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9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축하 무대에 섰다. 5년 전 로 초대받았던 싸이에 이어 두 번째 한국 가수의 출연이다. 그날 무대에 선 출연자 17명 가운데 16번째 순서였다. 그들은 (The Ellen DeGeneres Show), (Jimmy Kimmel Live) 등 ABC, NBC, CBS를 아우르는 미국 지상파 대표 토크 프로그램에도 초청받았다. 영국 BBC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케이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미권에서 대중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프로모션을 이어가던 지난 11월25일, 올해 9월 발매된 새 앨범 (LOVE YOURSELF 承 ‘Her’)의 수록곡 (Mic Drop)의 리믹스가 발매됐다. 새 단장은 세계적인 디제이 겸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가 맡았다. 노래는 발매와 동시에 미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에 올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케이팝 가수 최초로 거둔 결과였다. 동일 차트 기준 브라질, 캐나다 등 전세계 47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공식 유튜브 채널로 공개된 뮤직비디오 조회 수 1천만 뷰를 넘는 데 채 15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소식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SNS 매체인 트위터 팔로워 수는 11월13일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역시 한국 계정 최초였다.
수개월 전 ‘빌보드 뮤직 어워드’(BMA)를 통해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을 때와는 또 다른 열기가 방탄소년단을 휩싸고 있다. 이들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야 ‘방탄소년단은 누구인가’를 넘어 ‘왜 방탄소년단인가’로 이동했다.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 감정을 다룰 새로운 시리즈 ‘러브 유어셀프’의 기승전결 가운데 ‘승’을 발매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지금을 바로 그 기승전결 구도에 맞춰 이야기해보자.
<font size="4"><font color="#C21A1A">일어날 기(起)</font></font>시작은 다소 아쉬웠다. 2013년 방탄소년단이 ‘힙합 아이돌’ 타이틀을 걸고 데뷔곡 >(No More Dream)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이들에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른바 ‘3대 기획사’ 출신도 아니었고, 힙합과 아이돌은 그때만 해도 한참이나 서먹한 사이였다. 힙합을 매개로 한 팀의 방향성도 어정쩡했다. 본토 힙합을 배우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방송 (2014·엠넷)에서 멤버들이 만난 건 ‘쿨리오’와 ‘워런 지’였다. 모두 멤버들이 태어나기도 전 활약했던, 명백한 지난 세기의 아이콘들이었다.
데뷔 싱글에서 두 번째 미니 앨범 (SKOOL LUV AFFAIR·2014)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학교’로 제한한 것도 뒤늦은 시동의 원인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활동 초기를 대표하는 ‘학교 3부작’은 학교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10대들의 꿈, 행복, 사랑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1990년대 ‘10대들의 대통령’으로 활약한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유구하게 이어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반항과 구원 서사였고, 20대 이상의 성인 팬까지 흡수하지 않으면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도록 개편된 시장 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그림이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간 이들에게 머지않아 구원의 손길이 전해졌다. 멤버들의 성실함과 부지런한 스태프들의 의지가 합쳐진 완성도 높은 무대와 자체 제작 콘텐츠였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이을 승(承)</font></font>멤버 슈가는 앨범 와 관련한 매체 인터뷰에서 사랑의 ‘승(承)’적 순간에 대해 “서로에게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라 답했다. 이 몰입은 단순히 연인 관계뿐만이 아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아이돌과 팬 사이 가장 뜨겁게 작용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잠깐의 관심을 끄는 건 쉽다. 그러나 몰입하게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처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다름 아닌 무대였다. 이들의 역동감 넘치는 무대는 춤 잘 추고 에너제틱한 수많은 그룹들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방탄소년단의 모든 안무를 담당한 손성득의 공도 컸다. 실제 고난도의 칼군무가 돋보이는 (DOPE)와 (FIRE)부터 좋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이 관심을 단단히 묶어둔 건 자체 제작 콘텐츠의 힘이었다. 공중파나 음악방송 전문 채널을 통한 것이 아닌, 기획사가 유튜브에서 직접 개설한 전용 채널로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관련 콘텐츠가 쏟아졌다. ‘방탄밤’ 같은, 짧게는 몇십 초에 불과한 미니 콘텐츠에서 그야말로 ‘잘 먹는’ 멤버 진의 특기를 살린 먹방 콘텐츠 ‘잇진’까지,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서브 콘텐츠의 질과 양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해당 채널에서 차곡차곡 쌓인 콘텐츠는 이후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 인기의 가장 큰 지원군이었다. 기획사와 멤버 모두가 공유하는 트위터 오피셜 계정(@bts_twt) 운영도 유효했다. 뮤직비디오, 안무 영상, 대기실 실시간 방송 등 계정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한번 들어선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바꿀 전(轉)</font></font>방탄소년단의 운명을 바꾼 가장 큰 계기는 누가 뭐래도 ‘화양연화’ 연작이었다. ‘청춘 3부작’이라고도 하는 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일곱 멤버들에게 각각 캐릭터를 부여해 ‘청춘’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될 만한 거의 모든 이미지를 투영했고, 이 전략은 대중에게 놀랍도록 빠르게 퍼져나갔다. 연작의 첫 신호탄을 올린 (I NEED U)에서 에필로그 격인 (Epilogue: Young Forever)에 이르기까지, 방탄소년단은 전보다 한없이 감성적인 표현 방식을 택했다. 물론 사이사이 (RUN) 같은 세련된 팝 사운드나 나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곡을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같은 변화는 곧 이들의 ‘성장’에 대한 지극한 환대로 이어졌다. 노래와 뮤직비디오, 무대로 증명된 멤버들의 성장은 그 자체로 가장 찬란한 청춘의 한때를 보내는 멤버들의 지금과 정확히 일치했다. 인터넷을 통해 수천 번 해석되며 구체화된 ‘화양연화’ 속 인물들은 곧 화면 밖으로 뛰어나와 빌보드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미국 인기 심야 토크쇼, 타임스퀘어 광장에 섰다. 때로 가혹할 정도로 혹독한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과 멤버들의 성실함, 대표 방시혁과 프로듀서 피독을 위시한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음악 스태프들과 반발 앞서나간 기획사 A&R팀의 아이디어, 전세계를 아우르는 팬덤 아미(A.R.M.Y)의 화력, 이 모두가 총망라되어 바꾼 케이팝의 오늘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맺을 결(結)</font></font>이들의 이름과 ‘결’(結)을 함께 놓는 건 아직 조금 이르다. 외국 언론에 잠시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외국 진출이라 호들갑 떨던 시기와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열기가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이기에 더 그렇다.
2000년대 초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 이후 한국 아티스트의 외국 진출에 절대 빠지지 않은 단어는 다름 아닌 ‘현지화’였다. 진출하려는 국가의 동향과 감성을 파악하고 언어를 배우며 그곳의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방탄소년단은 다르다. 미국 주류 언론이 주목한 건 언어와 인종 등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던 모든 영역을 넘어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내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난공불락 성처럼 여겨지던 미국 시장이 이만큼 열렸다. 한국 대중음악이 닿을 수 있는 곳도 그만큼 넓어졌다. 지금부터 방탄소년단이 걷는 길은 그대로, 케이팝이 꿈꿀 수 있는 면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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