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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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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 위해 희생하고 있나요

자기 욕구 소외하면 분노·울분 쌓여…

‘인정욕구’ 파헤친 정신과 전문의 이인수
등록 2017-10-26 04:50 수정 2020-05-03 04:28

그리스신화의 파에톤은 자신이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임을 인정받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인정을 받으려 태양의 마차에 올랐다가 파멸에 이르고 만다. 이 신화는 ‘인정욕구’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파에톤처럼 타인의 인정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심리를 ‘파에톤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인정욕구엔 끝이 없다. 하나를 성취하거나 한번 인정받았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라 바로 다음 성취나 인정을 위해 달려야 한다. 왜 인정욕구는 만족을 모르는 걸까? 인정욕구의 뿌리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으며, 인정욕구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인정욕구는 어떤 사람들에게 유별나게 발달하는 것이며, 폭주기관차 같은 그들의 인정욕구는 멈출 방법이 없을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인정욕구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위즈덤하우스)을 쓴 국제정신분석가 이인수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그는 “내가 나로서 충분하다고 느끼면 외부적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무가치함과 그에 대한 불안이 인정욕구로 나아가게 한다”며 “과도한 인정욕구는 지속적 희생으로 인한 분노를 야기하고 이 분노를 억압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정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내가 나로서 충분히 자랑스러울 수 있는,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하며, 이 발견은 내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주는 건강한 거울(타자)과의 관계에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짜 나’로 인정받으면 허무할 뿐인정욕구와 성공의 상관관계는? 인정욕구가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나.

먼저 성공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사람이 성취한 만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돈을 벌거나 유명 대학을 가거나 1등을 하거나, 모두 눈에 보이는 성취가 높을수록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인정욕구가 강할수록 외적 성취도 높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과연 그게 성공한 인생인가 하면, 그것은 좀 다른 스토리다. 나는 책에서 또 다른 성공의 정의를 말했다. 그것은 행복한 만큼 성공이라는 것이다. 지금 엄청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내 인생은 성공하지 못한 거다. 가진 게 없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자신에게 굉장히 만족스럽다면 행복한 것이고, 그 인생은 성공적인 것이다. 그래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인정욕구와의 상관관계는 좀 달라진다.

인정욕구가 외적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내적 만족감에선 반비례하나.

인정받으려는 것은 아주 건강한 욕구다. 전혀 병적인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성숙해지고 성장할 때 가장 중요한 사랑의 대상인 부모의 인정을 받고, 부모의 가치관을 흡수하고 따라가면서 인격이 성장한다. 인정받으려는 욕구,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통해 개인은 성숙해지고 성장한다. 인정욕구가 문제 되는 지점은 인정받기 위해, 즉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내 욕구를 계속 희생할 때다. 예를 들어 나는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먹는데, 부장은 굉장히 매운 짬뽕을 좋아한다고 하자. 부장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배탈이 나더라도 계속 매운 짬뽕을 먹겠다면 이건 병적인 것이다. 만약 부장이 짬뽕을 먹자고 할 때 “부장님, 저는 매운 걸 못 먹어요. 저는 그냥 우동 먹을래요”라고 한다면 이건 건강한 거다. 인정받고자 하지만 자기의 욕구와 감정을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기 욕구를 희생하지 않는 수준까지의 인정욕구는 건강하고, 그 이상이면 병리적인 것이다?

그렇다. 자기를 지나치게 희생하고 감정을 숨겨야 하는 상태에 이른 것을 내 책에서 ‘인정중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럼, 인정욕구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나.

사실 우리는 진정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하다. 진정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나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진짜 나를 감추고 굉장히 친절한 사람으로, 굉장히 특별한 모습으로 남에게 비쳐 그걸로 인정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허무하다. 사람들은 나를 환호하고 칭찬하고 인정해주지만, ‘진짜 내’가 인정받는 게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짜 나로서 인정받는 거다.

인정욕구가 아예 없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인정욕구는 자연스러운 욕구이기 때문에 누가 가져라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인정욕구를 전혀 못 느끼고 인정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어린 시절에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다시 실망하고 싶지 않아 아예 그 기대를 포기해버린다.

‘감정의 스펙트럼’ 수용하는 것이 인정 인정욕구가 너무 강하면 불행해지는 이유는 뭔가.

인정욕구가 왜 강해야 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나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더 많은 외부적 확인을 안 받아도 된다.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것은, 나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마음 깊이 ‘나는 부족한 인간이야’ ‘나는 그렇게 사랑스럽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인정을 자꾸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정을 받아도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일시적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외부의 피드백만으로 자신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인정욕구는 내가 나를 인정하기 전까지 결코 만족되지 않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나 혼자의 힘으로 하긴 어렵다. 마음에 저장된 부정적 믿음에 대한 현실 검증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사람인지, 아니면 너무 밉고 부족한 사람인지, 나 혼자 구분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부정적 믿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 더 접근하기 어렵다. 이 현실 검증이 언제 가능하냐면,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서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상대가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당신은 가치가 있다”라는 반응을 보여줄 때만 확인된다. 나를 인정하기 위해 나를 아주 건강하게 비춰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왜곡되게 비추지 않고 아주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비춰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그 거울을 찾아야 한다.

그 거울은 배우자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주변에서 찾지 못하면 치료실에서 정신분석가가 그 역할을 해주는 건가.

건강한 거울이 주변에 있다면 그 경험을 통해 나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주변에 없거나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줘도 내가 끊임없이 자기 회의, 자기 의심을 한다면 정신분석가를 찾아가는 것도 좋다.

외모도 보잘것없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인정받기도 어렵거니와, 누군가 인정해준다고 해도 본인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 같다.

직업, 키, 수입 등은 외부적 조건이다.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나의 감정,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수용해준다는 것이다.

무가치감·불안이 ‘인정중독’의 근원인정이라는 것이 나의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 감정의 스펙트럼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놀랍다.

그게 진짜 인정이다.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건널목에 10명이 서 있으면 모두가 초록불이면 길을 건넌다는 것은 다 안다. 모두가 갖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초록불이 켜질 때 갖는 감정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기쁠 수도 있고,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감정이 그 사람인 거다.

과도한 인정욕구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나.

우선 자존감 문제의 원인을 바꾸지 않고 인정에만 매달리면, 계속 나를 희생하게 된다. 진짜 나의 욕구는 계속 소외된다. 그러면 많은 경우 울분이 쌓이고, 분노하게 된다. 결국 분노를 억압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개 몸에 여러 질환이 오고, 우울증이 온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그럼 인정욕구가 과한 사람이 자주 느끼는 감정은 분노인가.

분노도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감정은 불안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험을 망치면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거나 자살한다. 그들은 실패 혹은 외부의 인정을 못 받는 상황을 겪으면 바로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낀다. 내가 무가치한 상황은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고 긍정적 반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극심한 두려움을 겪을 때,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여러 감정이 있겠지만, 무가치감과 불안이 인정욕구의 근간에 있다고 본다.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들의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인가. 한눈에 ‘저 사람은 인정욕구가 강하구나’라는 걸 아는 특징이 있나.

내 책에선 4가지 유형을 말했다. 네 유형이 인정욕구가 강한, 어떤 성격적 특성과 관련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의존적인 사람이다.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사람, 혼자 있기 두려운 사람은 자기가 의지할 대상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보호와 지지를 받지 않고 혼자 있기 두려운 사람들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기희생적인 사람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자꾸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을 제일 많이 맡는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강박적인 사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도 내면에는, 부족하면 타인의 인정을 못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완벽하게 해야 한다. 네 번째는 분노를 표현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 가치 인정하면 편안해질 것”과도한 인정욕구를 가진 사람이 자기 가치를 인정하고 나면 어떻게 달라지나.

우선은 자신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이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다. 외부의 인정에 매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불편하게 느낀다. 나는 부족하고 뭔가 부적절하고 사랑스럽지 않고 모자라다는 느낌을 계속 받는데, 그것이 줄어든다. 나로서 갖는 다양한 감정과 욕구도 그냥 ‘괜찮다, 그것이 나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편안함이다. 나 자신으로 편안하기 때문에 굳이 이를 다른 사람에게 자꾸 확인받을 필요가 없다. 그냥 이대로 내가 편하고 일이 만족스럽고, 때로 내가 자랑스럽다면 굳이 타인이 내 가치를 확인해주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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