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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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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습고 때때로 찡한

덤덤히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유년 추억한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의 김보통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고리키 끼고 살던 가난한 소년은 어떻게 사회적이되 독립적인 어른이 됐나
등록 2018-01-30 17:18 수정 2020-05-03 04:28
김보통 작가. 류우종 기자

김보통 작가. 류우종 기자

어떤 책은 다른 지평으로 우리를 이끌어 삶의 경로를 변경하게 한다. 또 어떤 책은 가만히 다가와 고단한 일상에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김보통 만화가의 신작 (한겨레출판)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유년 시절의 상처를 쓸쓸히 위무하면서도 ‘자기 앞의 생’을 다르게 살도록 권하는 남다른 에세이집이다.

ESC에 연재됐던 글들을 바탕으로 삼은 이 책은,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담긴 일종의 안부인사다. 한글도 모르고 똥오줌도 못 가려 교탁 옆 특별관리 대상이 됐던 초등학교 때의 일화부터 군 복무 시절 봉사활동으로 만난 요양원 할머니의 당부까지, 저자의 표현대로 대체로 우습고 때때로 찡한 추억이 고스란하다. 어쩌면 대개 춥고 바람 불다 가끔씩 쨍하고 해가 나는 우리 인생처럼.

1월2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보통 만화가의 유쾌하면서도 짠한(?) 매력은 여전했다. 평소 그가 애용하는 탈을 놓고 왔다며 2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친 뒤 연재 만화(‘너와 나의 21세기’) 캐릭터로 가면을 만들어 사진 촬영에 임할 때나, 슬픈 개인사를 건조하게 말할 때 책 속 캐릭터가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서글픈 건, 쉽게 상처 주고 쉽게 상처 받는 거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라는 그는 연재 만화 ‘너와 나의 21세기’보다 에세이가 더 재밌다는 지적에 “이제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 절대 자르지 말아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철든다는 건 상처에 익숙해지는 일”</font></font>
김보통 만화가의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유년 시절의 상처를 쓸쓸히 위무하면서도 ‘자기 앞의 생’을 다르게 도록 권하는 남다른 에세이집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김보통 만화가의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유년 시절의 상처를 쓸쓸히 위무하면서도 ‘자기 앞의 생’을 다르게 도록 권하는 남다른 에세이집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솔직히 필력에 놀랐다. 무지렁이인 외삼촌이 읽어도 이해되는 글을 쓰자는 다짐이나, 슬픈 분위기로 몰아넣은 뒤, 정작 본인은 무심한 척 관망하듯 얘기하는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고맙다. (웃음) 글 쓸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이 글을 우리 외삼촌이 봐도 이해할 수 있을까, 재미있어할까 자문한다. 책 소개 기사를 보니까 그런 대목이 있더라. 1인칭과 3인칭 사이 어디쯤에 있다고. ‘나’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남 이야기 하듯 한다고. 의도한 건 아니고 그냥 솔직히 당시의 내 심정이 그랬다.

예컨대 학창 시절 집안이 가난해서 등록금을 못 냈는데 “김보통, 등록금 내라”는 학교 방송을 듣는다든지, 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로 분장한 유치원 통원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500원짜리 장난감이었고, 그것이 결국 부모님이 마련한 선물이란 걸 알게 된다든지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부분을 보면, 책 제목 ‘어른이 된다는 게 서글픈 일’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추억은 윤색되기 마련이어서 그런 것인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다. 학교에서 무시당하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불행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가난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행복의 필요조건이 적었던 시절이다.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원래 못 살고 못 먹고 산 사람들은 그냥 즐거운 거 아닐까. (웃음) 어른이 된다는 게, 철이 든다는 게 서글픈 건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500원짜리 장난감을 사줄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서글픈 일이라는 거다. 그걸 가지고 노는 나를 보는 부모의 맘은 얼마나 서글펐을까. 어른이 돼서 그 시절의 부모님을 되돌아보는 게 서글픈 일이다. 책 제목은 그런 의미다.

어른이 되면 비싼 장난감도 살 수 있다. 좋은 점도 있지 않나.

그런 점은 좋긴 하다. (웃음) 그러나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 주는 데 익숙해지고 상처 받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데 그것에 담담해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거다. 어쩌다 담담한 인간이 됐을까.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은 대체로 맞고 나쁜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구조를 알게 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가족밖에 없다’는 말은 맞지만 쓸쓸하게 들린다는 누군가의 글이 떠오른다. 책 속에서 묘사된 아버지는 늘 아들을 면박 주고 기를 죽인다.

그게 나도 궁금해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봤다. 당신은 집안 형편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으니, 우리도 아예 희망조차 갖지 못하도록 그런 거냐고. 그랬더니 ‘대충 맞다’고 하더라. 대학 등록금을 대준다던 큰아버지가 국립대 아니면 원서도 쓸 생각 하지 말라고 해서 아버지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가난 때문에 받은 상처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모질게 대한 듯하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군 복무 때 김훈 탐독” </font></font>충분히 삐뚤어질 수도 있는 성장 과정이었는데.

난 지금도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배우 마동석씨처럼 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했지만 한 번도 엄마를 팬다거나 공부 못한다고 나를 혼낸 적이 없었다. 나쁜 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빼고. 부모님께 반항을 안 한 것은 당시 집안 사정이 다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집이 가난한 건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니까. 물론 아버지한테 맞을까 두려워서 말썽을 안 피운 것도 있다. (웃음)

영향을 받은 작가가 궁금하다. 한 인터뷰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꼽았던데.

나쓰메 소세키의 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스무 번 넘게 읽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고 여전히 재미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도 끼고 살았다. 워터멜론 슈가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90개 챕터로 다루는데,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막심 고리키와 안톤 체호프, 위화도 좋아했다. 많은 책을 읽기보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이다.

국내 작가 중에는?

헌병으로 군 복무 시절, 12~3시, 3~6시까지 새벽 영창 근무를 서곤 했다. 굉장히 지루했다. 그때 주야장천 읽고 또 읽은 소설은 김훈 선생의 였다. 수식 없이 단문으로 꾸밈없이 쓰는 게 신선했다. 인상 깊었다.

이번 책을 보고 봄 개편 때 만화가 아닌 칼럼을 맡기자는 얘기가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웃음)

(당혹스러워하며) 내가 발동이 걸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만화, 이제부터 재밌어진다. 자르지 말아달라. (웃음) 한겨레 토요판에 《D.P》 연재할 때도 중반까지는 독자 반응이 별로 없었다. 중반 이후부터 100만 뷰가 나오고 반응이 왔다. ‘너와 나의 21세기’도 이제 반응이 올 것이다.

2016년 초에는 어시스턴트 채용 공고를 내면서 4대 보험과 초과근무수당을 제공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만화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해 말에는 공공운수노조 홍보 영상도 찍었다. 노동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시스턴트 분들에게는 당연히 드려야 하는 몫을 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공고 이후 어시스턴트 구하는 게시판에 초과근무수당 지급은 이제 기본이 됐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욕도 들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기준이 돼서 다행이다. 작업실에서 일하는 분들과는 사적으로 얽히지 않으려 한다. 서로 존대를 쓰고 카톡 말고는 연락처도 모른다. 가까워지면 실수하고 과도하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세운 규율이다. 노조가 기적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조 가입이 두려우면 최소한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그와 우리네의 잃어버린 유년</font></font>

진짜 가족과 멀어지더라도 유사 가족이기 원했던 지옥 같은 회사를 떠나 우연히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그는, 무리 속에 안주하지 않고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얼굴 공개를 꺼리는 것도, 사람들과 술자리 밥자리를 멀리하는 것도 가면을 쓴 채 사력을 다해 살아왔던 지난 삶과 결별하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교통사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삶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다는 그를 보니, 이제야 알겠다. 그가 왜 를 끼고 살았는지. 기뻐도 너무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않는 마을공동체(‘아이디아뜨’) 사람들의 덤덤히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삶이 그와 우리네의 잃어버린 유년이었다는 사실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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