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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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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애착은 최고의 정신건강제”

부모-자녀 사이 ‘감정 코칭’ 상담가 최성애 소장

“부모와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이 인간관계의 뿌리”
등록 2018-01-27 10:41 수정 2020-05-03 04:28

“다음주부터 기말고사니까 이제 공부해야지?”

“아, 또 공부, 지겨워!”

“지금까지 실컷 놀았는데, 뭐가 지겨워! 얼른 들어가서 공부해!”

“아 씨, 짜증 나 죽겠네.”

“아 씨? 짜증 나? 그게 부모에게 할 소리야!”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쾅!(문 닫는 소리)

<font size="4"><font color="#008ABD">감정적 조율이 선행된 훈육</font></font>

‘반도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다. 일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부모의 권유로 대화는 시작되지만, 짜증 내는 아이에게 부모가 더 큰 짜증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감정 코칭’이란 자녀의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에는 명확한 한계를 알려주고 그 한계 안에서 좀더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대화에서 부모가 “공부가 지겹다”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었다면 그 뒤 아이가 “아 씨, 짜증 나 죽겠네”와 같은 막말로 대응하진 않았을 것이다.

많은 부모가 잘못된 아이의 행동을 꾸짖는 것을 훈육이라 생각하지만, 진정한 훈육은 아이의 행동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부모가 ‘미리’ 이해심을 가지면서도 단호히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감정적 조율을 선행해야 한다.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감정 코칭’을 대중적으로 소개해온 최성애 HD행복연구소 소장은 최근 생애 초기 부모와 자녀가 맺는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 (해냄)를 펴냈다. 그는 “부모와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이 모든 인간관계의 뿌리가 된다. 불안정한 애착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내적 도식’을 만들어 부부 관계와 부모-자녀 관계에도 대물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나온 행복 연구 결과를 보면 행복은 ‘관계’에 있다고 한다. ‘부모와 맺는 애착’은 관계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애착은 관계의 ‘뿌리’다. 신생아는 태어나서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지도 입지도 씻지도 못하고, 100% 양육자에게 의존한다. 염소, 송아지, 망아지는 태어나서 몇 분이면 일어나 아장아장 걸어가 풀을 뜯어 먹는다. 인간만 그렇게 오랜 기간 전적으로 양육자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유가 있다. 심리학자 존 볼비 박사는 애착의 두 가지 이유를 분석했다.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일단 애착이 되어야만 잘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거다. 외부의 적, 맹수, 추위로부터 보호받으려면 애착이 잘 형성돼야 한다. 또 하나는 사회적·심리적 이유다. 애착을 형성하면서 아기는 자기의 내적 상태를 알 수 있고, 어떻게 공격성이나 분노의 수위를 조절해 남에게 전달하는지 등을 배운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집단에 굉장히 중요한 생존지능이다. 두 가지가 애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애착이 중요하다.

애착과 감정 코칭은 어떻게 연결되나.

갓난아기는 말은 못하는 대신 감정으로 양육자와 교류한다. 배고프면 울고, 화나면 화를 내고, 좋으면 빵긋 웃고, 비언어적으로 소통한다. 이는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정서적 표현과 욕구가 제대로 응답받으면, 아이는 자신을 진정시키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미주신경’이 발달한다. 나중에 부모가 옆에 없을 때 혼자서 그걸 조절하는 힘이 생긴다. 그것을 ‘자기진정’이라 한다. 감정 코칭을 해주면 좀더 쉽게 자기진정을 할 수 있다.

감정 코칭 외에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의 애착 형성에 도움이 되는가.

일단 부모가 화목한 것이 가장 좋다. 또 아이의 생애 첫 두 해 정도는 부모가 아이와 신체적·정서적으로 안정적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는 애착을 형성하는 데 아주 좋은 방식이다. 영국에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다쳤을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는지 연구했다. ① 평소 밥 먹여주던 사람 ② 평소 야단치던 사람 ③ 평소 놀아주던 사람 ④ 평소 공부 가르쳐주던 사람 ⑤ 평소 힘들 때 다독여주던 사람 중 누구였을까? 답은 ③번과 ⑤번이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자녀 밥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바쁘다. 아이에게 밥 먹여주고 공부시켜준다고 해서 신뢰관계가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잘 놀아주던 사람, 힘들 때 다독여주던 사람을 신뢰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불안정한 애착이 문제아 낳아</font></font>부모와 맺는 애착이 자녀의 학업이나 사회적 성취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미국 연구를 보면, 안정적인 부부 관계가 자녀의 학업 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예측 요인으로 밝혀졌다. 부부 사이가 나쁘면 엄마는 자녀에게 과잉 집착하고, 아빠는 아내와 자녀 모두로부터 멀어진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즉 만 18살까지 친엄마·친아빠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25%밖에 안 된다. 75%는 이혼, 재혼, 동거, 혹은 조손 가정이다. 부모와 불안정한 애착 관계를 갖는 아이는 학업뿐 아니라 정서나 또래 관계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게 연구 결과다.

책을 보면, 부모와 맺은 애착이 배우자나 자녀와 맺는 애착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부모와 맺은 애착이 왜 배우자나 자녀 관계에도 되풀이되나.

의식도 생각도 없던 영유아기에 배가 고파서 울었다. 그때 누가 와서 푸근히 안아주고 돌봐주면 세상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런 것이 한두 번 쌓이면 아이의 내면에 ‘세상은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곳’이라는 기본적인 인식 틀이 생긴다. 그런 도식이 자리잡으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을 믿고 따르며 자기가 필요한 것을 편안하게 요구할 수 있다. 반면 내가 울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공포와 불안이 생긴다. 그래서 더 크게 울었는데 누가 와서 “시끄럽다”고 때리면, 내 욕구를 표현해야 할지 표현하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거나 화가 나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부정적 애착의 도식이 생기면, 나중에 학교와 사회에 나가 연인과 배우자를 만날 때도 자기 욕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또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이게 된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도식이 부정적이면 부정적 경험이 쌓여 내적 도식에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역시 세상은 차갑고, 나는 무가치하며, 사람들은 나를 무시한다’는 도식이 생긴다.

성인기에 손상된 애착이 회복될 수 있나.

다행인 것은, 우리 뇌는 한번 정해졌다 해서 콘크리트처럼 굳어지는 게 아니다.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 한다. 뇌세포는 죽을 때까지 생각이 아니라 감정적 경험을 통해 변한다. 깊은 감동이나 사랑을 받는 등 긍정적 감정 경험이 쌓이다보면 ‘세상이 그렇게 차가운 것은 아니구나’ 하고 내적 도식이 바뀌게 된다. 부모가 부유하면 자녀도 부유한 경우가 많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해도 스스로 개척해서 부를 일구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정서적으로 잘 돌봐주면 자녀가 정서적으로 잘 살 확률이 높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본인이 배우고 검증된 방식으로 노력하면 정서적으로 잘 살 수 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잘살 가능성의 유의미한 상관계수는 40살까지다. 40살 이후엔 상관계수가 없다. 부모가 돈을 물려줘도 사업으로 망할 수도 있고, 도박으로 탕진할 수도 있다. 부모가 정서적·안정적으로 잘해줬어도 자녀가 정서적으로 잘 살 가능성의 상관계수는 역시 대부분 40살까지다. ‘마흔 이후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로도 밝혀졌다. 어릴 때 정서적으로 잘 큰 사람만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당연한 얘기를 책에 쓸 필요가 없다. 정서적 흙수저도 정서적 금수저가 돼, 이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책을 쓴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눈 안 마주치면 애착 손상 가능성</font></font>긍정적 경험이 없어 내적 도식이 달라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애착 손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

첫째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우울, 불안, 불신, 반복되는 불행한 관계, 중독이나 도피성 등 심리사회적 문제의 핵심이 혹시 애착 손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고려해봐야 한다. 둘째는 원인이 규명됐다면 애착 회복과 복구를 위한 긍정심(정서적 부)을 쌓으려 노력하거나 심리치료를 받으면 된다.

자신의 애착 손상을 알아보는 체크리스트가 있나.

핵심적인 두 가지를 살펴보라. 첫째,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며 대인관계에서 오는 위험부담 대신 일, 술, 쇼핑, 인터넷 등을 선호하는가? 둘째, 느닷없이 버럭 화가 나거나 감정 조절이 어렵거나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 자살 충동 등을 느끼나? 대개 이런 사람들은 의학적 원인 없이 두통, 복통, 소화장애, 수면장애, 건강염려증 등을 호소하는 일이 많고 전반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트라우마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판데르콜크 박사는 “안정적인 애착은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정신건강 예방제다”라고 했다.

자녀의 애착 손상을 아는 체크리스트가 있나.

가장 큰 특징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친다는 건 연결한다는 건데, 연결 자체가 불안하거나 불편하기 때문에 시선을 피하고 대화도 최소한으로 하려 한다. 대화할 때 고개를 숙이거나 비뚤게 앉아서 딴 데를 쳐다보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고 주의 집중이 어렵고 충동 조절이 안 되거나 저조한 상태로 “아니요” “몰라요” “싫어요”라는 세 마디만 하는 것도 애착 손상으로 보인다. 또 건강하지 않은 또래 그룹에 대한 소속감을 추구하면서 비밀이 많은 아이도 애착 손상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폭력배에 들어간 사람들이 애착 손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 그룹이 보호자 구실도 해주고 소속원끼리 의리도 강해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파탄난 관계도 치료로 회복 가능 </font></font>이미 관계가 파탄에 이른, 사춘기 자녀와 20대 자녀를 둔 부모는 어떻게 자녀와의 애착을 회복할 수 있을까.

요즘 애착 손상에 대한 회복 치료를 많이 한다. 사전 예방이 가장 좋지만 치료도 가능하다.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가장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상담실에 온 부모와 자녀는 서로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 등을 하며 상대방 탓을 많이 한다. 특히 애착 손상을 입은 사춘기 자녀는 “당신이 알면 뭘 알아?”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며 부모를 원망하고 거부한다. 분노, 슬픔, 소외, 단절 등 상처받은 마음을 감정 코칭으로 해소해주면서 신뢰, 유대, 친밀을 회복하는 치료 과정이 있는데 평균 두 달 정도면 효과를 볼 수 있다.

<font color="#008ABD">글 </font>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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