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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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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 대한민국

국내 비혼 여성과 국제 매매혼에 대한 편견 드러낸

다큐 <나를 향한 빅퀘스천>과 <다문화 고부열전>
등록 2017-12-01 03:41 수정 2020-05-03 04:28
<나를 향한 빅퀘스천>은 2회 방송에서 한국 여성의 비혼식을 다뤘다. 네이버TV SBS 화면 갈무리

<나를 향한 빅퀘스천>은 2회 방송에서 한국 여성의 비혼식을 다뤘다. 네이버TV SBS 화면 갈무리

(SBS)은 사랑과 일의 의미를 찾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다큐멘터리다. 4부작 중 2부작이 방송됐는데, 윤시윤이 인도·중국·일본·영국 등을 다니며 연애와 결혼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했다. 1회에서는 인도의 가족맞선과 사랑탐정, 영국의 오감미팅, 중국의 러브헌터 등이 소개됐다. 인도에서는 마치 상견례를 하듯, 양가 가족이 모두 나와 맞선을 본다. 결혼을 개인의 결합이 아닌 가족의 결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탐정을 고용해 결혼 상대의 거짓을 탐문한다. 한편 영국에서는 본능에 끌리는 상대를 찾기 위해, 청각·후각·촉각 등을 활용한 오감미팅이 벌어진다. 중국에서는 의뢰인이 제시한 구체적인 조건에 맞는 짝을 찾기 위해 러브헌터가 ‘길거리 캐스팅’에 나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혼, 인형 사랑, 장애인 순애보</font></font>

제작진은 인도·영국·중국에서 짝을 찾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가족·본능·조건이었다고 요약하며 첫 회를 갈무리했다. 물론 각국 사례들은 문화다양성의 사례로 읽힐 만하다. 하지만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 통찰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십처럼 소비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영국의 오감미팅에 참여한 여성에게 사랑과 돈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묻자, “사랑이다. 돈은 내가 벌 수도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중국에서 부자 남자와 맞선을 본 여성에게 조건이 강조되는 이유를 묻자 “돈을 벌기 힘들고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 답했다. 맞다. 경제적 불안정성과 성별 격차가 클수록 개인의 호감이나 자율성보다 가족이나 경제적 조건이 중요해진다. 여성의 삶이 배우자에게 종속될수록 잘못된 결혼을 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인도에 가족맞선이나 사랑탐정이 있는 것이다. 이 정도 간단한 분석도 결여한 채, 단지 사례를 나열하며 문화상대주의적 시선을 견지하던 제작진의 얕은 태도는 2회에 이르러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2회에서 제작진은 한국 여성의 비혼식 장면을 보여준다. 그다음 사람 크기 인형을 애인으로 여기는 일본 남성을 보여준다. 이어서 중국의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의 순애보를 보여준다. 혹자는 뭐가 문제냐고 물을 것이다. 각국의 특이한 사례들을 소개한 뒤, ‘그래도 사랑이 최고’라는 메시지로 갈음했으니, 감동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혼과 인형 사랑과 장애인의 결혼은 도저히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없다. 이것을 다 같은 ‘특이함’으로 분류하는 순간, 제작진이 정상과 비정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는 한국의 비혼 문화에 대해서도, 장애 문제에 대해서도 완전한 무지를 드러내는 무개념 편집이다.

비혼식을 하는 40살 여성은 ‘결혼 거부’를 보여준다. 흔히 ‘삼포세대’로 청년층의 결핍을 말하지만, 결혼하지 못하는 자신을 연민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정서는 주로 남성들의 것이다. 언제나 나에게 주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여자’가 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느냐는 아우성이 적극적인 여성혐오나 디지털 성폭력, 이별 폭력 등으로 표출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친정 생각만 하는 철없는 며느리’라고? </font></font>

여성들의 경우 가부장적 결혼제도로부터의 탈주가 ‘비혼’이나 ‘출산 파업’의 형태로 구체화한다. 이전엔 모든 계급의 남성들에게 고루 배분되었던 보급품의 자리를 거부하고, 가난하고 외롭지만 비혼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여성들의 주체적 선언이 이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지인들을 초대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여성의 모습은 이런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제작진은 비혼식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준비일 수 있다’는 모호한 말로 갈음했다. 그러고는 일본 남성의 인형 사랑과 중국 장애인의 순애보와 병치한다. 세 사례의 공통점이 뭘까. 설마 ‘상대가 아예 없거나, 상대가 사람이 아니거나, 상대가 장애인’이라는 비정상의 범주로 묶은 것인가.

중국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은 각국의 특이한 결혼문화를 논하는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다. 중국에만 있는 일도 아니고, 최근에 생긴 일도 아니다. 제작진은 강원래-김송 부부를 모르는가. 사실 절단장애인인 중국인 남성은 척수장애인인 강원래씨에 비해 장애 정도가 크지 않다. 배변이나 성생활의 문제도 없고, 감각이나 의사소통의 문제도 전혀 없다. 수영선수를 할 만큼 건강한 신체에 지적·정서적 능력도 탁월하다. 최신의 재활 기술을 활용하면 의족 보행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 사람과 결혼이 뭐가 특이해 보인 걸까.

일본 남성의 인형 사랑은 한편으론 변태적이다. 그러나 대화를 해보면 그가 완전히 망상에 빠진 것은 아니며, 다만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언제나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는 상대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완벽한 수동 상태에 둔 채 일방적인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지만, 그런 욕망을 살아 있는 여성을 상대로 강제하지 않고 인형으로 무해하게 해소한다는 점에서 나름 윤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을 주체적인 비혼 선언이나 보편적인 결혼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장애인의 결혼과 같은 선상에서 다룰 이유는 없다.

정말 특이한 결혼문화를 숙고하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차라리 한국 국제결혼의 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익하다. 11월19일 방영된 (EBS) ‘며느리 결혼조건 때문에 괴로운 시어머니’ 편은 매매혼 성격을 띤 국제결혼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35살 한국 남성이 18살 베트남 여성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3년간 경제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며느리는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 친정을 도우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는 허락하지 않고 둘째 낳기만 강요한다. 베트남 신부의 피해가 명백함에도, 제작진은 편파적인 제목과 ‘친정 생각만 하는 철없는 며느리’라는 힐난이 담긴 내레이션으로 왜곡된 성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프로그램은 시어머니의 성의표시로 화해가 이루어진 듯 봉합하고 끝냈지만, 시청자는 항의를 쏟아냈다. 현재 제작진은 사과 없이 다시보기 파일을 내린 상태다.

한국의 국제결혼은 1980~90년대에 벌어진 여아 선별 낙태와 여성들의 비혼 선택으로 생긴 구멍을 국제경제의 환율 차이를 이용해 외국 여성을 들여와 메우는 기획이다. 가부장제로 생긴 공백을 외국 여성으로 메우면서 그들의 희생으로 한국의 가부장제를 지속하려는 난망한 기획이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이주여성을 베트남 ‘며느리’ 등으로 부르는 것은 국제결혼이 지닌 가부장적 본질을 잘 말해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이한 풍속은 우리 안에 있다 </font></font>

이처럼 가부장제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폐해가 응축된 국제 매매혼의 문제를 무려 교육방송에서 ‘고부열전’이라는 제목으로 포장해 내놓는다. 전세계 어디에 간들, 이보다 더 기이하고 신랄한 결혼 풍속도를 볼 수 있겠는가. 남의 문화를 구경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기 문화를 성찰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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