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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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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행복을 이루는 바탕색”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 정신과 전문의

“피부 관리하듯 자존감 관리해야”
등록 2017-09-05 19:17 수정 2020-05-03 04:28

자존감이 화두인 시대다. 자존감이 있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존감과 행복, 그리고 불안과 분노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출간 1년 동안 45만 부가 팔리며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의 저자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의원(정신과 전문의) 원장에게 물었다.

윤 원장은 “건강에서 체력이 기초가 되듯 행복도 자존감이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영원불변의 자존감은 없으며 세상에는 우리의 자존감을 위협하는 장애물투성이”이기에 “피부를 관리하듯 자존감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존감 약한 사람이 겪는 감정의 악순환 자존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넘쳐난다. 자존감과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우리 할머니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다. 이 세대에겐 배부르게 먹는 일이 행복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먹을거리를 해주는 것이었고, 행복의 기준은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 즉 베트남 전쟁을 겪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돈을 벌었던 베이비붐 세대는 돈을 많이 벌고 명예·권력 등을 가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며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고 물질적 부를 추구하다 한 방에 끝날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행복의) 다양화가 시작됐다. 창조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좀 알아야겠고 먹을 때도 배부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각·후각·미각적으로 많은 걸 충족할 수 있어야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대두된 것이 ‘자존감’이다.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나 자신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행복하니까 수많은 행복의 요소 가운데 ‘자기만족’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행복의 모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건강에서 체력이 중요하듯, 자존감은 행복을 이루는 바탕색이다. 바탕색이 있다고 다 좋은 그림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근간과 기초가 된다.

정신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는 얼마나 자존감과 관련돼 있나.

그들의 문제에는 불안, 우울, 불면, 무기력 등이 있다. 자존감은 기초, 즉 체력과 같기 때문에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불안이나 분노가 더 커질 수 있고 또 그것이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통해 자존감을 더 약화한다. 이런 악순환을 겪으면서 증상이 더 심해진다. 누구에게나 불안과 무기력이 올 수 있는데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앓고 지나가는 반면,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그 악순환으로 사시사철 불안했다 화났다를 반복한다.

자존감이 낮으면 왜 더 큰 분노와 불안을 느끼나.

내가 만약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다고 하자. 약속 상대가 자존감이 강하다면 ‘사정이 있나보다, 차가 막히나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약하면 ‘나를 무시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늦지 않을 텐데 나를 무시하니까 늦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상황을 경험하더라도 전혀 다른 판단과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 이처럼 자존감이 약하면 더 화가 나고 더 불안하다. 약속에 늦은 내가 자존감이 강하다면 ‘상대가 상황을 잘 이해해줄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자존감이 약하다면 ‘나에게 엄청 화를 내면 어떡하지? 이미 화가 나서 떠나버렸으면 어쩌지?’라고 전전긍긍한다.

자기효능감·자기조절감·자기안전감 자존감 유무가 인지에 영향을 끼치고 그 인지가 부정적 감정을 더 자극한다는 건가.

그렇다. 자존감이 약하다는 건 자신에 대해 부정적 인지를 한다는 거다. 나아가 대인관계와 사회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지를 하게 만든다. 콜센터 직원 같은 감정노동자들이 힘들어하는 상대가 바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대뜸 전화해서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런 식으로 처리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뭘로 보겠나, 만난 적도 없는데. “나를 무시하니까 기계를 안 고쳐주는 거 아냐! 너희가 뭔가 날 속이려는 거지!” 콜센터 직원이 뭘 속이겠나.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의심도 많고 불안도 많아서 화도 많이 낸다.

그럼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일은 ‘나를 무시한다, 뭔가 속이려 한다’ 등의 인지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건가.

그렇다. 그러나 인지 오류만 바로잡아주려 하면 싸움만 된다. 충분히 공감해주고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놓은 뒤 생각의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본인이 열심히 생각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해도, 상처가 많고 공감을 받아본 경험이 없으면 서운한 감정이 많다. 그래서 충분한 공감이 필요하다. 또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원활하게 다양한 생각을 못한다. 거기에 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자신을 사랑하세요” 얘기하면 더 짜증만 불러일으킨다.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모의 양육 방식 혹은 가정환경인가.

똑같은 부모 밑에 자란 자녀들의 경우에도 자존감이 다르다. 똑같은 부모를 두었더라도 얼굴이 다르듯 타고난 기질이 달라서 자존감이 다를 수 있다. 좋은 환경, 좋은 부모 아래서도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있다. 환경이 중요하지만, 아이의 자존감이 낮다고 부모를 탓하는 건 상당히 경계할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환경에 의해 자존감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자존감은 평생 있고 없고가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근간이 되는 게 ‘자기효능감’이다. 내가 가치 있고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기효능감이 있는 거다. 좋은 직업에 높은 연봉을 받으면 자존감이 강할 거라고 여기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둘째, ‘자기조절감’이 있다. 인생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핸들링(조정)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예컨대 재벌 2세가 자존감이 낮은 경우는 돈과 사회적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효능감은 있지만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기조절감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요소는, 이 모든 게 안전한 상황과 안정된 상태에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안전감’이다. 예를 들어 한 톱스타가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늘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등 안전하지 않다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나는 유능하다,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안전한 바탕 위에서 굴러가고 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자존감의 축이다.

“인간의 자존감은 영원하지 않다” 어린 시절 환경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게 형성됐더라도 성인기에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나.

우리(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다. 허약한 자존감을 ‘재시공’해주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자신을 바꾸려 노력해도 지친 뇌, 아픈 뇌, 세로토닌이 부족한 뇌로 하다보니 재활이 어렵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방향을 잡아준다. 우울증은 다 치료됐는데 심리적 상처가 많으면 심리상담이나 예술치료를 병행한다.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짓밟는 환경, 예를 들어 나를 무시하는 상사나 억압하는 부모 아래서 어떻게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환경, 상사라는 환경이 나를 괴롭힐 때, 마음이 불편하면 이걸 확장시키게 된다. 엄마가 저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저럴 거라고 여기고, 직장 상사가 내 보고서에 핀잔을 주면 회사 사람 모두 나를 불만족스러워하는 걸로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더 마음이 괴로운 거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의견이자, 내 보고서에 대한 상사의 의견일 뿐이다. ‘단지 ~일 뿐이다’라고 (부정적 요소를) 고립시켜야 한다. 그다음엔 그들이 눈앞에 없을 때 신경 쓰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그들을 내 머릿속에 불러온다. 밖에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는데, 그것은 쳐다보지 않고 계속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했던 사람만 생각한다. 그것으로부터 분리해 눈에 보이는 것만 집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없을 때만이라도 쉬어야 한다.

저서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수영과 같아서 멈춰 있으면 중력이 우리를 끌어당긴다”고 했다. 자존감이 높게 형성된 사람도 평생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인가.

영원한 것은 없다. 인간의 자존감은 영원하지 않다. 자존감도 결국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뇌는 몸이다. 뇌랑 가장 비슷한 조직이 피부다. 둘 다 외배엽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부가 좋았던 사람도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매일 로션을 발라주지 않으면 푸석푸석해진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도 계속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때문에 쉬어야 하고, 먹을 것을 넣어줘야 하고, 단련해야 한다. 피부 관리하듯이 관리해야 한다. 하루 15분 이상 자기 관리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열심히 산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잘 쉬어야 행복할 수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이 연애인가.

사랑이 가장 직격탄을 받는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사랑하기는 좀 힘들다. 연애가 힘드니까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힘들고, 결혼하더라도 부부간 또는 자녀와 사랑을 주고받기 힘들다. ‘나는 머리가 참 나빠’라고 생각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사랑스럽지 않아’ 생각하면서 연애를 하면 상대가 사랑을 줘도 받는 느낌이 잘 안 들고 ‘정말 나를 사랑할까’ 의심한다. 내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사랑을 실패로 만든다.

당신은 예민한가 너그러운가 그 밖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관찰되는 공통점은.

‘예민함’이다.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행동 하나하나 분석하고 부정적 의미와 해석을 부여한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깊게 들어가지 못한다. 또 깊은 관계가 되어도 별거 아닌 것을 계속 파고드니까 주위 사람들이 버거워서 못 견딘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피상적으로 된다. 부정적 해석을 많이 하니 서운한 게 참 많다. 행동으로 봤을 때는 중독되는 분이 많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술로 나를 사랑하거나, 내가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도박에 빠진다. 내가 정신 차려서 일하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생각해서 커피를 다량으로 마시며 밤새 일하는 카페인 중독도 많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행동은.

일단 너그럽다. 타인이 나를 해코지할 리 없다고 생각하니까. 식당에서 음식이 좀 늦게 나와도 “음식이 늦게 나왔구나”까지만 말한다. 아니면 “다음에 좀 빨리 주세요”라거나 “여기는 음식이 늦게 나오는 곳이니까 다음에는 다른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상대를 의심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는 여유가 있다. 그러니 대인관계도 잘 풀린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이게 10~20년 쌓이면 얼굴 표정이 누가 봐도 편안해 보인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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