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부는 둘이다

부부 갈등 본질과 해법 제시한 김용태 교수

“나와 다른 부분 받아들이고 각자 성장해야”
등록 2018-02-23 09:44 수정 2020-05-03 04:28

“결혼한 그 이유 때문에 이혼한다.”

부부 상담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연애할 때 눈길을 끌었던 그의 ‘꼼꼼함’은 결혼한 뒤 ‘쩨쩨함’으로, ‘우직함’은 ‘고집불통’으로 보이게 된다. 베푸는 미덕은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변하고, 박학다식해 보여 좋았던 똘똘함은 ‘재수 없는 잘난 척’으로 느껴질 뿐이다. 내가 변한 것일까, 상대가 달라진 것일까. 그중 무엇도 아니라면 사랑이 변해서일까?

오랫동안 부부 관계를 치료해온 기독교 상담학자이자 최근 책 (덴스토리 펴냄)로 부부 갈등의 본질과 해법을 제시한 김용태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결혼한 뒤엔 연애 때와 달리 자신의 원래 패턴대로 살게 된다. 그래서 연애할 때 약이었던 것이 결혼 뒤엔 독으로 변한다. 상대에게 발견되는 나와 다른 부분을 ‘발달’의 주제로 받아들이고 각자 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알코올중독, 가정폭력, 지속적 외도 등으로 극도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자녀 때문에 참고 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자신의 심리적 이득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원가족 관계’(결혼 전 부모 등 원래 가족과 맺었던 관계)에서 형성된 자신의 주감정과 주제를 자세히 살펴볼 것을 조언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구원자’와 ‘불쌍녀’의 만남</font></font>남녀가 서로 끌리는 것에 유형이 있나.

먼저, 주제별로 끌리는 경우가 있다. 책에 자세히 썼듯이 대표적 유형이 ‘구원자’와 ‘불쌍녀’의 만남이다. 타인을 구원하려는 욕구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끌린다. 또, 성격 차이로 상대에게 끌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차분한 사람은 차분한 사람에게 안 끌린다. 차분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긴장이 되어서 데이트가 안 된다. 차분한 사람들은 약간 천방지축인 사람에게 끌린다.

책에 나온 주요 개념인 ‘주제’를 좀 쉽게 말해달라.

주제란 주된 테마(theme)로, 주된 감정과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상호작용할 때 화가 많았던 사람은 주감정이 ‘화’다. 화가 난 사람들은 공정과 공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에겐 ‘부당의 주제’가 있다. 나를 부당하게 대하면 자꾸 화가 난다. 이때 화는 감정이고 부당은 주제이다.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 얘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면, 상대가 나를 부당하게 대한다고 느낌에 따라 화가 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똑같이 부당하게 당하는데 화보다 슬픔을 느낀다.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주로 슬픔을 느꼈던 사람은 주감정이 슬픔이다. 화가 난 사람은 아무래도 달래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슬픈 사람은 밝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럼 배우자 선택과 원가족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겠다.

그렇다. 예를 들어 조용한 성격의 원가족과 살았던 사람은 데이트할 때 식구가 많고 북적대는 집 사람을 대개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에게 끌려 만나고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하면 거꾸로 된다. 북적거리는 게 시끄럽다고 느낀다. 데이트할 때 좋았던 것이 결혼하면 다 독이 된다. 약이 독이 되는 거다.

왜 약이 계속 약이지 않고 독이 되는 건가.

조용한 집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데이트할 때는 북적거리는 집을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해서 살면 자기 성향대로 살게 된다. 자기 성향은 조용한 거다. 옆에서 시끄럽게 굴면 조용함이 사라진다. ‘나는 조용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를 조용하게 안 놔두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렇게 독이 되는 거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원가족이 끼치는 영향이 크다면, 화목한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나. 즉, 원가족의 화목도가 현재 가족의 화목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화목한 부모 아래서 자라면 화목한 부부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고, 화목하지 않은 부모 아래서 자라면 화목하지 않은 부부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아래서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원가족에서의) 삶이 저(배우자와의) 삶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노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배우자의 배경이 나와 같을수록 좋아</font></font>데이트할 때의 약이 결혼한 뒤에 독이 된다고 했다. 그럼 독이 되는 순간 이혼해야 하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조용한 집에 살던 사람이 상호작용이 활발한 사람을 만나면, 상호작용이 활발한 쪽으로 이동해야 하고, 반대로 상호작용이 활발한 사람은 조용한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게 발달이고 발전이고 성숙이다. 서로 다른 부분을 ‘발달’의 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부가 각자 성장해야 한다. 개인뿐 아니라 단체, 국가도 마찬가지다.

배우자를 어떤 기준으로 고르면 좋을까. 성격, 가치관, 취미, 취향 가운데 무엇이 맞을 때 화목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나.

배우자의 배경이 나와 같을수록 좋다. 배경 차이가 많이 날수록 힘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문화적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권끼리 결혼했다면 같은 언어권과 결혼한 경우보다 훨씬 힘들다. 사회경제적 지위도 차이가 많이 날수록 힘들다. 일단 돈 쓰는 습관이 다르다. 한 사람은 원하는 걸 쉽게 사고 쓰는데, 상대는 그게 걱정돼 자꾸 “왜 이리 돈 개념이 없냐”며 제재를 한다. 반면 성격은 다를수록 행복해진다. 물론 너무 많이 다르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방방 뜨는 사람과 살면 불안은 해도 우울해지진 않는다. 반대로 방방 뜨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차분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섭긴 한데 방향을 잡아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 게 어우러져 살 수 있다. 가치관은 삶에 대한 지향점인데 그것이 같을수록 좋고 다를수록 힘들다. 한 명은 기독교를 믿고 한 명은 믿지 않을 때, 돈 쓰는 지향점이 달라진다. 한 명은 “그 돈이 내 돈이냐? 하나님의 돈”이라 하고, 다른 한 명은 “무슨 소리냐! 내가 번 돈인데 왜 교회에 십일조를 하냐”는 식의 논쟁을 벌이게 된다. 취미는 같으면 공유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다르더라도 배우는 즐거움이 있기에 같건 다르건 크게 상관은 없다.

배우자가 이럴 땐 무조건 이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나.

대표적인 예가 바람피우고 반성하지 않는 경우다. 이미 마음이 떠난 것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많은 아내가 상대 여자를 찾아간다. 부질없는 일인데 대체로 그렇게 한다. 저 여자를 떼놔야 남편의 마음이 나에게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조건적 처치’(Conditional Treatment)다. 조건이 갖춰져도 마음이 안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리적 이혼이 생긴다. 상대 여자를 찾을 게 아니라, 배우자와 나 사이에 소통이 안 되는 부분과 서로 매력이 떨어지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또 “나랑 살고 싶냐? 안 살고 싶냐?”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봐 상대가 마음을 안 바꾸면 못 사는 거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폭력은 이유 불문하고 멈춰야 한다. 생명 있는 존재는 막다른 길에 몰릴 때 가장 먼저 ‘생명 보전’을 생각한다. 나를 죽이려거나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와는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서로의 ‘아킬레스건’은 건들지 말아야</font></font>배우자가 주는 상처 중 가장 회복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신체적 폭력인가, 정서적 학대인가, 외도인가.

부부 싸움 규칙 가운데 ‘돈 히트 언더 더 벨트’(Don’t hit under the belt)가 있다. 권투할 때 벨트 아래를 치면 반칙이듯이, 상대가 너무 아파할 만한 것을 건드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다. 몸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사람에게 그 부분을 건드리면 안 되고,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멍청하다고 하는 건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이걸 건드리면 관계가 끝이겠구나’ 하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부부 관계가 자칫 모든 걸 공유하고 허용하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환상일 뿐이다.

배우자가 가정폭력, 외도, 도박, 알코올중독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는데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뭔가.

알코올, 종교, 약물 등에 중독된 사람들의 경우 ‘구원자’의 주제가 생긴다. 중독자들은 중독 상황에서는 구제 불능처럼 느껴지지만, 중독에서 벗어난 상태가 되면 자기반성을 심하게 하면서 사과를 한다. 중독자들의 자기반성과 사과는 일시적일 뿐인데도, 옆사람은 중독자에게서 중독물질만 떼어내면 그가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옆사람은 그를 중독물질에서 구해주려는 구원자가 되려 한다. 그렇게 형성되는 관계를 ‘융합관계’(Fused Relationship)라고 한다. 둘이 딱 붙어서 융합이 되어 못 헤어진다. 그래서 맞으면서도 못 헤어지고, 알코올중독자와도 못 헤어지고, 바람을 피우는데도 못 헤어진다.

구원자가 되는 심리적 이득 때문에 못 헤어진다는 건가.

맞다. 구원자가 되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고 자신이 더 착하다는 느낌이 든다. 심리치료를 하다보면, 이 심리적 이득 때문에 관계를 바꾸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저항이 엄청 일어난다.

극도로 불행하게 살면서도 “자녀를 위해 참고 산다”는 부부가 많은데, 실제로는 자녀 때문에 참고 사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런 경우는 아이들이 크면 ‘황혼이혼’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이 다 성장했는데 이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자기 주제에 얽혀 못 헤어지는 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를 넘어서야 비로소 좋은 관계 형성</font></font>‘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있다. 언제 결혼하면 좋은가.

생물학적, 심리학적 적령기가 다르다. 생물학적으로는 가임기를 고려해야겠지만, 심리적으로는 얼마나 부모로부터 독립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건 부모의 삶과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심리적으로 일찍 독립하는 사람이 있고 늦게 독립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 적령기에 정해진 나이는 없다.

결혼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결혼제도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나를 넘어서야 한다. 나를 넘어서지 않는 관계는 불가능하다. ‘이해한다’는 말, ‘공감한다’는 말의 뜻은 나를 넘어선다는 거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면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되고 나를 비워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자기중심적이 된다. 자기중심적이 되면 상대방 얘기가 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게 된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지 않으면 힘의 관계를 맺게 된다. 즉, “내 말 들어!”가 된다.

<font color="#008ABD">글 </font>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font color="#008ABD">사진 </font>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