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여섯 살배기 딸 혜원이 갑자기 라인(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을 보냈다.
“아빠 우쿨렐레 칠 줄 알아? 칠 줄 알지? 선생님한테 아빠 잘 친다고 했어. 그래서 ‘가족의 밤’에 아빠가 해줄 거라고 그래버렸어.”
“아빠 우쿨렐레 못 쳐. 큰일이네. 어떡하지?”
“그냥 춤이랑 노래만 해.”
“허걱, 춤 말고 우쿨렐레 연습해서 할래.”
혜원이가 계산하고 춤 얘기를 꺼내진 않았을 터다. 어쨌든 그걸 엄청난 ‘협박’으로 받아들인 나는 우쿨렐레 카드를 덜컥 받고 말았다. 딸아이는 협상가 기질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인가. 혜원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가족의 밤’ 행사까지는 일주일도 채 안 남은 상황. 소싯적에 통기타를 쳐본 적은 있지만 우쿨렐레는 한 번도 쳐본 적 없던 나는 일단 우쿨렐레부터 구해야 했다. 하나 사야 하나?
혜원이와 말을 주고받은 라인 대화창을 갈무리해 SNS에 올렸더니 너도나도 폭소 댓글을 달았다. 그 와중에 구세주 같은 댓글이 있었으니 우쿨렐레를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까지 찾아가 받아온 우쿨렐레는 어쿠스틱 기타 제조 명가 ‘마틴’ 제품이었다. 명기를 손에 넣었으니 이젠 연습만 남았다. 우쿨렐레 코드 잡는 법을 정리한 표를 인터넷에서 찾아 인쇄했다. 기타보다 2줄 적은 4줄짜리 악기여서인지 운지법도 비교적 간단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젠 레퍼토리를 정할 차례다. 뭘 할까 고민하다 번뜩 스치는 곡이 있었다. 하와이 원주민 출신 가수 이즈리얼 카마카비올레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다. 우쿨렐레의 기원은 포르투갈 민속악기 ‘브라기냐’로 알려져 있다. 하와이로 이민 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브라기냐를 만들어 판 게 널리 퍼지면서 하와이를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우쿨렐레는 하와이 말로 ‘튀어오르는 벼룩’이라는 뜻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43kg 거구의 천사 같은 목소리</font></font>‘이즈’(IZ)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즈리얼 카마카비올레는 우쿨렐레를 세계적으로 대중화한 하와이 국민가수다. 몸무게 343kg의 거구가 앙증맞은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하는 음성은 천사의 목소리인 양 곱디곱다. 영화 에서 주디 갈런드가 부른 주제가 와 루이 암스트롱의 히트곡 (What A Wonderful World)를 메들리로 연결해 부른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지나친 몸무게 탓에 그는 1997년 38살 나이에 요절했다. 하와이 주민들은 그의 죽음을 무척 슬퍼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공식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면, 생전 그의 연주 모습이 나오다 후반부에는 그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나와 ‘IZ’라고 새긴 깃발을 흔들며 환호한다. 그의 유골이 바다에 뿌려지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 커진다. 그는 이승을 떠나면서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며 언젠가 우쿨렐레로 이 곡을 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실천할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악보를 구하고 퇴근 뒤 그야말로 연습 또 연습. 기타를 치던 감이 남아 있어 우쿨렐레를 독학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다만 노래가 너무 까다로웠다. 이즈의 자유자재로 밀고 당겨 부르는 창법을 따라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고, 목소리에 힘을 빼고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안 틀린 척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돼”</font></font>어찌어찌하여 공연할 수 있을 만큼까지는 연습을 마쳤다. 한 곡만으론 아쉬웠다. 혜원이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찾은 곡이 이다. 황정민·전도연 주연의 영화 에 쓰인 우리말 버전을 하기로 했다. 나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혜원이는 옆에서 훌라춤(사실은 짱구의 울라울라 춤)을 추며 같이 노래하기로 하고 연습을 했다.
드디어 공연 당일. 우쿨렐레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어린이용 의자에 쪼그려앉아 우쿨렐레를 치며 를 불렀다. 별 실수 없이 잘 마쳤다. 박수가 쏟아졌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뿌듯했다. 혜원이의 ‘허풍’이 왠지 고마웠다. 이젠 함께 무대를 선보일 차례. 을 부르는데, 옆에 선 혜원이가 꼼짝도 않고 나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혜원이를 바라보고 활짝 웃으며 같이 하자고 몇 번이나 신호를 보내도 얼음 상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혼자 노래해야 했다. 나중에 왜 안 했냐고 물었더니 혜원이는 “몰라, 춤추기 창피하단 말이야” 했다. 아이는 아이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혜원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아빠, 나 학예회에서 우쿨렐레 치면서 노래하고 싶어. 가르쳐줘.” 지난달 학예회를 3주 앞두고 혜원이가 말했다. 다행히 혜원이가 유치원에서 치던 우쿨렐레가 집에 있었다. 유치원에서 기본 코드를 배운 것도 다행이었다. 방을 뒤져보니 3년 전 연주했던 악보가 그대로 있었다. 코드 잡는 법을 가르쳐준 뒤 연주하는 걸 지켜보니 좀 막막했다. 코드를 자꾸 틀리고 노래 또한 음정이 제멋대로인데다 박자도 오락가락했다. ‘할 수 있을까? 다른 장기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믿어보기로 했다. 우선 노래부터 연습시키고, 이후 우쿨렐레를 찬찬히 가르쳤다. 며칠 뒤에 보니 실력이 제법 늘어 있었다. 나름 맹연습을 했던 모양이다. 박자를 맞추거나 코드를 부드럽게 바꾸는 ‘꿀팁’을 알려주고 계속 반복 연습을 시켰다. 며칠 지나니 실력이 또 확 늘어 있었다. 자주 틀리는 부분만 집중 연습시키면서 완성해나갔다. 나중에는 거의 실수하지 않고 연주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비장의 팁을 알려주었다. “혹시 틀리더라도 안 틀린 척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돼.”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font></font>학예회 당일, 혜원이가 우쿨렐레를 메고 무대에 올랐다. 침착하게 마이크를 자기 앞으로 당기더니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선샤인 나만의 햇살/ 힘들고 지친 날 감싸줘요/ 그대 말 못해도 알 수 있어요/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그대는 선샤인 나만 믿어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변하지 않는 우리의 사랑/ 끝까지 그댈 지켜줄게요.” 실수 없이 차분히 마쳤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혜원이의 환한 얼굴이 나의 ‘선샤인’처럼 다가왔다. 아이는 그렇게 커가고,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대중음악 담당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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