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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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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픈 위로

박근혜 정권에서 상영될 수 없었던 세월호 영화 <눈꺼풀> 4년 만의 개봉

오멸 감독 “고통 감내해가며 세상 똑바로 보려는 간절함에 대한 이야기”
등록 2018-04-10 17:43 수정 2020-05-03 04:28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사 진진 제공

“선생님, 여기 왜 온 거예요?”

“떡 먹으러.”

“난 떡 싫은데.”

“먼 길 가야 하니까 떡 먹고 가자.”

외딴섬 미륵도. 선생님(이상희)과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사이 한 노인(문석범)이 이들을 위해 떡 만들 준비를 한다. 하지만 섬에 들어온 쥐 한 마리 때문에 노인의 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쥐는 노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인 라디오를 망가뜨리고 우물도 오염시킨다. 급기야 쌀 빻을 절구통까지 깨지게 한다. 떡을 만들 중요한 도구가 망가진 것이다. 끝내 노인은 이들을 위한 떡 한 조각조차 만들지 못한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전설의 섬에서 떡을 만드는 한 노인과 망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떡은 먼 길 떠나는 망자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제의 음식이다. 떡을 먹기 위해 섬에 온 선생님과 학생들은 바다를 떠도는 영혼, 세월호 희생자들이다.

영화를 만든 이는 제주4·3의 비극을 다룬 (2013)로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오멸(47) 감독이다. 4월2일 과 마주한 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모두가 잠 못 이루던 2014년 4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간절함”으로 만든 작품이라 설명했다. 오 감독이 영화를 완성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이었다. 영화는 이듬해인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 조합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영화에 대해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한 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픈 위로”라는 호평을 남겼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횡행하던 박근혜 정권 아래서 영화는 개봉관을 확보할 수 없었다. ‘4·3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오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음이 확인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영화 은 세월호 4주기를 맞는 올해 4월12일 개봉한다. 제작이 끝난 지 4년 만이다.

세월호 4주기를 맞아 드디어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

세월호는 의 부제처럼 ‘끝나지 않은 세월’이다. 세월호의 선체가 뭍으로 올라왔지만, 참사가 있었던 2014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2014년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하는 문제를 놓고 잡음이 있었다. 당시 직접 얘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이쪽 업계(극장업)에서 (세월호 관련 영화를 개봉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안다. 독립영화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할 때는 많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동굴 안에서 면벽참선을 하던 중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잘라내버렸다는 달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달마대사가 눈꺼풀을 도려낼 때만큼이나 아프게 잠 못 이루는 시간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시 우리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세월호 부모님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을 거다. 영화는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 통증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을 감내해가며 세상을 똑바로 보려는 간절함도 담겼다.

‘쥐’로 상징된 물질적 욕망과 탐욕 이 영화를 무인도에서 캠핑하며 찍었다고 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사흘 뒤부터 시나리오를 썼다. 그 뒤 답사부터 촬영까지 총 4개월이 걸렸다. 처음 무인도에 답사를 갔을 때 예상치 못한 죽음을 보았다. 바닷가 쪽에는 흑염소 사체가 있고 갯바위 벽에는 1m 넘을 정도로 거대한 하얀색 구더기 더미가 있었다. 주변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 기이한 죽음을 보고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에 있는 ‘썩은 짐승 시체’라는 시가 떠올랐다. 썩은 시체 더미에서 사랑의 원형과 거룩한 본질을 기억하겠다는 시 구절 말이다. 그 섬에 들어가서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첫날부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인도에서 촬영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스태프 5명, 배우 1명이 섬에 들어가 캠핑하며 찍은 기간은 두 달 정도 된다. 전기도 없고 마트도 없는 곳에서 오후 4시가 되면 촬영을 접고, 밥을 짓고, 물고기를 잡아 반찬을 만들며 예능프로 에 나오는 이들처럼 지냈다. 영화에 나오는 떡도 스태프들이 직접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비통한 마음으로 촬영하러 섬에 들어갔던 때라, 희생자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쌀을 불려 빻고 반죽을 하고 떡을 쪘다. 세 번의 실패를 거쳐 떡을 완성하는 데 1박2일이 걸렸다. 이 작업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노잣돈 드리듯, 먼 길 가는 데 떡이라도 든든하게 드시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제주4·3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 을 만든 오멸 감독은 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제를 올린다. 처럼 제의와 추모의 형식은 비슷하지만 은 많은 상징과 은유를 담고 있다. 대사는 거의 없다. 바람과 파도 등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빨간 여행 가방,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 뒤집어져 발버둥치는 풍뎅이 등 상징물을 통해 슬픔과 죽음, 생명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라디오 방송, 바닷속 세월호 모습으로 추모의 대상을 분명히 비춘다. 세월호라는 아픔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에 나오는 파괴자이자 방해꾼인 쥐는 누가 봐도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웃음) 그렇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쥐에 대해 물어보는 관객이 없었다. 다들 어림짐작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때는 박근혜 정부였지만 이명박 정권 때부터 이어온 사회의 병폐와 악습을 말하고 싶었다. 바로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탐욕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노인이 쥐를 잡다가 절구를 깨뜨리는데 이건 무너진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절구는 가난을 빻는 도구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국가적 움직임과 급속 성장 속에서 우리 사회에 나타난 기행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예술가의 숙명 같은” 영화에서 떡 만드는 노인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노인은 또 다른 우리 모습이다. 그가 절구 안에 들어간 쥐를 보면서 “너 때문이다”라는 말을 한다. 쥐 때문에 떡을 만들지 못하자, 모든 문제의 원인을 쥐 탓으로만 돌린다. 문제는 한 가지 원인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우리네 잘못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바닷속에 잠든 미륵이 깨어나 세월호를 끌어올리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 눈맞춤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중간에도 학생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을 통해 당신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느냐,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사회문제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 등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세월호 문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제주4·3을 다룬 에 이어 에서도 희생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넋을 달래는 진혼곡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통해 계속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며 묵직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바라봐야 한다. 그걸 외면하면 사회 속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예전에 강요배 선생님(‘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 작가), 현기영 선생님( 작가)과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분들이 ‘4·3을 다루면 영정들이 찾아온다’는 말을 하셨다. 그만큼 심리적 부담과 괴로움이라는 고통을 겪으며 작품을 만든다는 얘기다. 힘들지만 예술가로서 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다.

준비하는 다음 작품이 있나.

세월호 영화를 또 만들 것이다. 이후에도 세월호에 대한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었다. (세월호 이야기를) 아직은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제작 준비 중인데 이번에는 보다 쉬운 영화다. (웃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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