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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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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근육 같은 것

“부모가 스스로 만족해야 아이도 행복”

조선미 아주의대 교수의 ‘불안’ 처방전
등록 2017-07-27 22:11 수정 2020-05-03 04:28

대한민국 부모는 ‘불안’을 먹고 산다. 치열한 경쟁 구조에서 내 아이가 혹시 낙오할까 염려하며 4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학습지를 들이민다. 해방 뒤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자녀 세대가 등장했다는 지금 대한민국 부모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불안하고 불행한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자녀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

등의 저서와 등의 방송 출연을 통해 우리 시대 ‘부모 멘토’로 불리는 조선미 아주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에게 물었다. 조 교수는 “부모가 불안하고 불행하면 결코 자녀를 행복하게 키울 수 없다”며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짐을 아이에게 지우지 말고 부모 스스로의 힘으로 만족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야근·밤샘노동으로 불행한 아이들소아정신과를 방문하는 아이들이 시대별로 차이가 있나.

가장 큰 차이는, 예전엔 교과서에 나오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많이 왔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자폐 등의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은 교과서에 없는 문제를 가진 아이가 많이 온다. 타고난 장애 문제로 오는 게 아니라 부모-자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로 발생해 더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원래 아이의 발달엔 문제가 없는데 오랜 기간 특정 환경에 살면서 문제가 발생해, 병명을 딱히 붙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부모의 양육 방식을 바꾸면 되니까 치료하기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웬만하면 안 바뀐다. (웃음) 장애는 약을 먹어서 치료하면 되는데, 환경적으로 발생한 문제는 성장하며 뇌가 고착돼 고치기 훨씬 어렵다. 보통 병원에 올 정도면 엄마가 정해진 방식으로 아이를 쭉 대해온 건데, 병원에서 조금 고쳐 보내면 다시 집에서 아이가 망가진다.

대한민국에선 청소년 자살율이 높고 초등학생의 행복도도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뭘까.

아이들은 재미있거나 심심하게 지내야 한다. 그런데 보통 아이들이 학원 또는 숙제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은, 어른으로 치면 일일 노동시간이다. 학원에 가는 건 어른으로 치면 야근이다. 학원 갔다 와서 숙제하는 건 밤샘노동이다. 쉬고 놀고 멍 때리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이게 아이들의 삶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불행하다.

부모가 유례없이 불안과 불행에 시달리는 시대다. 부모가 갈수록 심한 불안과 불행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뭔가.
옛날보다 먹고사는 게 훨씬 나아졌고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먹고사는 일이 더 힘들어지진 않았는데 더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는 성공에 대한 허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그 전의 부모보다 좀더 부모로부터 관심받으며 자랐다. 지금 부모보다 앞선 부모 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어 거의 방치돼 키워졌는데, 지금 부모는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홀대당하며 성장해왔다. 그래서 지금 부모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다. 그런데 잘하는 사람은 소수다보니 억울하고 속상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성공해야 행복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불안한 거다. 못해도 되는 자유가 없다.

“못해도 되는 자유가 없다”

‘성공해야 행복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그걸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식의 삶과 내 삶을 구별해야 한다. 부모들은 행복의 기준을 굉장히 피상적으로 본다. 그가 어느 동네에 살고, 몇 평에 사는지, 그 집 아빠가 승진했는지, 자녀가 유명 대학에 갔는지 등이 행복의 기준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복을 확인하려는 게 문제다.

그럼 무엇이 행복의 조건인가.

한국 사람들의 99%는 행복하다는 게 뭔지 모른다. 보통 엄마들은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오거나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면 행복하다. 이건 자기 스스로는 행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99%의 사람이 자력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거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와서 행복하거나, 아이가 뭔가 잘했을 때 행복하다는 건 내 행복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자력으로 이뤄야 한다. 가장 안 좋은 일이 아이에게 행복을 의존하는 것이다.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짐을 아이에게 지워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짓눌려서 너무 힘들다.

한국은 왜 유독 행복의 짐을 자식에게 지우는 걸까.

크게 보면 가족문화에서 비롯된 거 같다. 가족은 우리나라의 핵심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나보다 가족에게 헌신하는 걸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뭔가 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해 뭔가 하는 게 자연스럽고 미덕으로 생각한다. 개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없다. 부모의 헌신은 아름다운 것이고 자식이 보답하는 것은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경계가 분명해야 아이가 자율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 경계가 없으면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주의가 약화될 줄 알았는데, 핵가족화하고 자녀 수가 줄면서 가족이 더욱 응집돼 ‘너의 행복=우리의 행복’ ‘너의 성공=우리의 성공’이란 공식이 더 심화된 거 같다. 이게 아이들에게 굉장히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부모가 ‘너를 위해 헌신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그걸 빚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부모에게 부채 의식을 갖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능력 이상으로 돈을 쓰는 게 미덕이고, 자식이 공부 못하면 부모에게 죄짓는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지우는 구조다.

부모-자녀 경계 분명해야 부모의 삶과 자식의 삶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나.

부모가 자력으로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그럼 자녀는?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둬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아이들은 누가 괴롭히지만 않으면 자력으로 행복하다.

부모는 비록 불안하고 불행하더라도 자식을 행복하게 키울 방법이 있나.

절대 없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절대 자식에게 행복을 가르칠 수 없다. 부모가 불안한데 자식에겐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도 안 통한다. 병원에 있으면, 엄마의 살짝 스치는 표정에도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부모가 행복해질까.

긍정심리학에서 행복이란 내가 많은 시간을 기분 좋게 지내고 기분 좋을 때 하는 것이 대부분 나에게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가 의대에 합격했을 때, 고시에 합격해 판검사가 됐을 때를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그런 것을 일생에 몇 번이나 겪을 수 있겠나. 그걸 행복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평생 불행하기로 결심한 거다. 그것에 행복의 기준을 두면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지루하고 권태롭고 의미 없게 지내게 된다. 행복은 근육과 같다. 운동할 때 처음엔 잘 못하지만, 훈련을 반복해 근육이 생기면 운동을 잘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조금씩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내 경우, 날씨가 좋아서 행복하고, 5년 전에 산 자동차를 탈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 내가 일상을 의식하지 않으면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커피를 ‘즐기며’ 먹어야 그 한잔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의식하면서 연습하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회사생활에 시달린 사람이 정년퇴직하면 행복할 거 같지만, 정년퇴직하고 바로 그날부터 행복해지지 않는다. 쉬지도 않고 여행도 재미가 없다. 평소 행복의 근육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갑자기 행복해질 수 없다.

어떻게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

우선 부모가 자기 불안을 다스리고 성장해야 한다. 나는 부모에게 아이들과 깔깔대고 웃는 등 상호작용을 해보길 추천한다. 근데 세상이 너무 무서우니 아이들과 깔깔대고 웃을 수 없다.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는 열심히 했는지, 집에 와서도 계속 공부를 하는지 긴장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니까 아이는 나중에 취직해서도 상사가 자기만 감시하는 기분을 느낀다.

세 가지 나쁜 말 ‘열심히’ ‘잘’ ‘알아서’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참고 공부해야 성공하고 행복해진다” “공부 못하면 미래가 없다”며 아이를 다그치는 부모들의 행태가 아이들의 정서와 행복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사람들이 평생 갖고 가는 기본 틀, 건물로 치면 바탕이 있다. 그게 부모와 주고받은 상호작용이다. 태어나서 10년 내에 부모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했는지가 틀로 만들어진다. 이 틀이 평생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예를 들어 내가 잘못했을 때 엄마가 늘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은 직장에서도 상사가 ‘이게 뭐야?’ 해도 얼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에게 많이 혼난 사람은 직장 상사의 질문에 확 얼어버린다. 엄마들이 상식이라며 말하는 “지금 고생해야 나중에 잘 산다”는 것은 사실 거꾸로다. 어려서 10년을 편안하게 살면,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놓인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집에서 늘 부모로부터 ‘지금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협박당하면 커서 세상이 무섭고 불안하고 주변 사람들을 우호적이지 않고 적대적으로 느낀다. 엄마들은 “열심히 공부하면 잘하게 된다”고 하는데 정말 사악한 말이다. 학업성취도는 50% 이상이 지능이다. 지능은 이미 태어날 때 결정된다. 공부와 자기 삶을 관리하는 지능도 필요한데, 관리지능 역시 타고나는 것이다. 근데 “노력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부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 아이가 공부 잘하는 머리를 타고나지 못했다는 걸 부정한다.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리 진실을 들이대도 안 받아들인다. 우리나라에서 없애야 할 세 가지 말이 ‘열심히’ ‘잘’ ‘알아서’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어디에 들이대도 약자를 기죽인다. 아이에 따라 학습지능과 관리지능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고, 아이의 역량과 재능에 맞춰 훈련하는 게 부모의 몫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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