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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이 처한 연애·경제 문제 다룬 전편 이어

섹슈얼리티 문제 보여주는 드라마 <청춘시대2>
등록 2017-09-13 17:57 수정 2020-05-02 19:28
<청춘시대2> 주인공들. JTBC 제공

<청춘시대2> 주인공들. JTBC 제공

는 대학가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지난해 12부작으로 종영된 의 후속작으로, 4회 방영된 현재 전작의 설정과 문제의식을 이어간다. 시리즈는 시트콤 형식을 취하면서도 스릴러적 복선을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통찰이 담긴 대사가 일품이며, 젊은 여성이 겪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 1편과 2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혐오’와 ‘트라우마’다.

혐오가 동질감에 이르는 과정

1편에서 셰어하우스 입주자 5명 중 강이나(류화영)는 대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돈 많은 남자들의 애인 노릇을 해주고 ‘스폰’을 받아 풍족하게 사는 여성이었다. 그의 신분이 밝혀진 뒤 하우스메이트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6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오빠의 병원비로 인해 늘어난 가계빚과 학비,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아르바이트를 3개나 뛰며 기 쓰고 살아가는 윤진명(한예리)은 강이나와 상반된 삶의 태도를 지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아성찰을 통해 혐오가 아닌 공감에 이르는 기적을 보여준다. 윤진명은 상사의 성희롱을 겪으며, 자신이 경멸해온 ‘쉽게 사는 삶’이 완전히 멀지 않고 자신에겐 유혹이 적었을 뿐이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강이나 역시 아득바득 살아가는 윤진명의 투지를 질투하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강이나에 가장 강한 혐오를 보이던 사람은 정예은(한승연)이었다. 자존감 결여로 의존적 연애를 해오던 정예은은 자신의 매력 자본을 돈으로 거래하면서도 늘 당당한 강이나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남자친구의 마음을 강이나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강이나는 정예은의 남자친구를 욕망하는 게 아니라, 정예은의 자포자기를 막기 위해 애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정예은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를 흔한 관용 방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과 상대와의 격렬한 소통으로 동질감에 도달하는 희귀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2편에서 강이나가 퇴장한 자리에 조은(최아라)이 입주한다. 중성적 외모에 무심한 태도를 지닌 조은은 매력적인 레즈비언의 인상을 풍긴다. 하우스메이트들은 경계심을 드러낸다. 남자와 한집에 사는 것 같다거나, 자신이 개신교인이라 그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이 오간다. 윤진명은 “그게 차별이야”라고 말하지만, 하우스메이트들의 호모포비아는 계속된다. 심지어 유은재(지우)는 조은이 자신을 덮치는 것을 상상하며 맨발로 도망친다. 다행히 오해는 풀렸지만, 이들은 조은에게 옷차림이나 태도를 여성스럽게 바꿔보라는 조언을 한다. 드라마는 은재의 내레이션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포비아가 이질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적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말로 끝맺는다. 혐오를 자아성찰로 이어간 것은 좋은 태도이지만, 동성애와 성폭행을 구분하지 않는 사고의 오류를 분명히 짚지 못한 채 에피소드를 끝낸 점은 실망스럽다. 조은의 성지향성은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은에게 집착하는 동성 친구가 있고 남성 성기를 처음 본 뒤 반복적인 구토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강렬한 첫 대면을 한 서장훈(김민석)과 향후 가까워질 것이 암시되는 점 등을 종합해보았을 때, 양성애자일 가능성이 높다. 1편에서 성매매 여성 혐오를 넘어섰듯이, 2편에서도 성소수자 혐오를 공감과 연대로 넘어서는 과정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섹스 욕구 떠벌리면서 정작 섹스 회피하는

하우스메이트들은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저마다 트라우마를 품고 산다. 1편의 강이나가 삶에 애착이 없는 것은 수년 전 선박 사고에서 살아남은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기 때문이다. 삶이 한순간에 와해되는 경험과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는 아무렇게나 살아간다. 성매매 역시 자기방기의 일환이었다. 그는 죽은 소녀의 아버지로부터 “죄책감 갖지 말고 살라”는 말을 듣고, 삶의 태도에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한편 정예은은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납치·감금되는 ‘데이트폭력’을 겪는다. 이로 인해 2편에서 정예은은 혼자 외출하기 어려울 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정예은은 새로운 남자 권호창(이유진)을 만나는데 그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약간의 자폐적 성향을 지닌 그는 정예은이 친구들 사이에서 곤경을 겪는 걸 보고 감정이입을 한다. 갑자기 난입한 권호창이 정예은의 손을 잡고 달리자, 정예은이 비명을 지르고, 주변 사람들이 데이트폭력을 의심해 둘러싸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학교폭력의 트라우마가 있어 사회성이 떨어지는 남자와 데이트폭력의 트라우마가 있어 자존감이 낮은 여자 사이에 어떤 연애가 가능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1편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할 뿐 자기 사연이 없었던 송지원(박은빈)의 이야기가 2편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는 수시로 지어낸 이야기를 떠벌리며 과장되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섹스 욕구를 자주 떠들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탓에 여태 ‘모태솔로’다. 처음으로 성관계 기회가 오자, 그는 기절해버린다. 1편에서 그는 귀신이 보인다는 거짓말을 하여, 하우스메이트들에게서 죽음과 관련된 음습한 내면을 끄집어냈다. 에필로그에서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는 질문에, 송지원은 “그 순간에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며 “효진이”란 이름을 무심결에 흘린다. 그는 때때로 이명을 느끼고 기절한 순간에 잊어버린 어린 시절 친구 효진의 환영을 본다. 이 단서들은 송지원에게 정신분석학적 탐구의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는데, 송지원은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과 기억을 탐문해나간다.

송지원은 시리즈가 독보적으로 구축한 캐릭터로 여성주의적 함의를 지닌다. 섹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기절해버린 것은 성적 억압의 결과로 보인다. 연극적인 그의 성격도 히스테리오닉 인격장애의 하나로 읽힌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어떤 경험이 송지원의 무의식에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송지원이 성적 억압으로 성관계를 회피하면서도 이를 부인하고 은폐하기 위해 섹스를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이중 억압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진정한 성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서 성적 ‘쿨함’을 강요받는 현대 여성들이 처한 이중 구속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의 무의식과 욕망을 드러내다

가 윤진명과 강이나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는 송지원과 조은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처한 섹슈얼리티 문제를 보여준다. 이성애 앞에서 이중 구속 상태에 놓인 여성의 무의식에 주목하고, 양성애나 동성애적 욕망 상태에 놓인 여성들을 가시화하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는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지상파 드라마라면 아직 다룰 엄두조차 내지 못할 ‘힙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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