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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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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운명, 더 찬란한 일상

연애세포 뒤흔드는 운명적 만남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일상적 관계에 흥미
등록 2018-03-28 13:25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남자들에게 제2의 여자로 남는 편이 더 좋아. 당연하고 편안한 여자가 되는 느낌이 싫거든.”

나의 20대,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만난 어느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그녀의 말이 생경해서 어지러웠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이긴 했다. 나는 그녀의 숱한 연애담을 들으며 이른 봄의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실마리가 부족한 추리소설의 범인을 밝히는 것만큼 어렵고 종잡을 수 없었다. 애인 있는 남자만 골라 사귀는 그녀의 행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신범에 가까운 그녀의 연애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이 창조한 불행에 중독되었거나 자신의 가치를 낭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기다림의 시간으로 자신의 삶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관계의 유희를 즐기는 듯 보였다. 어차피 알 수 없는 건 당시 내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확신범에 가까운 그녀의 연애가 부러웠다. 경외감으로 그녀의 삶을 엿봤던 것도 같다. 그녀가 내게 보낸 비웃음의 한도가 넘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삶이 자유롭고 흥미진진했다 해도 나의 지지부진한 삶을 비웃을 자격은 없다고 느꼈다. 차츰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어느덧 그녀와 나는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마흔이 넘는 인생에서 한때의 조우로 폭발적으로 가까워졌다가 스러지듯 멀어진 관계가 꽤 있다. 이름마저 희미해진 경우도 있다. 만남만큼이나 숱한 이별이 있다. 만남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인생의 좌표에 자리잡지는 못하더라도.

그녀가 남겼던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시기가 내게도 찾아왔다. 결혼 생활이 10여 년쯤 흐른 뒤였다. 그녀의 삶 속 맥락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어렴풋이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로, 지루한 일상처럼 항상 거기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앞에 다시 매혹적인 여자로 등장할 가능성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애써 그런 역할을 맡아볼 계기를 만드는 시도조차 어색하고 귀찮았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행복보다 삶의 권태가 더 막막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상태로 보내야 하는 시기가 지나치게 길어 보였다. 림보(수용소) 같은 구역을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대부분으로 머무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어느새 아이들로 가득 차버린, 남편과 아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서 결속된 관계가 아이가 떠난 뒤 어떻게 지탱될 수 있을지 겁부터 났다.

눈을 돌려보면 세상은 젊은 사랑과 열정, 운명적 만남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와 남편은 서로 운명적 사랑의 상대라고 믿고 살았지만, 운명 이후의 일상은 알지 못했다. 너무 일찍 안심했고 서로의 존재에 당연해졌다. 함께하기까지 기울인 노력은 뜨겁고 열렬했지만, 안정이 찾아오자 급속도로 나태해졌다. 서로 알고 이해하고 관계의 성질을 협상하기까지 필요한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않고, 너무 일찍 결혼으로 서로를 묶어버리고 계획 없이 아이를 연속으로 가졌다. 그러면서 성숙한 사랑으로 향하는 진입로를 잃어버렸다. 낭만적 만남과 사랑이라는 관념에 도취되어 일시적으로 상승한 정념과 그리움이 비정상적으로 삶을 지배하던 순간 결혼을 결정했다.

행운을 행복으로 착각

그럼에도 우리의 행운은 꽤 오래도록 지속됐다. 나와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반항적인 둘째 성향을 가진 행동파 로맨티시스트였다. 안정적인 환경을 버리고 무작정 꿈을 좇아 삶의 경로를 급작스럽게 변경시킨 과정도 비슷했다. 비슷한 연애 패턴을 반복해온 사람이기도 했다. 로맨틱한 만남을 시작으로 네 차례 정도 공식적 연애를 했고, 그사이에 가볍고 유쾌한 만남을 양념처럼 얹어 20대를 보냈다. 헤어짐 또한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권태가 찾아오고 관계의 고통이 행복을 압도하고 불화의 횟수가 잦아지면 때마침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기존 관계가 지지부진할수록 새로운 만남이 주는 자극과 행복은 컸다. 새로운 상대는 기상 변동처럼 등장해서 지난 문제들을 날씨를 바꾸듯 새롭게 배치했다.

16년 전 우리의 만남 또한 그러했다. 아니, 우리가 서로에게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서 기존의 모든 관계를 다 폭파하고 날려버렸다. 내게 그는 용기와 확신과 자신만만함으로 넘치는 사내였다.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등장한 정복자이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일생을 건 사랑이라는 깃발을 앞세우며 진군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우리는 부부가 됐다. 달콤한 신혼이 이어졌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피임을 끊자마자 바로 임신이 됐다. 첫아이를 순산했고 모유 수유를 마친 직후 다시 임신을 했다. 남편은 육아에 적극적으로 함께했고 집안일에도 능숙했다. 흔하디흔한 시댁 문제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 펼쳐보이는 경험의 부챗살은 행복의 의외성만큼이나 고통의 너비 또한 예상 밖을 넘나들었다.

이제는 생각한다. 행복은 수동적으로 받았다가 방어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단지 오래 머물었던 행운을 나는 행복으로 착각했음이라고. 행운을 당연하게 여기고, 불운을 원망하는 내 자세는 삶을 향한 철없음이자 오만함이었다고. 한때의 고난으로 폐허가 되고 쉽게 복구될 수 없음에 더 좌절하고 마는 관계는 철없는 아이처럼 미숙하고 나약했다. 관계는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줄 믿었던 두 아이처럼 사랑했다.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버티는 법을 함께 모색하지 못했고 너무 쉽게 상대방을 비난했다. 그토록 행복했던 시간이 견딜 수 없는 지옥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자 도망가기 바빴다.

그럭저럭 다시 안정을 찾았다고 해도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는 권태에 쉽게 항복했다. 고난에는 버텼던 관계가 권태에는 비에 젖은 흙담처럼 스르르 무너졌다. 권태의 자리에 서니 행복했던 기억은 짧았고, 분노하고 비난했던 기억만이 생생히 남았다. 우리는 갈 길이 보이지 않은 절벽 끝에 서 있었다. 함께 서 있다고 느꼈다면 달랐을까. 각기 다른 절벽 앞에 서 있는 꼴이었고, 누구도 그 너비를 뛰어넘어 상대에게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의 고난을 겪어 극복하고 자라난 경험이 없었다. 시련은 때로 삶에도, 관계에도 성숙의 고마운 디딤돌이 된다는 걸 체험할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사랑만으로 충분한 관계는 없어

연애도 그리고 결혼 생활도 두 사람의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만으로 충분한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학생과 제자, 친구들 간의 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란 것은 관계의 당사자만 얽힌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온 환경·역사·사회, 그리고 원가족과 맺은 관계와 경험으로 빚어진 가족관과 습관의 커다란 영향 아래 있다. 낭만적 사랑에 환상을 갖게 되면, 사랑에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힘과 환상을 부여하고 기대한다. 사랑이 결실을 맺는 바로 그 순간, 마음을 고백하고 감정이 상호적이란 것을 알게 되고 평생을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순간, 지난 고통과 갈등의 시절이 너무 쉽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랑의 선서 후 더 지난한 노력과 이해와 타협과 협상과 상호 성숙의 시간이 요구된다. 어릴 적 동화나 문학 작품에서 이상화했던 낭만적 사랑은 우리가 실제 살아가야 할 삶들을 ‘나머지’로 만든다. 하지만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가 수없이 만들어지던 그 시절의 인간 수명은 지금처럼 길지 않았다. 아이의 출생과 성장을 다 돌보지 못하고 부부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뜨는 일이 흔했던 시절,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관계가 곳곳에 가득할 때, 그들은 평생을 꿈꾸는 관계를 맺는 데 용감할 수 있었다. 예상 수명이 50살 이하에 머물렀던 1900년과 80살을 웃도는 현대인의 삶을 비교하면, 한 사람과 약속하는 평생이 1세기 사이 무려 30년이나 늘었다.

더욱이 한정된 인간관계에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남녀 모두에게 교류의 폭이 넓어졌다. 현재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른 관계를 상상할 여지 또한 훨씬 커졌다. 지지부진한 관계에 머무는 기회비용이 새로운 관계를 찾아나서는 기회비용보다 더 크게 느껴질 확률도 높다. 삶 곳곳을 채우고 자극하는 미디어는 매혹적인 만남과 사랑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더 완벽한 아름다움과 기막힌 성생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옆집의 그 사람이 아니라 인터넷 접속과 클릭 몇 번으로 마주할 수 있는 완벽한 몸매에 성적 판타지로 그득한 ‘그’와 ‘그녀’이다.

이혼이 마무리된 뒤 나는 꽤 오랜 시간 지난 사랑을 돌아보며 지냈다. 후회나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반복적 패턴을 학습하지 않으면 상대만 바뀔 뿐 과정은 비슷할 것이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나빠서 혹은 상대가 잘못해서 그토록 완벽해 보였던 사이가 달라진 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원인 제공자가 드러나는 관계일지라도, 사랑이 무너지는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처에 있었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너무 쉽게 눈이 멀어 성찰과 노력을 게을리했다. 함께 그리고 이룩하고 싶은 사랑과 관계의 형상을 나누고 구체적 방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했음에도 너무 일찍 정복의 기쁨에 도취됐다.

가장 느린 성장, 사랑

가슴 뛰는 조우와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내게 힘이 세다. 하지만 그것의 부재가 예전만큼 쓸쓸하거나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두렵지는 않다. 연애세포를 살아 날뛰게 하고 일상을 뒤흔드는 만남보다는, 가꾸고 유지하고 좀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관계에 더 흥미를 느낀다. 내가 만일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쓴다면 기존의 사랑을 폐허로 만드는 절대적 낭만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닌, 꾸준히 복구하고 다듬고 삶의 성숙과 함께 이뤄가는 어른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다. 제2의 연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자극보다 꽃을 피운 자리에 다시 자란 싹과 생명의 연속성에 더 심장이 뛴다. 숱한 사랑이든 단 하나의 사랑이든 결국 사랑이 이르는 길은 통한다는 믿음이 있다. 사랑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성숙은 평생을 두고 이룰 만한 것이다. 결혼 25주년까지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사랑의 구도자로 25년쯤 보내다보면 다가갈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사랑은 아주 빨라 보이지만, 성장하는 것들 중 가장 느리다. 결혼 25주년이 될 때까지는 남녀 모두 완벽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 말을 남긴 마크 트웨인은 옳다. 하지만 그는 1세기 전 인물이고 나에게는 더 늘어난 평균수명이 있다.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느린 성장일지라도.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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