신 못 차리던 때였다. 관련 개발사들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기존 컴퓨터게임 개발과 고객 지원 인력을 해고했다. 덕분에 본래 게임의 질이나 이용자 서비스가 망가졌다.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 EA는 경영진을 모두 바꾸고, 임원진은 이틀 동안 비상회의를 했다. 회사나 숫자보다 게이머 경험에 중심을 둔 전략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후 EA는 와 시리즈의 흥행을 기반으로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등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랜덤박스에 대한 대응도 이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4월12일 EA의 최고기획이사 패트릭 쇠더룬드는 미국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틀렸다. 랜덤박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인터뷰 다음날 EA가 지원한 헤이즈라이트스튜디오는 의 판매량이 발매 2주 만에 100만 장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3월23일 발매한 은 EA가 개발비와 마케팅을 지원하되, 해당 비용을 넘어선 수익은 개발사가 100% 가져가는 ‘EA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타이틀이다.
많은 인수·합병과 소셜미디어·모바일 환경 적응 과정에서 혼란은 EA만의 일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 게임 생태계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바닥을 찍은 EA는 도가 지나친 랜덤박스에 대한 잘못을 인정했고, (간간이 인수·합병도 하지만) 소형 개발사의 창의적 게임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EA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한국 게임사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랜덤박스는 주요 수익모델로 자리잡았고, 개발사에 대한 투자는 고사하고 유망한 게임을 발굴해 서비스하는 퍼블리싱도 보기 힘들어졌다. 수익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미래는 갑갑하다. 다수 게이머의 불신은 더욱 굳어져가고, 북미와 유럽에서 성공을 기대할 수 없으며, 같은 참신한 게임이 나오기도 어렵다. 2000년대 후반 EA는 한국 온라인 게임사를 벤치마크했다. 이제 한국 회사가 EA를 벤치마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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