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보다 타인의 눈물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이가 흘린, 사연조차 알 수 없는 눈물이.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를 가슴 깊이 울리는 존재 </font></font>몇 년 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처음 본 할머니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원래 금발이던 머리카락이 새하얀 은발로 변해가는 모습이 무척 처연하면서도 곱게 느껴졌다. 갑자기 할머니의 돋보기안경 너머로 말간 유리구슬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누가 이 어여쁜 할머니를 울렸나 싶어 두 눈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일행으로 짐작되는 사람도 없고 할머니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었다. 혼자 오신 것이 분명했다. 혹시 루브르박물관의 그림에 감명받아 우시는 걸까. 난데없는 호기심과 걱정이 한꺼번에 차올라 그 낯선 할머니를 가만히 눈에 띄지 않게 바라보았다. 그림 하나 앞에서 오래 서 계시다가 눈물 한 번 닦으시고, 소리 내어 흐느끼지 않고 조용히 눈물만 흘린 뒤 그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저 내버려두는 모습. 다음 그림 앞에서도, 그다음 그림 앞에서도, 할머니는 묵묵히 눈물만 흘리셨다. 어차피 다음 작품을 보면 또 눈물이 쏟아질 것이 빤하므로 굳이 눈물을 닦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나에게는, 루브르의 그 위대한 작품들보다 낯선 할머니의 애틋한 눈물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예술을 향해 이토록 해맑은 감동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예술가들은 더욱 힘내어 자기 안의 그 무엇을 끊임없이 태우고 또 태울 수 있는 게 아닐까. 계속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함부로 위로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녀와 작품 사이를 이 세상 아무것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접신하는 순간 터져나오는 눈물은 억울함이나 분노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의 눈물임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눈물에 아릿한 슬픔이 깃든 것은 ‘왜 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이제야 만난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의 정서가 스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바빠서, 무엇이 그토록 힘들어서,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 거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등한시하는 걸까. 나는 지금도 뭔가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 가슴이 답답할 때는 그날 그 할머니의 눈물을 떠올린다. 어쩌면 루브르박물관에 직접 와보시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을지 모를 그 할머니의 눈물을 떠올리면 온갖 걱정거리로 수런거리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한지’를 저절로 알게 해준 그런 눈물, 복잡한 상황과 얼기설기 뒤엉킨 감정이 마음을 할퀼 때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둘 것’은 무엇인지 명쾌하게 알려주는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눈물을 통해 나는 배웠다. 내 뜨거운 눈물이 따라 흐르는 곳, 복잡한 머리가 아닌 내 천진한 마음이 따라가는 곳. 그런 곳에 담담히 머물면 된다. 나를 가슴 깊이 울리는 존재만이 내가 오래오래 마음 두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다. 나를 감동시키는 존재만이 내 인생에 끼어들 권리가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내 생애 최초의 화려한 사치 </font></font>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예술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환희와 슬픔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눈물을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경험했다. 당시는 내 인생에서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좀처럼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끊어내려 해도 무언가를 향한 감정의 끈이 도저히 놓아지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향한 강렬한 애착을 끊는 것은 나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 같은 참혹한 고통임을 그때 알았다. 그 순간 고흐의 가 눈에 들어왔다. 온몸을 활활 불태울 듯한 태양 아래 다만 그 따가운 햇살의 고통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묵묵히 견디는 삼나무의 꼿꼿함이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왜 저 푸르른 삼나무처럼 꿋꿋하게 견딜 수 없는 걸까, 스스로가 못 견디게 원망스러웠다. 고흐가 내 곁에 있는 것도 아닌데, 고흐가 견뎠을 그날의 따가운 햇살이 내 머리 위에 곧바로 내리쬐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지 뜨거운 여름날의 햇살이 아니라 자신을 결코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 전체였을지 모른다. 화집에서 보았던 그림보다 백만 배쯤 선명하고 당혹스러운 그 삼나무의 울퉁불퉁한 이미지가 내 앞에 어른거리니, 오래오래 꾹 눌러 참았던 그 무엇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고흐의 그 수많은 작품 중 하필이면 그토록 평범한 삼나무를 그린 그림을 보고 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고흐가 그린 한없이 꿋꿋한 삼나무 덕분에 이미 눈물 그렁그렁해진 내 눈에 마침내 진짜 밤하늘보다 오히려 더 검푸르고 가슴 먹먹한, 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세상의 알록달록한 빛 공해 속에선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야생의 별빛, 고흐가 살았던 시절의 희미한 가스등 아래서나 비로소 더 빛을 발할 듯한 그런 밤하늘의 별빛이었다. 별빛이 무리지어 한바탕 수백, 수천 겹의 강강술래를 벌이는 것만 같았다. 그저 조용히 빛나는 것만으로도 불꽃놀이보다 더 찬란한 그 별빛의 춤사위를 보자마자 그야말로 비 오듯 눈물이 쏟아졌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옆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혹시 흐느낌이 새나갈까 입술을 깨물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를 옥죄던 그 오랜 집착의 사슬을 끊었다. 고흐가 날더러 ‘이제 그만 애착을 끊어버리라’고 다그치지는 않았지만. 예술의 투명한 창문을 통해 내가 지닌 감정의 극한을 엿보고 나니 그 감정의 지긋지긋한 끝자락이 어렴풋이 보였다. 내가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나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끈질기게 집착하고 있었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애착을 끊어낼 때만 비로소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뛰어난 예술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미적 거리’를 가지게 한다. 예술은 그렇게 영원히 끊어낼 수 없을 것만 같던 나 자신의 집착을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바라보는 듯한 머나먼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은 그렇게 ‘끝이 없을 줄로만 알았던 그 무엇’의 끝을 보여준다.
이제 마흔의 문턱을 넘으며 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이 이전보다 더 깊이, 더 향기로운 손길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굳이 머나먼 외국의 미술관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집에 있는 그림책의 한 페이지만 펼쳐도 그 감동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촉수가 생겼다. ‘예술을 향한 욕망은 사치스러운 것이다’라는 어린 시절의 편견도 버렸다. 이제 예술을 위한 것이라면, 때로는 작은 사치도 부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스물일곱 살 때 나는 고흐의 화집을 처음 사면서 책 속에 이런 메모를 끄적거려놓았다. “내 생애 최초의 화려한 사치. 이토록 값비싼 고흐의 화집을 나에게 선물하다.” 그 메모를 볼 때마다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외로움은 최적의 감상 조건</font></font>책 살 돈이 모자라 쩔쩔매던 그 시절의 나, 사고 싶은 책은 많고 주머니는 얇디얇던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만 생기면 다른 건 덮어놓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책부터 사들였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조금은 짠하면서도 기특하다. 지금은 내 감각의 촉수를 깨우는 공연과 전시를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틈날 때마다 열심히 공연장과 미술관을 찾는다. 때로는 입장권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거나 도저히 스케줄을 맞출 수 없어 포기할 때도 있지만. 가끔이나마 전시를 보고 공연을 관람할 때마다, 어떤 독서나 강의로도 대체할 수 없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곤 한다. 그것은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좀더 가까이서 머리와 머리를,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만나는 체험이다. 예술이 일상과 동떨어져 평범한 사람들과 유리된 채 만들어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실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상품 소비는 당연히 여기면서 예술을 감상하는 데는 시간도 감정도 비용도 아낀다면, 우리 삶은 나날이 더 삭막해지고 황폐해지지 않을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내면의 다가감</font></font>어떤 예술가는 지칠 때마다 내 등짝을 어루만지는 수호천사처럼 느껴진다.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와 재클린 뒤 프레, 조각가 헨리 무어나 화가 프리다 칼로 등이 내 단골 수호천사들이다.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오를 때 그 순간의 화를 참고 재빨리 은신처를 찾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아, 아까 그 순간 곧바로 화내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노도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 앞에서는 오뉴월에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예술은 고독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기도 하다. 특히 그림을 감상할 때나 음악을 감상할 때는 혼자인 것이 낫다. 예술의 감동이 함께 놀기의 즐거움 속으로 희석될 위험이 있으므로. 옆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쓰다가는 정작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에 집중할 수 없다. 예술과 함께할 수 있다면 외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최적의 감상 조건이 된다.
가슴이 답답할 때, 재클린 뒤 프레가 연주한 를 듣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내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다 괜찮아진다.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쌓이고 쌓인 모든 감정이 음악의 폭풍우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가버린다. 열다섯 살에 혜성처럼 데뷔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 아티스트. 젊은 나이에 다발성경화증으로 외롭게 죽어간 그녀를 생각하면, 예술의 불꽃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린 그녀의 삶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쓰라리면서도 그녀가 남긴 음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녀에게 그림을 향한 뜨거운 갈망은 생명 그 자체를 향한 갈망과 동의어였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과열된 뇌를 식혀줄 무언가가 필요할 때마다, 끊을 수 없는 또 다른 집착을 발견할 때마다, 예술의 언저리를 배고픈 아이처럼 기웃거렸다. 예술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항상 예술의 언저리에는 머물고 싶다. 예술작품은 우리가 나이 들어갈수록 더 환한 미소로, 외로운 당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줄 것이다. 예술을 통해서라면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예술을 통해서라면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예술이라면, 결코 당신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진짜 예술이라면, 결코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겉으로 보기엔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내면의 다가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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