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니콘의 후예’ 작가실. “잠 못 이룰 드라마를 만드는, 잠 못 자는” 작가들과 외주제작사 피디(PD), 책임피디(CP)가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회의를 하느라 지친 정수지 보조작가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건 유니콘이 아니라 현실의 유니온!’ 정 작가의 마음의 소리를 들은 김 피디도 함께 외친다. ‘현실의 노동조합!’
‘노조 시트콤’이라는 이름을 단 (이하 )의 한 장면이다. 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 10분 안팎의 5부작 웹시트콤이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유니콘의 후예’를 만드는 방송가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재벌 이야기가 아닌, 노동자가 주인인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정수지 보조작가와 외주제작사 김 피디가 주인공이다. 정수지는 “너 운동권이냐!”는 메인작가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백마 탄 왕자와의 사랑보다 “동료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인물이다.
을 만든 이들은 “21세기에 걸맞은 사랑과 연대의 시트콤을 만드는” 신인 영화 창작인들의 모임인 ‘시트콤 협동조합’이다. 올해 1월 페이스북에 시트콤협동조합 계정을 만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돈 안 되는 시트콤 제작 의뢰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글귀를 올렸다. 시트콤 협동조합을 꾸린 윤성호(43) 감독은 “여러 창작자가 함께 시트콤을 만든다는 의미로 시트콤 협동조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처음 띄운 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민주노총의 의뢰를 받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웹콘텐츠계에 시트콤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는 영화 창작인들. 의 송현주(31) 작가, 이경민(30) 감독, 김서영(27) 편집기사를 1월3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이경민 단편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시트콤 작업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웃음) 잘 다루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송현주 노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니 ‘내가 이 작품을 하면서 적절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노조 시트콤 의 배경이 드라마 작가실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와 피디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송현주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처음엔 노조가 제대로 결성되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가스 검침원, 출판디자이너, 간호사 등의 이야기를 할까 했다. 그러면서 여주인공이 부당한 노동조건 때문에 직업을 계속 바꾸는 이야기도 구상했다. 그렇게 하면 각 직업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강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심각하지 않게 여러 직군의 노동자 이야기를 할 방법을 찾았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직업군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현실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주인공 정수지 보조작가와 김 피디는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설정의 의미는 무엇인가.송현주 둘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연대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다. 더불어 한 장소에서 계속 대화로만 전개되는 극에 약간 변주를 주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경민 애초에 김 피디를 남자로 할까 했다. 그러나 여-여 케미를 보여주고 싶어 여성으로 했다. 실제로 정수지 보조작가와 김 피디 역을 맡은 두 여배우(정수지와 김예은)의 케미가 좋아 의도대로 잘 표현됐다.
5부작까지 드라마 작가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대화로만 극이 진행된다.이경민 대화로만 이루어지니 대사량이 많았다. 배우들이 힘들었겠지만 서로 액션과 리액션을 이어가며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자신의 대사가 없을 때도 상대 배우의 연기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서영 웃긴데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가 못 쓴 장면이 많다. 엔지(NG)까지는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장면이 많다.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다.
“상품권 페이 나도 한번 받았다”모터를 단 듯 빠른 내레이션, 전편 요약 등 짧은 영상에 여러 재미 요소를 담았다.이경민 편집한 걸 빨리 돌려 빠른 내레이션 효과를 내기도 하고. 각 편 시작할 때 전편에 대한 7초 요약, 5초 요약분을 짤막하게 넣기도 했다.
송현주 첫 회 시작할 때 등장인물들이 드라마 작가실에 모이게 된 배경 설명을 영화 의 자막처럼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김서영 편집하면서 웃기가 어렵다. 같은 장면을 몇 번씩 돌려봐야 하니까. 그런데 이 작품을 편집할 때는 재미있었다. 초반보다 4, 5화가 더 좋았다. 뒤로 갈수록 배우들의 연기도 자연스럽고 서로 받아치는 리액션도 풍부해 편집하기 좋았다.
에 판타지 속 동물 유니콘이 자주 등장한다.송현주 지상파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처럼 판타지적 설정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유니콘이라는 전설의 동물을 설정했다. 유니콘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판타지일 뿐이다. ‘현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노동조합 유니온이다. 그러니 유니온을 선택하라’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에는 스타작가, 중간작가, 보조작가가 등장한다. 그들 사이의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이경민 연차와 인지도 등에서 비롯된 계급이 있다. 그 관계를 보여주려 했다. 그 안에서 을들의 연대가 있고. 이들 외에 김 피디는 외주제작사 피디이고 계약직이다. 매일 밤샘 노동을 하고 불안정한 신분을 가진 피디의 모습도 담으려 했다.
송현주 그렇다고 갑의 위치에 있는 스타작가에게 화살이 가면 안 된다. 드라마를 만드는 노동 착취 구조를 봐야 한다. 그래서 “잠 못 이룰 드라마를 만드는, 잠 못 자는 사람들. 이 구조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바닥부터 올라온 공 작가님이나 잃을 게 많은 스타작가 임 작가가 원흉이 아닌 것도 안다”라는 대사를 넣었다.
주인공 정수지 보조작가는 “일은 많고, 돈은 적고, 잠 못 자는” 로드매니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들의 처지와 같다고 말한다. 방송계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송현주 최근 ( 보도로) 이슈가 된 ‘상품권 페이’를 나도 한번 받았다. 잘 쓰긴 했는데. (웃음) 영화 쪽에서는 2년 전부터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기 시작해, 그래도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쪽은 표준계약서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얘기하는 곳이 거의 없다.
“우리의 힘은 여러분의 ‘좋아요’”웹시트콤 제작의 재미는 무엇인가.송현주 웹에 올리는 콘텐츠다보니 심의나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영상을 본 이들의 댓글과 조회수를 바로 볼 수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경민 우리 작품이 페이스북에 올라가자 그걸 본 배우들이 다음 작품을 할 때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해오거나, 어떤 소재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는 분들도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소통이 이루어진다.
시트콤협동조합의 는 1월31일 마지막 편 5화를 띄우며 시즌1의 막을 내렸다. 이경민 감독은 “시즌1에서는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이야기를 살짝 보여줬다면 시즌2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웹콘텐츠의 상업화 경향 속에서도 뚝심 있게 돈 안 되는 시트콤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외친다. “PPL(간접광고), 에인절투자, 홍보 전략, 4차산업 원동력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오직 여러분의 ‘좋아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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