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부유층 남성들이 연루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스릴러물이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최경미 작가의 필력과 고현정·정은채·신성록·봉태규 등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드라마는 여러 장르물의 흔적을 담고 있다. 부유층 남자들의 모임과 펜트하우스 여성 주검 설정은 영화 를 연상시킨다. 또한 하나의 살인사건을 면밀하게 파고들어 이를 둘러싼 추악한 사회관계를 드러내는 전개는 드라마 을 닮았다. 외도한 남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전업주부로 살던 아내가 변호사로 나선다는 설정은 드라마 를 연상시킨다.
악행보다 더 역겨운 위선도로 위 가방에서 여자 주검이 발견된다. 신원은 와인바를 운영하는 염미정(한은정)으로 밝혀진다. 내연관계인 재벌 2세 강인호(박기웅)가 긴급 체포된다. 염미정이 실종되기 전 마지막에 만나 심하게 다투었고, 주검을 담은 가방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라고 미리 일러둔다. 드라마가 시작과 함께 보여준 재판 장면에는 그런 오류에 빠져 진범을 놓친 사건이 예시처럼 등장한다. 재판정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TV 법정쇼 무대이던 그 자리에서 스타 변호사 최자혜(고현정)는 잘못된 확신에 경도돼 다른 증거들을 무시해버리는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지적한다.
강인호의 변호인으로 최자혜가 선임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진다. 염미정 사건에는 강인호를 포함한 ‘부유층 4인방’이 모두 연루돼 있다. 이들은 14살 때부터 염미정과 잘 아는 사이였고, 강인호를 뺀 세 사람은 염미정의 주검을 유기한 공범들이다. 세 사람은 차 트렁크에서 염미정의 주검을 발견한 뒤, 신고도 하지 않고 가방에 담아 암매장했다. 드라마는 염미정을 죽인 진범은 누구이고, 땅에 묻은 주검 가방을 파서 길에 꺼내놓은 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수사극의 얼개를 띠면서, 종횡으로 서사의 외연을 넓혀간다. 종으로는 9년 전 미성년자 강간치상 사건이 있고, 횡으로는 염미정 사건을 덮기 위해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매트릭스가 되는 부유층의 추악한 짓거리와 아찔한 ‘젠더 질서’가 있다.
드라마는 ‘부유층 4인방’의 작태를 선정적으로 보여준다. 태화그룹 상속자이자 본부장인 강인호, 사학 재벌 아들이자 신학대 교수 김학범(봉태규), 대형병원 원장의 아들이자 의사인 서준희(윤종훈), 그리고 이들의 좌장 격인 재벌가 출신의 정보기술(IT) 사업가 오태석(신성록). 이들은 호화 펜트하우스를 아지트로 공유한 채, 추악한 짓을 벌인다. 란제리 차림의 여자들을 도박 칩 삼아 포커를 치고, 폭행을 일삼는다. 서준희는 마약과 자해에 중독됐고, 김학범은 운전 시비에 ‘맷값 폭행’을 하고 여성 조교를 성희롱한다. 이들의 악행도 역겹지만, 위선은 더욱 역겹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김학범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내게 강 같은 평화~”다. 강인호는 염미정과 불륜관계에 있으면서,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 행세를 했다.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유지하던 그는 염미정이 이웃이 되고 집까지 찾아오자, 염미정에게 막말을 퍼붓고 빗길에 내동댕이친다.
고상한 아내, 천박한 정부이들이 강인호의 집에 모여 우아하게 식사하는 장면은 역겨움의 정점을 찍는다. 화장실에서 오태석의 아내와 키스한 김학범이 립스틱 묻은 얼굴로 식탁에 앉자, 오태석은 다 아는 표정으로 “완벽하게 시치미를 떼는 내 아내를 본받으라”며 일갈한다. 오태석은 강인호의 집으로 염미정을 불러들여, 강인호의 아내 앞에서 모르는 사이인 양 연기를 해대는 두 사람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이런 변태적인 악취미로 가득한 인간들 사이에서 강인호의 아내 금나라(정은채)는 고결한 백합처럼 보인다. 금나라는 학부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형 로펌에서 일한 경력까지 있지만, 결혼 뒤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그는 이것이 도태가 아닌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강인호와 결혼한 이유도 ‘재벌 2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어서’였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강인호는 펜트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호텔에서 염미정과 뒹굴면서도 아내 앞에서는 다정한 남편인 양 굴었다. 사실 거짓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아내와 가정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염미정에게는 “아무 때나 내 욕구를 풀 수 있는 변기”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철저히 구분하기에, 정부를 둔 채 다정한 남편으로 사는 것은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위선이 아니라, 여성을 ‘고상한 아내’와 ‘천박한 정부’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다. 타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소중한 내 친구’와 ‘함부로 대해도 되는 타인’을 철저히 구분한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폭력적 태도가 곧 그들 내부로 스민다.
염미정의 주검이 방아쇠가 되어 부유층 4인방의 우애가 파열되기 시작한다. 염미정의 주검을 발견한 그들은 자신이 당할 사소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주검을 암매장한다. 속옷 차림의 여자들을 도박 칩처럼 사용하던 이들에게 염미정 역시 가지고 놀 만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인호가 살인 누명을 쓴 상황에서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친구의 살인 누명보다 자신들이 겪을 불이익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자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이들의 사고가 친구관계 안으로 스미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셋 중 가장 섬약한 서준희가 자수하겠다고 말하자, 김학범과 오태석은 그를 납치해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서준희와 다투던 김학범이 서준희의 머리를 내려친 것은 우발적이었지만, 그가 살아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고사로 위장하려 한 오태석의 행위는 고의였다. 이들은 죽은 염미정을 물건처럼 대했듯이, 살아 있는 서준희도 물건처럼 대했다. 친구를 죽여서라도 진실을 덮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희의 주검이 바뀜으로써 이들은 더 큰 혼란과 자중지란에 빠져든다. 이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지옥’에 빠져 자멸 과정을 밟는 것은, 타자를 도구로 사고하는 윤리적 파탄이 미끄러운 경사면을 타고 도달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차별만큼 비겁한 역차별최자혜는 성추행과 접대에 찌든 남성 변호사를 내보내고, 금나라를 새 파트너로 영입한다. “강인호를 무죄 방면시킬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많지만” 두 여성이 의기투합하는 이유는 남성 권력자들이 벌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9년 전 사건으로 부유층 4인방의 악행을 접했던 독고영(이진욱) 형사가 정의감으로 덤벼든다. 하지만 최자혜는 “그동안 법이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했다는 것 인정해요. 하지만 차별만큼이나 역차별도 비겁해요”란 말로 타이른다. 안하무인의 특권층을 공분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먼저 진실을 규명하고 공정한 법 적용으로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의 확인이다. 이는 적폐 청산을 위해 우리 사회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공분에 들끓다 지레 지치지 말고, 법과 원칙을 지키며 끝까지 가야 한다. 질긴 자가 이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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