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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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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다

메탈리카와 3호선버터플라이 공연에서 느낀 다른 듯 같은 감흥
등록 2017-02-10 14:44 수정 2020-05-03 04:28
세상에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고 변해서 좋은 음악도 있다. 메탈리카와 3호선버터플라이의 음악이 그렇다. 메탈리카 공연 모습(위쪽)과 3호선버터플라이 프로필 사진. 액세스이엔티·오름엔터테인먼트 제공

세상에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고 변해서 좋은 음악도 있다. 메탈리카와 3호선버터플라이의 음악이 그렇다. 메탈리카 공연 모습(위쪽)과 3호선버터플라이 프로필 사진. 액세스이엔티·오름엔터테인먼트 제공

묵직한 베이스드럼이 속사포 같은 연타로 울려퍼지자 내 심장도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쇳소리 같은 전기기타의 굉음과 절규하듯 토해내는 노래가 지핀 불길에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무대에서 쏘아올린 레이저 불빛은 돔구장 지붕을 뚫고 저 하늘 높이 솟구칠 기세였다.

육중한 기타 소리와 장중한 곡 구성

지난 1월1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가장 좋아하는 미국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대표곡 (One)을 듣는 순간 돔 지붕을 가르고 날아올라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도착지는 1990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어느 어두컴컴한 뮤직바. ‘MTV’라 불리던 그곳에선 주로 헤비메탈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거기서 메탈리카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포화가 빗발치는 참혹한 전장과 강렬하고 묵직한 스래시메탈(thrash metal·매우 빠르고 불협화음을 내는 헤비메탈)의 결합. 뒤통수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이게 메탈리카구나!

고등학생이던 나는 헤비메탈에 푹 빠져 있었다. 동네 음반가게에서 충동적으로 산 핼러윈 카세트테이프로 헤비메탈에 입문한 나는 멜로디에 강점을 지닌 파워메탈(멜로딕스피드메탈)과 화려함을 내세운 LA메탈에 주로 매혹됐다. 당시 뜨기 시작한 스래시메탈의 대표 주자 메탈리카의 음악도 들어봤지만 그다지 끌리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언제부턴가 메탈리카 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멜로디의 화려함은 없어도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육중한 기타 소리와 러닝타임 5분을 넘기는 건 기본일 정도로 장중한 곡 구성, 가사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에 점차 빠져들고 말았다. 이 수록된 메탈리카 4집 <...>(...And Justice For All)에 빠진 나는 3집, 2집, 1집까지 하나씩 모았다.
메탈리카는 5집 (Metallica)에서 곡 길이를 줄이고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 대중화 노선으로 변화를 꾀했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이전의 무겁고 진중한 메탈리카가 좋았다. 그래도 (Enter Sandman), (Sad But True) 등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6집 이후론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헤비메탈 시대가 저물고 ‘너바나’를 필두로 한 얼터너티브록의 시대가 왔다지만 메탈리카까지 그 흐름에 동승할 필요는 없었다. 얼터너티브록을 훨씬 더 잘하는 다른 밴드들의 곡을 찾아 들었고, 메탈리카의 새 음반들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메탈리카의 이번 내한공연은 8년 만에 발표한 정규 10집 (Hardwired...To Self-Destruct) 월드투어의 하나였다. 이 음반에서 그들은 초창기 스래시메탈 사운드로 돌아갔다. 음반을 들어보니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공연에서 메탈리카가 신곡을 연주할 땐 이상하리만치 감흥이 일지 않았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공연 초반 신곡들을 집중적으로 들려줄 땐 객석이 비교적 조용했다.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건 공연 중반 5집 이전 곡들을 연주하면서부터다. 전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의 함성이 달랐다. 떼창은 기본이고 심지어 기타 솔로 연주까지 “우우우우~” 하며 따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는데 메탈리카가 그랬다. 세월 탓에 한창 때보다 에너지도 덜하고 자잘한 실수도 있었지만, 그때 그 음악을 변하지 않은 마음으로 연주하는 모습에 얼마나 벅차오르던지.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그날 인생 최고의 공연을 봤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독 많이 봤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의 힘은 이토록 강하다.

행복한 선물처럼 다가왔다
1월22일 또 다른 무대를 찾았다. 이번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웨스트브릿지에서 열린 인디록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새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이었다. 무려 5년 만의 정규 5집 (Divided By Zero). 2000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정규 음반을 고작 5장밖에 안 냈으니 과작도 이런 과작이 없다. 그만큼 반가울 수밖에 없다.
미리 들어본 음반은 놀라웠다. 3호선버터플라이가 변화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번엔 변화의 폭이 특히 컸다. 러닝타임이 무려 11분에 이르는 첫 곡 부터 그랬다. 반복적인 악절을 촘촘히 쌓아가더니 후반부 들어서는 몽환적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넣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곡들에선 경쾌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춤추고픈 욕망을 불어넣는다.
이 음반이 나오기까지 밴드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애초 밴드를 결성하고 주도해온 멤버 성기완(기타)이 지난해 봄 탈퇴한 것이다. 속사정을 다 알 길은 없지만 음악적 견해차를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남은 멤버 남상아(보컬·기타), 김남윤(베이스), 서현정(드럼)은 기존 밴드 색깔에 새로운 변화를 조금씩 더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5집 음반이다.
공연장에서 만난 신곡들은 정말 좋았다. 몽환적 영상과 함께 선보인 는 나를 우주로 보내버린 것만 같았고, 댄서블한 곡들이 이어질 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와 다리를 들썩였다.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최철욱(트롬본)과 성낙원(색소폰)이 참여한 곡 을 라이브로 듣는 건 진기한 경험이었다. 처음엔 노이즈처럼 들리던 트롬본과 색소폰 소리가 후반부에선 포근히 감싸안는 편곡은 그야말로 행복한 선물처럼 다가왔다. 공연 내내 든 생각은 ‘변해서 참 좋다’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는 반면 변해서 좋은 음악도 있는 법이다.
“밴드를 18년 하니 별의별 스타일을 다 해보네요. 처음엔 얼터너티브록으로 시작해 이젠 댄서블한 음악도 하고요.” 김남윤이 말했다. “계속 변해야 재밌죠. 여러분도 올해 새로운 거 한번 해보세요. 저도 올해 다른 거 해볼 계획이 있어요.” 남상아가 덧붙였다.
“그래! 3호선은 바로 이거야”
앙코르 무대에서 이들은 말했다. “기완이 형이 많은 걸 만들고 우리가 밴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곡은 형의 많은 것이 담긴 노래 입니다.” 4집 음반 (Dreamtalk)의 처연한 타이틀곡이다. 옆에 있던 친구가 노래를 듣다 감격에 겨운 듯 내뱉었다. “그래! 3호선은 바로 이거야.” 역시 3호선버터플라이에도 변하지 않아서 좋은 음악이 있었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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