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는 경찰지구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마치 처럼 사회초년생의 성장을 그린 직장드라마인데, 그 직장이 지구대다. 노희경 작가가 1년간 취재해 만든 극본은 광역수사대나 강력반이 아닌 지구대 경찰들의 업무를 세밀하게 담는다. 드라마는 ‘직장 성장드라마’로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굵직한 쟁점도 있다. 첫째는 여성주의적 화두고, 둘째는 시민과 공권력의 관계에 대한 숙고다.
‘여성 취준생’이 겪는 불평등드라마는 첫 회부터 취업준비생인 한정오(정유미)가 여성으로 겪는 불평등을 보여준다. 면접관들은 여성 지원자에게만 연애, 결혼, 출산 계획을 묻는다. 남성 지원자에게는 군복무 여부나 출신 학교 등을 물으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취업준비생들끼리 만난 술자리에서 남자 동기들은 할당제나 여성지원정책을 들먹이며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한정오보다 점수가 낮았지만 합격한 남자 선배는 “군복무로 다져진 인내심과 일 시키기 편하다는 장점 때문이지, 성차별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은 일차원적 발제 수준이긴 하지만, 현실에 엄존하는 성차별을 환기한다.
실제 최근에 KB국민은행 등이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한 일이 밝혀졌다. 이처럼 노골적인 성차별이 존재하지만, 청년실업 논의에서 남성이 대표성을 차지한다. 즉 취업 못한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말할 때, 떠오르는 청년의 이미지는 남성이다. 가령 정의당이 청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며 테마송 협약을 맺었던 ‘중식이 밴드’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여기서 여성들은 청년남성들에게 열패감을 느끼게 하는 ‘부재하는 (연애와 결혼의) 대상’이다. 즉 ‘중식이 밴드’의 노래에 나오는 ‘나를 떠난 (불법 촬영 음란물 속의) 여자’로 재현된다. 청년여성들은 취업에서 성차별까지 받기 때문에 더 심한 빈곤 상태에 놓이지만, 이들의 고통은 연애나 결혼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인 양 다룬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준비생으로 성차별을 겪으며 성차별 없는 경찰직에 지망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고무적이다. 이란 이름을 단 영화의 주인공이 두 명의 남자고, 여성들은 돈 없는 경찰대생의 기를 죽이는 ‘썅년’이거나 외국인에게 납치돼 난자를 적출당하며 ‘청년경찰’들의 구출을 기다리는 존재로 나왔던 것과 비교해보라. 가 여성을 취업난을 겪는 청년이자, 시민을 지키는 경찰의 위치에 놓은 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인물의 가족관계에서도 ‘남성-가장’의 신화를 성찰하게 한다. 남자 상관이 한정오에게 “넌 여자니까 잘려도 그만이지만 난 처자식이 있어서 잘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정오는 미혼모의 딸로 생계노동자다. 아버지는 모녀의 생계를 일생 책임지지 않았으면서, 수험 준비를 위해 빌린 2천만원을 못 갚겠다는 한정오에게 “네 엄마처럼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누가 누구를 책임지는가. 한편 안장미(배종옥)는 남편 오양촌(배성우)과 같은 경찰이다. 오양촌이 강력반의 ‘전설’이 되는 동안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안장미와 친정부모의 몫이었다. 부모상을 치른 안장미가 이혼을 요구하자, 오양촌은 “내가 바람을 피웠나, 때렸나, 돈을 안 벌어다 주었나”라며 큰소리를 친다. 혹자는 안장미의 이혼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양촌의 말처럼 외도나 폭행을 하지 않고 월급만 갖다주면 가장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장미는 “인생에서 절실한 순간에, 너 없이 다 할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남성-가장이 처자식을 돌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대 시위’ 왜곡 논란에 사과드라마는 ‘이화여대 시위’ 장면을 재현했다가 격한 항의에 부딪혔고, 결국 사과했다. 2016년 7월 이대생 200명이 학내 문제에 항의하며 총장실 앞을 점거하자, 경찰 1600명이 투입됐다. 이대 시위는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의 실마리가 되었고, ‘나라를 구한 사건’으로 회자됐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이대 시위를 자랑스러움이 아닌 트라우마로 기억한다. 사건 초기부터 여성 혐오로 인한 차별적 시선과 대상화에 시달려온 이화인들이 극심한 심리적 외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위 참가 학생들은 끝내 익명을 고집했고, 86일간의 점거 기록은 자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사태가 종결된 뒤에도 이화인들은 이대 시위를 외부 행사에서 발제하거나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이 사건을 재현하는 일은 극도의 신중을 요하는 일이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시위에 익숙지 않았던 여학생들이 해머와 스패너를 든 경찰들에게 둘러싸이자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애창곡이던 소녀시대의 을 불렀다. 그러나 화면 속에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남녀 학생들이 모인 것으로 재현됐다. 그 결과 이대의 상징성은 지워지고, 압도적인 물리력 차이도 희석됐다. 심지어 진압에 투입된 한정오의 얼굴이 시위 학생의 손톱에 긁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의 방향을 역전시켰다.
물론 드라마가 사건을 폄하하거나 폭력 진압을 미화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에도 학내 문제에 웬 경찰 투입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담겼다. 하지만 시위 장면을 경찰의 시선으로 재현하는 순간, 시위 주체의 맥락은 소거된다. 즉 ‘그만둘 것 아니면 징징거리지 말자’며 절박하게 버티는 경찰의 태도가 강조되면서, 시위대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인식된다. 그 결과 수뇌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도 피해자가 되었다는 작가의 논리는 재현 과정을 거치면서 ‘경찰이 피해자’라는 논리로 단순 축소된다. 가해자는 보이지 않고, 피해자들 간의 싸움이 가시화할 때,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다.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은 경찰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면서도 시위대와 경찰의 싸움으로 몰고 가는 논리의 허구성을 헤집으면서 진짜 가해자는 현장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자들임을 깨닫게 하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의 시위 장면은 이런 성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경찰 시선으로 바라본 시위대드라마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개개인의 인간으로 환원했을 때, 공권력과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헌법적 긴장관계가 소거된다는 문제를 간과한다. 시민에게 공권력을 사용하는 경찰의 절박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강조함으로써, 시민 대 경찰의 관계를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치환한다.
한정오가 임신부에게 테이저건을 쏜 사건도 비슷한 문제를 지닌다. 다만 이때 벌어지는 껄끄러운 문제를 봉합하기 위해 드라마는, 고뇌하는 한정오와 임신부와 태아가 무사하다는 사실과 임신부도 나중에 자신이 폭력을 쓰지 못하도록 테이저건을 쏘아준 한정오에게 고마워했다는 후기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공권력과 시민의 관계는 경찰-개인 대 시민-개인의 관계로 환원할 수 없다. 특히 경찰이 쏜 물대포에 사람이 죽은 사건이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났던 사회에서, 경찰의 관점으로 시위대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는지 찬찬히 숙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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