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직업 고양이가 있다. 어장관리 고양이다. ‘어장관리’란 말이 인간세계에선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여기선 말 그대로 어장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어장관리 고양이의 임무는 어장과 바지선에서 쥐나 수달의 습격을 막고 양식 중인 물고기와 사료를 지키는 것이다. “여기 수달이 많아요. 수달이 어장에 들어가면 양식 물고기를 작살내는 거예요. 양식 그물에 흠집을 내기도 하고.” 구멍가게에서 만난 주인의 귀띔이다. “그래서 큰 어장에는 고양이 한두 마리씩 다 있어요.”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 고양이였다.
어장관리 고양이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어장에 나가는 배를 얻어 타야 하는데, 낯선 외지인을 태워줄 리 만무했다. 더구나 여기는 거문도이고, 2003년 고양이 500마리를 대량 살처분한, ‘고양이 대참사’가 일어난 섬이 아닌가. 그들이 많은 고양이를 살처분한 이유는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 먹고 거문도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거였다. 2008년에도 똑같은 이유로 길고양이를 살처분하기 위해 섬 전체가 떠들썩했다. 다행히 이때는 동물보호단체와 애묘가들이 나서 ‘거문도 고양이 살리기 운동본부’를 구성했고, 살처분 대신 중성화수술을 하는 쪽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거문도에선 ‘고양이’란 단어가 금기어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디서 왔소?” “서울에서 왔습니다.” “뭐하러 왔소?”
구멍가게 주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얼버무렸다. 다행히 인심 좋은 구멍가게 주인이 1시간 뒤 선창으로 나와보란다. 그렇잖아도 1시간 뒤 어장에 사료를 주러 간다고 했다. 정확히 1시간 뒤 가게 주인은 선창에 나와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배에 태웠다. 바다에는 아침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선창에서 어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고작해야 물길로 5분 정도 거리. 어장에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장에서 물고기 사료를 주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시간을 넘겨서야 주인은 배에 시동을 걸었다. 바다에 즐비하게 떠 있는 어장을 여러 개 지나쳐 거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어장에 잇댄 창고 바지선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배를 향해 이야옹거렸다. 녀석들은 사람이 근처에 온 것이 반가운지, 물목을 도는 배의 방향을 따라 바지선 위를 거의 한 바퀴나 돌았다. 다행히 녀석들은 목줄을 매지 않아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어차피 바다 한가운데이므로 녀석들이 갈 곳은 없었다. 두 녀석 모두 ‘노랑이’였다. 녀석들은 바다가 떠나갈 듯 울어댔지만, 이내 울음소리는 어선의 엔진 소리에 묻혔다. 배는 고양이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결국 두 고양이는 아주 희미한 두 점으로 남았다.
선창에서 가까운 마지막 어장에서도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어장을 어슬렁거리는 ‘고등어’(애묘인이 청회색 무늬 고양이를 일컫는 말) 한 마리. 가만 보니 녀석은 어장의 테두리를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녀석의 걸음걸이는 제법 능숙해서 어장관리에 관한 한 베테랑처럼 보였다. 배가 지나가도 아예 본체만체했다. 심지어 녀석은 어장 귀퉁이에 앉아 느긋하게 그루밍(털 손질)을 하더니 사지를 뻗고 잠을 청했다. 녀석은 외로움을 넘어 거의 절대고독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장관리에 고양이를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양이에게 이런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왜 고양이 살처분을 주장할까. 어민 처지에서 고양이가 그토록 필요하다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좀더 너그럽게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덧 비는 그쳤지만, 거문도는 여전히 먹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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