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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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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아이를 키우다

잊히는 역사 정면으로 다룬 노르웨이 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등록 2018-05-29 17:30 수정 2020-05-03 04:28
www.mychildlebensbor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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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쳐들어가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제가 그랬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약을 팔았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꿀꺽하려는 프로파간다(선전)였다. 대동아공영권의 원조는 독일의 ‘레벤스라움’(삶의 터전)이다. 아리아인 우월주의에 빠졌던 나치는 프랑스부터 동유럽까지 모두 아리아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다. 이 망상에는 약점이 있었다. 세상을 지배할 아리아인 수가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치는 ‘레벤스보른’(생명의 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금발에 파란 눈, 창백한 얼굴…. 인종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아리아인들끼리 시설(레벤스보른)에 들어가 ‘교배’해 아이를 낳았고, 이후 나치 친위대 장교 부부가 입양하는 방식으로 ‘순종 아리아인’을 ‘양산’했다. 2차 대전 중 레벤스보른은 국외로 확대됐다. 아리아인 특성에 맞는 미혼 여성이 많다고 여긴 노르웨이에 집중 설치됐다. 1941∼45년 약 1만2천 명의 아기가 노르웨이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났다. 전체 레벤스보른 아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많은 규모였다.

1945년 전쟁은 끝났지만, 아이들은 남겨졌다. 주로 한부모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은 ‘나치의 잔재’로 여겨졌다. ‘티거반’(독일자식)이라는 욕설을 들으며 조롱과 멸시, 차별과 왕따의 대상이 됐다. 괴롭힘에 시달려 자살하는 일까지 생겼다. 큰 사회문제였다.

세월이 흐르며 이런 일은 까맣게 잊혀갔다. 젊은 세대는 특히 그랬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노르웨이 기자 출신 엘린 페스퇴위는 게임개발사 사렙타스튜디오와 함께 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전쟁이나 분쟁 중에 태어난 아이들의 고통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이 직접적인 체험과 몰입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체감하는 경험을 가장 잘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플레이어는 레벤스보른 아이를 입양한 한부모가정의 가장이 된다. 밝고 쾌활했던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상처를 입고, 어두워진다. 게이머는 이 상황을 감내하며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도저히 손쓸 도리 없는 부모 처지에서 아이보다 더 큰 정서적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게임은 노르웨이 공공기관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레벤스보른 협회와 70대가 된 실제 피해자들이 협력했다. 트라우마와 보디랭귀지 전문가 그룹과도 협업해 사실성과 몰입감을 강화했다. 그리고 2018년 5월8일, 유럽의 2차 대전 승전일이자 레벤스보른 아이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 바로 그날 출시됐다. 출시 뒤 노르웨이 모바일게임 시장 다운로드와 매출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구글 플레이에서 영어 버전을 내려받을 수 있다. “정말 이 아이를 내가 키우는 기분이 들어서 더 슬프다” “절망 속에서 아이와 희망을 찾아가는 뜻깊은 게임” 등 한국 이용자들의 호평이 이어진다. 한국어 버전은 올가을께 나온단다.

2차 대전의 상처는 우리에게도 크게 남았다. 수많은 소녀가 이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난은 계속됐다. 일본의 사죄는 고사하고, 고국의 무관심과 사회의 냉담을 겪으며 숨어 살아야 했던 분이 많다. 올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네 분이 숨졌다. 이제 28분이 남았다. 모두 고령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은 영화와 웹툰 등으로 여러 차례 소개됐다. 한국은 자타 공인 게임 강국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적 게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상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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