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최초의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는 교육방송의 심야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3월 첫 전파를 탄 뒤, 39회에 걸쳐 피임·불법카메라·자위·성희롱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다. 박미선의 안정적인 진행과 은하선의 솔직 발랄한 발언, 남성 페미니스트 서민의 친근한 농담 등이 어우러져 프로그램은 초기에 안착됐다. 의 성공은 온스타일의 젠더 토크쇼 와 의 제작으로 이어져, 여성주의 프로그램의 포문이 열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계적 균형이 낳은 패착</font></font>아쉬움도 있었다. 출연자 정영진의 낮은 성인식은 초기부터 문제였다.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넣은 악역이려니 이해하면서도, 번번이 토크의 맥을 끊거나 자가당착적 주장을 하는 모습에 시청자는 짜증을 호소했다. “받으려고만 하는 여성의 태도는 넓은 의미의 성매매”라는 식의 여성혐오적 발언을 늘어놓았지만, 다른 출연자들은 선명하게 반박하는 대신 은근한 조롱을 취했다. 이런 방식은 박미선의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마무리 멘트와 더불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양한 의견 차이로 희석하는 착시를 낳았다. 회차를 거듭해도 배움이 없는 정영진에게 계속 발언 기회를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커지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황현희가 투입됐다. 수년 전 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남성들이 받는 ‘역차별’을 코미디로 풀던 그가, 자연인의 처지에서 “동물보호구역도 있는데 남자보호구역은 없다”는 무개념 주장을 늘어놓을 때 시청자는 난감함을 느꼈다. “임신하지 않으려 하는 여자는 이기적”이라는 유의 망언을 해대는 황현희로 인해 피로감이 쌓여갈 무렵, 정영진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의 여성 출연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여성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노고와 용기로 만들어진 여성주의 프로그램의 출현을 반겼던 시청자는 허탈감을 느꼈다. 더욱이 지난해 말에 와 가 종영되면서, 여성주의 프로그램의 성공에 기대를 품었던 시청자의 낙담은 커졌다.
하지만 지난해 성탄절과 새해 첫날에 방송된 ‘성소수자 특집’ 2부작은 이런 실망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예능프로그램 을 패러디한 반말 토크 설정은 신선했다. 고등학교 교실로 만든 세트에서, 성소수자 4명이 전학생으로 들어와 기존 패널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는다. 이들은 LGBT의 순서대로 자신을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고 밝혔다. 각각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보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였다.
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기초 개념을 알려주면서, 자신이 언제 성소수자임을 알게 됐고 언제 커밍아웃을 했는지 등을 들려주었다.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가볍고 유쾌한 토크가 이루어졌다. 출연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박한희는 “ 같은 곳에 나오는 이미지로 한정되는 것을 막고,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는데, 실제 예능 형식의 프로그램이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감을 없애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동정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이들을 호기심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성소수자 4명 모두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 비쳤고, 성소수자의 범주도 다양해 한두 가지 통념과 정형화된 이미지로 묶을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하게 전달됐다. LGBT 이외에 다양한 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도 언급됐다. 간혹 무례한 질문도 있었지만, 성소수자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토로하는 모습은 성소수자와 어떻게 대화를 해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편견</font></font>성소수자들은 그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혐오와 차별, 사회적으로 개선할 점들을 알려주었다. 김보미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버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는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배우자의 수술동의서를 쓰거나 상속받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차별임을 짚어주었다.
가장 인상적인 발언을 한 사람은 박한희였다. 그는 트랜스젠더에게 수술 여부를 묻는 것은 무례할 수 있으며, 여러 이유로 수술하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복장 변화나 호르몬치료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성전환이 일어남에도, 성기 수술만을 성전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폭력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 통계를 예로 들며, 트랜스젠더 직장인들 중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배뇨 질환을 앓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성별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박한희의 존재와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특히 심한데, 이는 최근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논쟁적이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일명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에선 트랜스젠더가 성별 구분을 무너뜨리거나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하리수처럼 과잉 성애화된 몸은 여성다운 외모의 전형을 더 강하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한희의 경우, 과잉 성애화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 트랜스젠더들의 외양은 굉장히 다양해서, 성별 구분을 강화한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TERF 진영은 성별중립화장실에 대해서도 여성들의 화장실 안전이 확보되지 못한 현실을 들어 부정적 견해를 보인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과 화장실 불법 촬영, 페미니스트 캠프에서 비수술 트랜스젠더가 성추행을 한 일 등으로 인해 다른 성별의 사람과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화장실 안전을 확보하는 것과 성별중립화장실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모순되는 과제는 아니다. 화장실 안전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음으로써, 불법 촬영도 막고 성별중립화장실도 설치하는 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운동의 성과로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노인을 비롯한 교통 약자에게 고루 혜택이 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성별중립화장실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아이나 노인, 환자를 돌보는 경우 성별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지금 당장, 폭넓은 논의 시작해야 </font></font>생활동반자법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비혼 인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 보살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반드시 성애적 결합이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살면서 서로를 돌보는 유사가족을 꾸릴 수 있는데, 이 경우 생활동반자법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혐오세력에 막혀 성소수자와 관련된 초보적인 논의도 꺼내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단계에서 벗어나, 더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를 펴나갈 때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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