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로봇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제목은 본래 인간답지 못한 이를 경멸하는 뜻을 담지만,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담은 뜻으로도 읽힌다. 그동안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많았지만, 드라마는 드물었다. 하지만 2016년 ‘알파고’의 충격과 2017년 대선 과정 중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거리감이 좁혀졌다. 이후 로봇이 주인공인 드라마 등이 나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로봇’이라는 멋진 존재</font></font>남신3(서강준)은 아들과 생이별을 한 오로라 박사(김성령)가 아들을 본떠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다. 유년기 남신1, 청소년기 남신2, 성인기 남신3으로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20년간의 추억도 지닌다. 인간 남신이 그와 마주친 순간 교통사고를 당하고, 오로라 박사의 부탁으로 남신3이 인간 남신의 역할을 대리한다. ‘도플갱어’(자신의 환영을 보는 것)와 ‘카케무사’(그림자 무사)의 모티브가 섞인 설정이다.
남신3은 겉모습이 인간과 똑같지만 재질은 기계다. 즉, 생체 재료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나 생체와 기계가 접합한 사이보그가 아닌 로봇이다. 의 복제인간은 몸의 재질은 똑같았지만, 수명이 짧고 독자적인 기억을 갖지 못했다. 반면 남신3은 재질만 다를 뿐 독자적인 기억을 지녔으며, 자체적인 학습과 진화는 물론 다른 기계들과 접속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한 인식도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애니메이션 시절의 로봇은 중장비처럼 사람이 안에서 조종하는 것이었다. 영화 이나 《A.I》 시절의 로봇은 사람과 비슷한 몸에 독자적인 사고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그들의 독립된 자아는 ‘근대적 개인’으로 표상됐다. 즉 자유와 시민권을 얻는 존재이거나, 모성을 갈구하는 정신분석학적 주체로 묘사됐다. 하지만 인터넷 상용화와 유비쿼터스(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의 시대에서 로봇은 확장된 정신과 연결된 자아로 표상된다. 즉 정보망에 접속해 지식을 무한히 확장하고, 사물인터넷에 접속해 기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가령 DC코믹스의 새 히어로 ‘사이보그’는 그 능력이 극대화된 캐릭터다. 남신3은 로봇청소기와 소통하며,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에 접속해 마음대로 조종한다. 남신3은 자신이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끔찍해하는 강소봉(공승연)에게 “당신 몸에도 철심이 박혀 있으니 일부는 기계”라며 ‘사이보그론’을 설파한다.
드라마는 젠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남신3은 멋진 남성을 전시한다. 인간보다 강인한 육체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달리는 차 위에서 초인적인 액션을 펼친다. 여기에 강아지처럼 해맑은 미소와 순진미가 더해진다. 감정은 없다지만 “울면 안아줘야 한다”는 매너는 뭇 여성들의 감정을 설레게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백래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font></font>반면 여주인공을 둘러싼 비난은 거세다. 첫 회부터 재벌 3세인 인간 남신이 강소봉을 폭행하는 장면으로 물의를 빚었다. 특히 실감나는 연출을 위해 공승연을 실제 때리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제작진의 둔감함이 경악을 부른 것이다. 물론 폭행은 인간 남신이 사회적 비난을 자초하려 일부러 꾸민 일이었고, 강소봉도 남신을 불법촬영해 팔았다는 죄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은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한다. 여성을 불법촬영의 가해자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강소봉은 여기자와 짜고 남신을 찍어 파일을 유출했을 뿐 아니라, 발각된 뒤에도 다시 남신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해 동영상을 찍는다.
수십 년간 불법촬영은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벌인 범죄였으나, 경찰·검찰·법원·언론 등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못했다. 하지만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경찰은 신속하게 범인을 체포했고, 언론들은 범죄의 심각성과 2차 피해의 우려를 엄중히 다뤘다. 오랫동안 여성 피해자들의 호소에 꿈쩍하지 않던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본 여성들은 분노했고, 4만5천 명이 거리시위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촬영에 대한 일반적인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뒤집어 보여주는 드라마라니, ‘백래시’(반격)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주인공이 얻어맞고, 남주인공을 불법사찰하고, 그러다가 같은 편에 서게 된다는 흐름은 와 유사점을 지닌다. 하지만 강소봉은 의 이지안(아이유)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돈이 절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직업윤리마저 팽개치고, 남신3이 목숨을 구해주었음에도 돈과 호기심에 끌려 배덕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리감각을 상실한 강소봉은 이지안보다 영화 의 주진(박보영)에 가깝다. 주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자신을 믿고 찾아온 박구(이광수)를 팔아넘긴다. 여성을 반드시 이타적 존재로 그릴 필요는 없지만, 내적 맥락도 이해되지 않는 파탄 난 인성으로 그리는 것은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예컨대 ‘요즘 여자들 무섭다’는 남성들 사이의 푸념에 등장하는 여성의 재현인 것이다.
남신3을 만든 것이 오로라 박사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영화 , 드라마 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재현하기 위해 남자가 로봇을 만들었던 것과 달리, 여성 과학자를 등장시킨다는 점은 신선하다. 하지만 오로라 박사와 남신3의 관계를 생각하면 반여성적이다. 남신3은 오로라 박사의 “말 잘 듣는” 아들로 세상에 왔으며, 엄마의 사랑을 언제나 희구한다. 하지만 오로라 박사가 남신3에게 품는 모성은 무조건적 헌신이 아니다. 그는 “진짜 남신이 깨어나면 남신3은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킬 스위치’를 심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들을 만들고 키우고 죽일 수도 있는 모성은 숭고한 사랑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가장 지배적이며 프로젝트화한 모성의 은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외계인이거나 신이어야 가능한 상상</font></font>요컨대 는 인간 남자보다 훨씬 멋진 로봇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드라마지만, 물밑으로는 ‘여자 패는 한남’과 ‘이기적인 쌍년’과 ‘강남 엄마’를 그림자로 품는다. 하기야 ‘여자 패는 한남’과 ‘이기적인 쌍년’과 ‘강남 엄마’가 서로를 물어뜯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로맨스를 꿈꿀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남자가 재벌 3세라도 불가능한 노릇이며, 의 외계인이거나 의 신이거나 의 로봇이라야 겨우 상상해볼 만한 ‘불가능한 미션’이다. ‘헬조선’의 청춘들이 묻는다. ‘우리가 인간인 채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의 박구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헬조선’을 떠났던 결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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