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 따라 제주도를 여행할 때다. 애월 바다에 넋이 나가 한참 보며 걸었다. 오래 걸었더니 출출해 식당을 찾는데 가까이 보리밥집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 식당 입구 텃밭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라, 돌담 아래 또 한 마리, 임시 건물 천막 앞에도 두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녀석들 모두 온몸이 하얗고 이마와 꼬리만 살짝살짝 노랑 무늬가 섞였다. 배고픔도 잊고 가방에서 비상용 샘플 사료를 꺼내 나무판자 위에 부어주었다. 그때였다. 사료 냄새라도 맡았을까. 천막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우르르 고양이들이 몰려나왔다. 밖에 있던 고양이까지 합세해 순식간에 여섯 마리가 한 주먹밖에 안 되는 사료를 놓고 다퉜다.
천막에서 나온 녀석들도 하나같이 머리에 살짝 노랑 무늬가 있는 흰고양이다. 게다가 여섯 마리 모두 눈곱 하나 없이 깔끔해 보였다. 음냥냥 사료 먹는 소리와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시끄러웠을까. 드르륵 부엌문이 열리며 식당 주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제야 나는 식당에 밥 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을 주문하고 몇 마디 물었더니 고양이는 모두 식당에서 밥을 주며 보살피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몇 년 전 죽어가는 고양이가 식당 앞에 앉아 있기에 밥을 주었더니 어느 날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이곳에 데려다놓고 사라졌다. 그 아기고양이의 후손이 바로 지금의 아이들이다.
“어쩜 다들 무늬가 똑같죠?” “얘들 아빠가 흰색이었어요. 엄마는 삼색이. 그런데 이런 애들이 태어나더군요.” 처음 고양이밥을 줄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처음엔 얼마나 뭐라고 했는데요. 밥을 주니까 온 동네 고양이가 다 온다고. 쓰레기봉투 뜯고 더럽다고 싫어했어요. 그런데 밥을 주니 쓰레기봉투를 안 뜯어요. 지금은 할머니들이 고양이 밥 주라고 음식을 가져와요.” 식당 주인이 밥 주는 고양이는 녀석들뿐만 아니었다. 지붕과 부엌 천장 사이에 자폐증 고양이가 살고 있다. “밤에 몰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지 잘 모르겠는데, 몇 년째 지붕에서 지내요. 부엌에서 밥을 올려주면 그제야 와서 먹어요.”
배불리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자 그 많던 고양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통수가 따가워 돌아보니 아까 만난 고양이 모두 빈집 지붕에 올라가 있다. 여섯 마리에 두 마리가 더 늘어 여덟 마리였다. 녀석들은 나를 바라보다 어선이 지나갈 때면 배의 궤적을 따라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붕 위에서 일출도 보고, 저녁놀도 보고, 배 들어오는 것도 보고, 배 나가는 것도 본다. 상상해보라. 빛깔과 무늬가 똑같은 고양이들이 지붕에 올라 일제히 해 지는 바다를 구경하는 장면을. 하늘에 양떼구름이라도 떠 있으면 지붕 위 ‘냥떼구름’과 어울려 온통 구름구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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