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광진구의 어린이꿀벌학교에 모인 어린이들. 우주복 같은 방충복을 입어야 벌에 쏘이지 않는다. 원익진 (사)한국양봉협회 서울지회장(가운데) 정도 되면 안 입어도 된다. 최우리
양봉을 한다고 하면 “벌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무기 하나 없이 몸뚱이 하나로 사는 도시인이 침 가진 벌을 안 무서워할 리 없다. 하지만 처음 만난 친구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벌이라는 친구를 관찰하고 적응해가는 수밖에 없다.
처음 양봉장에 갔던 지난봄, 그날을 소리로 기억한다. 초보 농부가 된다는 설렘보다 앞선 것은 약간의 공포였다. 벌의 세상에 다가가는 도시인의 영혼은 잔뜩 긴장했다. 벌 수만 마리의 웅웅 소리와 소리가 만들어내는 작고 빠른 진동에 온 정신은 양 귀 끝에 머물러 있었다. 어깨 근육이 뭉쳐왔다.
소리를 들으면 벌의 기분을 알 수 있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속도와 리듬의 웅웅거림은, 꽃이 많이 피어 벌이 열심히 꿀을 모으느라 바빴던 5~6월쯤 들은 것 같다. 배가 부르면 사람도 벌도 기분이 좋은 걸까.
너무 더워 힘들었던 지난여름에는 벌도 짜증이 많이 나 보였다. 이런 날의 웅웅거림은 날개에 모터를 단 듯 속도가 빨라진다. 귀 안에 들어온 듯 볼륨도 매우 커진다. “나 오늘 기분 안 좋아요. 건들지 마세요. 나 침 있는 거 알죠?”라고 말을 건네오는 벌들에게 “그래도 네 집 안을 좀 살펴봐도 되겠니?”라고 말을 걸기란…. 그런 날 꼭 잘 쏘인다.
나의 경우 8개월 동안 세 번 벌에 쏘였다. 벌이 어쩌다 방충복 안에 들어왔지만 벌을 처리(?)했거나 벌이 쫓아왔지만 도망에 성공한 경우처럼 위기 상황은 많았지만, 실제 쏘인 횟수는 많지 않다. 모자·장갑·상의·하의 등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부위별 방충 장비가 있는데, 하의를 따로 입지 않은데다 스키니 바지를 입은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벌에 쏘이면… 많이 아프다. 가늘고 뾰족한 주삿바늘을 누가 작정하고 살에 꽂아넣는 느낌이 이럴까. 순간 매우 화가 나지만, 나를 쏜 벌의 최후를 본 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녀석은 청바지 위에 박힌 침을 빼내느라 격렬하게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침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녀석의 하얀 내장도 딸려나왔다. 곧 죽을 벌을 집어들고는 속으로 말했다. ‘네 목숨을 버릴 만큼 내가 미웠구나. 미안해.’ 벌을 계속 만나려면 내가 참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평등하지 않은 법이니.
꿀벌이 지닌 0.3mg의 침은 그 양은 적지만 사람 몸에서 다양하게 반응한다. 벌에 쏘였던 세 번 중 한 번은 아무 증상 없이 지나갔고, 한 번은 불주사를 맞은 양 볼록한 상처만 남았고 또 한 번은 한쪽 다리 전체가 코끼리 다리만큼 붓고 빨개져 스테로이드제 주사를 맞고 이틀치 약을 먹고야 나았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한상미 박사는 “침의 여러 성분이 몸 안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데 벌침의 양,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벌은 사람이 먼저 귀찮게 하지 않으면 쏘지 않는 성격이다. (아마도.) 벚꽃잎 위에서, 코스모스 핀 길가에서 마주친 벌을 기억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양봉에 관심 있는 도시인은 용감하게 벌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야 하니까 미리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나는 심심하면 새로 나온 방충복은 없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곤 한다. 양봉하러 갈 때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야 하는데 아무 옷이나 입고 집을 나설 수 없다. 스키니 바지 말고 통 넓은 바지를 입자니 발목이 공격당하기 쉽다. 개인적으로 방충복을 입으면 변신하는 기분이다. 우중충한 회색빛 미래 도시에서 사라진 푸르름을 찾는 공상과학(SF) 영화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랄까. 내년 봄에는 패셔너블하면서 실용적인 방충복을 새로 사입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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