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더 많이 끌어안기로

어쩌다 참여한 ‘아빠 육아’ 수업
등록 2017-09-14 03:02 수정 2020-05-03 04:28
도담이와 함께 육아사랑방 ‘아빠 육아’ 수업을 들었다. 김성훈

도담이와 함께 육아사랑방 ‘아빠 육아’ 수업을 들었다. 김성훈

설문조사 첫 질문부터 대략 난감이었다.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과 가정의 균형 비율은?’ 답안 작성을 잠깐 미루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니 더 어려웠다. ‘본인이 실제 일과 가정에 헌신하는 비율은?’ 잠깐 고민하다 50:50을 적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솔직하게 안 쓴다”고 눈치를 줬다. 주변에서 여러 아빠들의 한숨과 엄마들의 타박이 교차로 들려오는 걸 보니 우리 부부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는 듯했다.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까.

9월 첫쨋주 ‘불금’ 저녁, 아내가 다니는 육아사랑방에서 열린 ‘아빠 육아’ 수업에 참여했다. 아빠 대상 수업이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깃하면서도 모르는 이들과 2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무래도 어색할 것 같았다.

수업 당일, “이미 신청했으니 무조건 가야 한다”는 아내와 옥신각신하다 아내·도담이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민방위처럼 아빠들만 모여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모두 아내와 아이를 줄줄이 달고 나왔다. 졸지에 수업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성산동·합정동·망원동·서교동 등 서울 마포구 각지에서 모인 아빠들이 수업에 참여한 이유는 다양했다.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알기 위해” 참석한 아빠도 있었고, “육아휴직을 써서 아이를 돌보는데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 온 아빠도 있었다. 육아휴직을 쓸 계획인 나는 다른 아빠들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했다. 사는 곳도, 아이의 나이도, 참석한 이유도 제각각이었지만 “아빠가 주도적으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공통적이었다.

마을 육아 선배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보름달’(김정희)이 진행한 수업의 요지는 이러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아이는 완전히 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엄마 혼자 육아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빠가 열심히 육아를 해야 엄마도 아이도 행복하다, 어린 시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독립적이다’ 등등.

보름달은 아이와 함께 노는 자신의 노하우도 공유했다. ‘많이 안아줘라, 아이와 놀 궁리를 하라, 텔레비전을 끄고 스마트폰을 멀리하라’ 등등.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내 행동을 반성했다. 육아 초보자다보니 눈앞의 상황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어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딴짓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도담이를 좀더 많이 안아주고 함께 놀기로 결심했다.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을 집에서만큼은 고치기로 했다. 무엇보다 육아 관련 상황이 생길 때마다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직접 판단하기로 했다. 역시 육아 초보자인 아내에게 매번 의견을 묻는 건 아내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다.

그래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과 가정의 균형 비율을 묻는 질문의 대답을 어떻게 썼냐고? 일 30% 대 가정 70%. 아내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모름지기 목표란 조금 뻔뻔하게 높이 세워야 하는 법이다.

김성훈 기자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