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금메달 선수보다 행복한 선수가 낫다”

스타 선수들의 ‘멘털 코치’ 조수경 심리상담가 인터뷰…

“상담 목표는 성적 아니라 자존감 향상”
등록 2017-12-30 08:08 수정 2020-05-03 04:28

2012년 런던올릭픽 예선에서 실격 처리를 당한 뒤 판정 번복을 거쳐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에게는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며 마음을 다잡아준 ‘멘탈 코치’가 있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슈즈가 벗겨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공연을 마무리한 손연재 선수에게도 오랫동안 위기극복 능력을 키워준 멘탈 코치가 있었다. 미국 메이저대회에서 승승장구하는 박인비 선수 역시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매주 멘탈 코치와 상담한 것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이 언급한 ‘멘탈 코치’는 누굴까. 박태환·박인비·손연재·양학선·유소연 등 스타 스포츠선수들을 비롯해 200명 넘는 선수들의 멘탈을 코치해온 스포츠심리상담가 조수경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운동하는 기계’는 별로다</font></font>

조씨는 이화여대 체육학과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알게 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보스턴의 자랑, 셀틱스 농구단과 레드삭스 야구단 등에서 인턴십을 하며 스포츠심리학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경험했다. 이후 스포츠심리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그는 2008년 조수경스포츠심리연구소의 문을 열어 ‘국내 개업 1호’ 스포츠심리상담가가 됐다. 그에게 경기력 향상을 위한 불안 해소법, 집중력과 자신감 향상 등 선수에게 필요한 멘탈 강화법을 묻기 위해 찾아갔지만, 돌아온 답변은 예상치 못했던 ‘행복’과 ‘자존감’이었다. 조수경 소장은 “스포츠심리상담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성적에 상관없이 행복한 선수,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며 “금메달을 땄지만 시합 준비와 과정이 고통스러운 선수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과정이 행복한 선수가 훨씬 낫고, 그렇게 만드는 게 내 의무”라고 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분주한 조씨에게 2017년 12월19일 물었다.

선수들과 상담은 주로 경기 전에 하나, 아니면 평소 주기적으로 하나.

선수들과 1년씩 상담 계약을 맺는다. 상담 초기에 정밀심리검사를 해 선수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1년간의 멘탈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짠다. ‘주 1회 대면 상담’이 원칙이다. 국외 경기에 참석 중이라면 영상 상담을 한다. 시합을 앞두고 선수가 원하거나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유럽이든 미국이든 함께 가서 시합 전부터 마칠 때까지 날마다 만난다. 함께 가지 않을 때에는 전화나 영상통화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선수들과 하는 ‘멘탈 상담’의 목표는 무엇인가. 자신감 향상인가, 불안 해소인가, 혹은 집중력 향상인가?

자신감 향상, 불안 해소, 집중력 향상, 위기극복 능력, 회복탄력성 등이 멘탈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다. 이들 중 강한 것은 유지하고 약한 것은 강화시키는 게 목표다.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의논해 목표를 설정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목표다. 즉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시합을 잘할 수 있게 만드는, 이른바 ‘경기력 향상’은 단기적 목표라는 거다. 선수에게 시합 시간은 굉장히 짧다. 선수들은 선수로 살아가는 시간보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으로 시합을 준비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시합 내 멘탈뿐 아니라, 시합 밖에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멘탈을 강화시킴으로써 시합 내 멘탈을 강화시킨다. 마음이 행복하면 시합을 잘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한 선수,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걸 장기적인 목표로 한다. 나는 선수 앞에서 “나는 당신을 우승시키거나 금메달을 따게 하려고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운동하는 기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이 행복한 선수가 되게 하려고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고 상담을 시작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초창기 ‘사이비 아니냐’ 반응도</font></font>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행복한 선수, 심지어 경기에 실패하더라도 행복한 선수로 살아가게 만드는 게 상담의 목표라는 건가?

철저히 그렇다. 승부와 전혀 상관없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실과 진정을 다 쏟아붓지 않았다면, 세상이 만든 순위가 어떻든지, 잘못한 것이다. 순위는 내가 잘하면 올라가는 선물일 뿐이다. 순위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럼 성적이 뛰어나지만 시합 준비와 시합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선수보다, 성적이 별로더라도 시합 준비와 시합이 행복한 선수가 더 낫다는 건가?

훨씬 더 낫다. 그렇게 만드는 게 내 의무다. 선수들은 대개 인생의 초창기인 10∼20대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풍성하게 느끼게 하고 인생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게, 선수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자 내가 해야 할 의무다. 그래서 선수들이 가난하건 부자이건, 실력이 특출하건 아니건, 자신의 존재를 굉장히 소중하게 느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자존감을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런 코칭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선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런 선수는 없었다(웃음). 연구소 초창기에 ‘행복한 선수’ ‘행복한 사람’을 얘기했을 때 ‘사이비 아니냐’는 반응을 겪은 적은 있다. 그런데 나와 상담하는 선수들이 성과를 내고 세월이 쌓이다보니 지금은 내 철학과 코칭 방식이 신뢰를 얻고 있다. 선수들이 “시합에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들고 찾아온다. 그럼 나는 그건 시합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당신이 평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답해준다. 성격이 급한 선수가 시합에서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평소에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시합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한두 번의 코칭으로 문제 해결은 힘들다. 코칭은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선수들이 주로 호소하는 심리적 고통은 불안인가?

시합이라는 상황 자체가 기본적으로 긴장과 불안을 동반한다. 100m 달리기 출발선에만 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생리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냐. 긴장과 불안을 즐길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선수 생활 안 하면 된다고 말한다. 선수로 살아가려는 이상 긴장과 불안을 적정 수준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견디고 이겨내 희열을 맛볼 수 있게 가르친다. 불안은 나쁜 것이고, 있으면 안 되며,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항상 같이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루틴이 불안을 낮춰준다</font></font>선수들의 불안을 어떻게 달랠 수 있나.

스포츠심리학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검증된 방법이 ‘루틴’이다. 박태환·박인비·손연재·양학선·이상호 등 어떤 종목 선수든 루틴을 만들고나서 기록을 계속 냈다. 루틴이라는 것은 시합 당일 눈을 떠서 시합장에 가기까지, 또 시합장에서 대기할 때부터 시합을 치르고 시합을 마칠 때까지 과정을 촘촘히 짠 생각과 행동의 일정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가장 먼저 화장실에 가고, 대기실 도착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고, 시합장에 첫발을 디딜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게 다 정해져 있다. 멘탈 코치가 선수의 경기를 잘 관찰해서 각자에게 맞는 루틴을 만들어준다. 불안이나 긴장이 높아지면 본인도 모르게 표정과 눈빛은 물론이고, 자세와 행동까지 평소와 달라진다. 그래서 경기력에 방해되는 요소들은 제거하고 경기에 도움되는 행동과 생각을 강화시켜 탄탄하게 만든 게 루틴이다. 루틴이 있으면 아무리 불안해도 그 순서대로만 진행하면 되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루틴이라는 방법은 수능 같은 큰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다.

시합 불안과 시험 불안은 본질적으로 같은 불안이다. 그래서 수능을 앞둔 친구 자녀들에게 루틴을 만들어줘서 효과를 보기도 했다(웃음). 학생마다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푸는 패턴이 있다. 평상시에는 패턴대로 문제를 풀지만 수능에서는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머리가 하얘져서 다음 문제로 못 넘어간다. 시험을 보는 패턴에 대한 루틴만 정해줘도 굉장히 큰 효과를 본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은 일반인보다 승부욕이나 담력이 더 강한가. 이들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특징이 있나?

일반인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박태환, 박인비 등이 일반인보다 특출한 멘탈이 있어서 최고의 선수가 것이 아니다. 그 선수들의 선천적 멘탈을 각각 수영과 골프에 맞게 멘탈 트레이닝을 시켜서 그런 사람이 된 거다. 혹독한 경쟁 상황과 멘탈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는 것, 언제든지 승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들의 멘탈은 그렇게 되도록 개발되고 트레이닝 된 결과이다. 그들이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멘탈이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장 중요한 건 위기극복 능력</font></font>선수의 심리 상태와 경기 성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정비례한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고, 내가 경험적으로 보기에도 그렇다. 누구보다 골프 선수들은 “멘탈이 70∼80%”라고도 말한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도 시합 당일의 심리가 경기 결과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 사이에선 기술력·체력·체격의 차이가 백지장이기 때문에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심리가 핵심이다.

심리 중 경기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위기극복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손연재 선수는 올림픽에서 슈즈가 벗겨졌는데 마치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른다는 듯 마지막까지 자기 동작을 다 했다. 만약 그때 움찔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면 동작이 확 틀어졌을 것이다. 시합에서 위기는 늘 있을 수 있고, 내가 예상치 못한 위기들이 많다. 그때마다 머리가 하얘지면 안 된다. 위기에도 그다음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후회 없이 자기가 준비한 것을 100% 발휘하기 위해 루틴도 만들고 멘탈 트레이닝도 하는 것이다.

경기 전과 경기 후에 상담이 목표하는 바는 다를 거 같다. 경기 전에는 불안을 다룬다면, 경기 후에는 허무감이나 좌절감을 다루나.

경기 전과 후의 멘탈 목표가 다르고 안 다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성적이 나쁘더라도 아쉬움은 좀 있더라도, 자기가 후회 없는 시합을 했으면 100점이다. 결과에 놀아나지 않고 그 시합의 준비 과정에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느냐에 가치를 둘 수 있는 마인드가 진정한 멘탈이다.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이 도움이 되나? 아니면 ‘이겨도 되고 져도 괜찮다’ 하는 편안한 마음이 도움이 되나?

많은 선수가 묻는 질문이다. 나는 시합 당일 날 어떤 마음이 먹어지는지를 보고 그 마음을 인정하고 시합을 준비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한다. 편안한 마음이 먹어지면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불타는 승부욕이 든다면 그 마음으로 준비를 하되, 오버되지 않는 적정 수준으로 하도록 한다. 어떤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의 성과를 어떻게 예측하나?

노코멘트다(웃음). 올림픽은 축제의 장이며, 모든 선수들이 다 올림피언이다.

<font color="#008ABD">글</font>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