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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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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하다 날샌 게임업계

한국 게임 생태계의 위기는 과거 방식 고수한 탓…

내부 개발 프로세스부터 살펴야
등록 2017-11-30 03:12 수정 2020-05-03 04:28
한국 게임업체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임상훈

한국 게임업체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임상훈

1999년부터 신문사에서 게임을 담당했다. 의 인기를 발판으로 PC방이 당구장을 대체하던 때였다. 일간지에 게임 지면이 생겼는데, 나보고 그 면을 채우라고 했다. 덕분에 낮에는 테헤란로, 밤에는 신림동 PC방에서 온라인게임 초창기를 목격했다. ‘초고속통신망’의 확산 속에 종이신문의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충격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게임매체 을 만들었다. 뜻이 맞았던 기자 둘과 함께 원룸에서 만든 회사는 게임산업의 급성장 속에 직원이 50명 넘는 조직으로 몸집을 키웠다. 2012년 라는 외국 게임이 메가히트를 치고 모바일 생태계가 변화하는 이중의 위기가 터지자, 한국 게임 생태계는 급속히 흔들렸다. 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게임산업과 게임매체 의 동반 추락은 누구의 탓일까.

“게임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한국 게임 생태계가 위기다.” 게임업계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게임은 늘 교육의 적이었다. 숱한 논란과 갈등 끝에 2011년 11월 셧다운제(16살 미만 청소년에게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인터넷 게임 제공을 차단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2013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게임을 4대 중독물질·행위로 취급하는 법안(일명 ‘게임중독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우리는 중독사업 종사자’라는 푸념은 업계 사람들의 술자리 안주가 됐다. 올봄엔 ‘게임 흑역사, 잃어버린 10년’ 같은 슬로건을 단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원인 진단의 적절성 여부는 둘째 치고 게임업계가 전례 없이 심각한 위기에 놓인 것은 맞다. 게임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 ‘크런치 모드’(마감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야근·특근 등을 불사하는 것)도 위기라면 위기다. 무엇보다 망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2012년 7월21일부터 2015년 8월23일까지 204주 동안 미국 업체가 개발한 가 PC방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2015년 8월 1위 순위를 빼앗은 게임은 개발사인 미국 블리자드가 내놓은 였다. 두 게임은 최근 한국 게임업체 블루홀의 자회사 펍지의 가 나오기 전까지 PC방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했다.

2010년 이후 가장 큰 외국 시장인 중국에서 새로 성공한 한국 온라인게임은 없다. 모바일 쪽에서도 국산 게임이 중국에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반면 중국 게임은 해마다 2개 이상 국내 순위 10위 안에 든다. 국외 게임쇼의 경우 한국 공동관이 있는데, 과거에는 한국 게임을 수입하려고 외국 회사가 줄을 섰다. 요즘은 오히려 자기네 게임을 팔려고 한국관을 방문한다.

야심 차게 창간한 이 부침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게임을 탓하는 부모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탓하는 게임업계나 똑같이 본질을 헛짚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게임에서 찾는 어른들은 게임을 잘 모른다. 내 아이는 더더욱 잘 모른다. 게임에 대한 냉대와 부정적 인식을 게임업계 침체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는 분들은 게임 생태계의 실상을 잘 모른다.

한국 게임 생태계의 위기는 시장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방식을 고수한 탓이 크다. 먼저 내부 개발 프로세스부터 살펴봐야 한다. 육중한 근육맨들이 해머를 들고 뛰어다니는 을 만든 핀란드 스타트업 개발사 슈퍼셀과 한국 의 성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개발팀은 전문성으로 신뢰를 얻었고, 회사는 약속을 지켜 신뢰에 답했다.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임상훈 대표*게임 생태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게임 평론 ‘디스이즈게임’이 3주에 한 번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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