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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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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집착하라

파킨슨병 진단받고 한 달 만에 일어난

정신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혜남
등록 2017-09-28 05:19 수정 2020-05-03 04:28

정신분석 등 많은 심리치료의 목적은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하게 하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과거에 대한 분노와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근심으로 현재의 삶을 살지 못한다. 과거는 상처이고 미래는 두려움이다. 의사로 한창 잘나가던 40대 초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는 한 달 동안 천장만 보고 누워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다 현재를 망치고 있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김 전문의는 60만 부가 팔린 를 비롯해 6권의 책을 썼고 13년 동안 더 환자를 돌보았다.

고통의 핵심은 ‘상실’

김혜남 전문의는 최근에도 병을 돌보며 하루하루 지내는 일상을 스마트폰 그림과 글로 기록한 (가나출판사)을 펴냈다. 김 전문의를 자택에서 만나 삶의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고통의 핵심은 상실이고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찾기보다 고통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나에게도 그게 일어났구나’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렸나.

몇 년 전 어느 봄날, 나비가 막 날아다니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스마트폰으로 그려봤다. 나비 2마리에 각각 남편 얼굴과 내 얼굴을 그려넣은 뒤 남편에게 ‘봄꽃놀이 가자’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래, 언제 한번 가자’고 답이 왔다. 그런데 여태까지 못 갔다. (웃음) 그게 최초의 그림인데,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얼굴을 그려 보내주고 남편 사업이 안 될 때면 남편에게 위로하는 그림을 그려 보내줬다. 그러다 (그림 주제가)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로 변화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그림 그리는 매력이 있나.

스마트폰은 늘 곁에 있으니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그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친구들에게 문자 대신 보낼 수도 있고, 단체 카톡방에 올릴 수도 있다. 손이 느려서 단체 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내가 한마디 하려 하면 친구들의 대화는 이미 저만치 가 있다. 그러면 그림 한 장을 쓱 그려서 올려준다.

이라는 책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아프며 살다보니 순간순간이 참 소중하다.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고, 현재가 흘러가서 과거가 되기에, 오늘을 살고 그때그때를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현대인들이 그걸 자꾸 잊고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그래서 지난번 책 제목이 이고 이번 책도 오늘을 살면서 느낀 것들을 그렸다.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했는데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고통은 뭔가.

관계 내의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했다. 관계는 부모자식, 친구, 직장 동료, 애인 등 여러 형태가 있다. 그러나 결국 자기와의 관계다. 자기를 믿고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기를 좋아하면, 남을 좋아하고 남도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와의 관계, 즉 자기를 믿고 신뢰하고 좋아하는 게 중요하다.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인간의 다양한 고통에 공통된 핵심이 있을까.

고통의 공통된 핵심은 ‘상실’이다. 상실의 대상은 사람, 건강, 이상, 꿈, 돈 등이 있다. 모든 고통은 상실에서 온다.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참 중요하다. 은 상실에 대해 쓴 책이다. 어른으로 살려면 상실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아동기의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피터팬이 되고, 성인기에 젊음의 상실이나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데 그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나.

인간의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 아니다. 고통과 시련도 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도 많다. 인생은 고통과 시련과 행복과 즐거움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다. 인간의 뇌 속에 기억센터는 감정센터 바로 옆에 있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은 금방 잊고, 강력한 감정인 고통과 시련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남편과 좋고 행복했던 기억은 쉽게 다 잊어버리고 연애 때부터 서운하게 한 것만 기억나는 것은 그래서다.

“시련은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찌그러뜨리기 쉽다”라는 말이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단단해지고, 어떤 사람은 주저앉게 되는 걸까.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시련을 극복하려면 두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와주고 진정으로 자기를 염려해주는가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다. 내 아버지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혼자 장사해 빚을 갚으며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아래서 매를 많이 맞으며 자랐다. 그런데 옆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아버지를 귀여워했다고 한다. 그분은 아버지가 학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반갑게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빗나갔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믿어준다면 인간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인생에 대한 믿음이다. 시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고통의 의미’, 나아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고통을 이겨내는 데 중요한가.

양날의 검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자문한다. 나도 그랬다. 인간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야 다음번에 똑같은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이유가 찾아지지 않으면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내가 그때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구나’라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사실 고통이 왜 오는지 모른다. 질병이 왜 생기는지,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왜 우리 부모만 일찍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이유를 해석하고 찾으려다보면 오히려 자기 속에 함몰될 수 있다. 고통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에선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나에게도 그게 일어났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가 온다 병을 진단받고 한 달 만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동력은 뭔가.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의 의미를 찾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나.

한 달 동안은 굉장히 우울해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라며 울고 한탄했다. 어느 날 생각이 딱 들더라. 왜 이러고 있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그대로 나인데. 단지 달라진 것은 현재가 좀 불편한 것과 미래가 좀 불확실해진 것이다. 현재의 불편은 일을 줄여 거기에 맞춰 살면 되는 것이고, 미래가 불확실한 건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이 집이 무너져서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다 현재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면서 ‘오늘’에 집착하게 되었고, 내가 사는 세상이 달라졌다. 병을 진단받은 시점에 미국에서 공부해 국제 공인 정신분석 자격증을 따려던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책을 쓰게 됐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도,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세상은 참 공평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하나가 온다는 걸 알게 됐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면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글을 쓴 뒤 내 일은 정신분석가로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던 것에서 대중과 얘기하는 걸로 전환됐다. 만약 그때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면 저술 작업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 삶이 행복할지, 이 삶이 행복할지는 모른다. 그 삶에선 또 그것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고, 지금은 내 삶에 주어진 임무가 이것인가보다 생각하며 산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고통이 있을 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치며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그 단계를 한 달 만에 다 거친 것인가.

지금도 거치고 있다. 현재는 웃고 있지만, 혼자서 울기도 하고 한탄할 때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않나. (웃음) 수용까지 단계는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반복된다.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세상에 어떤 감정이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끝끝내 수용까지 가지 못하고 부정이나 분노 단계에서 멈춘 사람도 많다. 갑작스럽게 부모나 어린 자녀를 잃는 고통은 수용까지 가기 참 어렵다.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에서 좌우된다. 자식을 충분히 사랑해줬으면 오히려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다. 자기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주었다면 아이가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충분히 사랑을 줬으면 (부모의 죽음을) 오히려 받아들이기 쉽다.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이 많았을 경우 죄책감이 많아진다. 그러면 받아들이기 힘들어 부정하게 되고, ‘우리 부모는 안 죽었고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라며 평생을 헤매게 된다. 오히려 그때그때 사랑한 사람들의 죽음을 훨씬 더 받아들이기 쉽다. 결국 매 순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 다 고되다 어떤 자세로 살아야 행복한 삶이 될까.

인생은 불행과 행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걸 파도타기하듯 해야 한다. 불행이 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끝이다. 내가 항상 얘기하듯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한발 한발 나가다보면 어느 새 다른 곳에 가 있기도 한다. 세상에 행복하기만 한 삶은 없다. 누구의 삶이든 그 안에 들어가보면 다 고되다. 그 고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모래성을 쌓았는데 옆의 아이가 엄마랑 더 큰 모래성을 쌓은 걸 보고 ‘아, 이렇게 다양한 모래성이 있구나’ 하면 되는데 ‘내 모래성은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하고 발로 부숴버리면 쌓아놓은 걸 다 물거품으로 만들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인생은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절대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님을 받아들이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훨씬 더 쉽게 파도를 탈 수 있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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