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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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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노동과 연대’를 말하는 박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등록 2016-12-22 17:34 수정 2020-05-03 04:28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사 진진 제공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어.”

“제주도 여행 진행하며 알던 청해진해운 사무장님 시신이 발견됐어. 이 사건이 나랑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사건을 잊지 말고.”

세 명이 둘러앉아 있다.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분주히 움직인다. 한코 한코 정성 들여 실을 엮으며 뜨개질을 한다. 실처럼 뜨개질도, 이야기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다큐멘터리 영화 은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30대 여성들의 일과 삶 이야기다. 직장 동료이자 뜨개질 모임 멤버 나나, 주이, 빽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뜨개질을 매개로 만나는, 2013년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부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집회가 펼쳐진 2015년까지 사회적 시간도 이야기의 한 축이다.

# 첫코뜨기

나나, 주이, 빽은 매일 이어지는 야근을 하다 뭔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탈출을 기획한다. ‘뜨개질’이다. ‘야근 대신 뜨개질’(야뜨)이란 모임까지 만든다. 모임의 첫 프로젝트도 구상한다. 서울 영등포역 버스정류장에 자수품 걸기다. ‘삭막한 도시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자’라는 생각으로 새벽에 프로젝트를 행동에 옮긴다. 들뜬 마음으로 정류장에 자수품을 걸어놓는다. 날이 밝고 그들의 작품은 무참히 철거된다.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 뒤 주인공들에겐 다른 감정이 쌓였다. “이제 영등포라는 공간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박소현 감독은 말한다. “주인공들의 직장이 있는 영등포란 곳은 그냥 일만 하고 가는 공간, 정이 가지 않는 동네였다. 그러다 많은 시간 일을 하는 공간부터 바꾸자라는 생각에서 여기를 처음 프로젝트 장소로 정했다. 나나가 ‘파라다이스는 어디에 있을까’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그런 곳은 따로 없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도 비롯됐다.”

뜨개질 모임을 결성했지만 휴일근로, 야근 등 과도한 노동 때문에 뜨개질은 잠정 중단된다. 카메라는 그들의 뜨개질을 방해하는 노동문제를 비춘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공정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다.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 현지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여행을 공정여행이라 부른다. 이 회사는 이윤 창출 극대화가 목적이라기보다 취약계층 일자리 만들기와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적,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권위적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 구성원들은 서로 닉네임을 부른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생활은 늘어가는 업무와 그로 인한 야근으로 채워진다. 자신이 기대했던 가치는 어려운 현실에 부딪치며 휘말려간다. 사회적 가치 실현과 자신의 노동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이 작품은 뜨개질 소모임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처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노동문제 등 거대 담론까지 촘촘하게 엮어낸다”며 “제3세계 노동 착취를 반대하고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곳에서조차 노동은 공정하게 구성되지 않는다. 공정여행이란 목표 안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도 포함돼야 하지 않는가. 이 작품은 사회적기업이라 하지만 국가 지원이 끝나면 자생하기 위해 과도한 확장을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노동문제까지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 겉뜨기와 안뜨기

나나, 주이, 빽이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에서 노란 리본을 뜨고 있다. 뜨개질을 통해 타자와 연대의 끈을 이어간다. 영화사 진진 제공

나나, 주이, 빽이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에서 노란 리본을 뜨고 있다. 뜨개질을 통해 타자와 연대의 끈을 이어간다. 영화사 진진 제공

나나는 아무런 공지 없이 임의대로 임금협상을 미룬 회사 쪽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전에는 관심 없던 회사의 취업규칙을 찾아보고 자신의 노동환경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노동자 권리를 알기 위해 노동법 강의를 듣고 노동조합 준비 모임을 꾸린다. 사회적기업에서 첫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노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과 부딪힌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경영관리자들과 맞서야 한다.

대표이사 ‘변’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나나의 대화를 통해 두 언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이사 ‘변’은 경주마에게 가리개를 하고 따라오라 하면 따라올 수 있겠느냐고 나나에게 물어본다. 대의를 위해, 뭔가 좀더 큰일을 하기 위해서 희생이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공정여행이란 이름을 달고 임팩트를 크게 하지 못하면 너희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인데, 나나는 그 반대 이야기를 한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우선이라고.

박소현 감독은 “대표이사 변은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우리가 그동안 들어온 익숙한 언어를 사용한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친구들은 그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나나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서 이젠 다른 방식의 언어나 소통을 찾아야 할 게 아니냐는 질문을 관객에게 협상 테이블 장면을 통해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남녀 대립보다 그 안에 보이는 언어들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뜨개질처럼 한코 한코 정성 들여 실을 꿰듯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세심하고 따뜻한 소통 방식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회사의 구조조정 바람 속에 나나는 결국 노조를 만들지 못하고 퇴사한다. 주이와 빽 또한 사회적기업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가 결국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시작이다. “결과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문제없다. 모든 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아질 여지는 있다.”(케이트 제이콥스, )

# 이어붙이기

나나와 주이, 빽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4·16 세월호 천막에서 노란리본을 뜬다. 집회에 나가본 적 없는 이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 바로 뜨개질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이야기한다. 뜨개질과 바느질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인권 현장으로 보내는 ‘이어붙이는 농성장’과 이어진다. 나나는 “내가 그걸 경험하면 내 경험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뜨개질’이란 메타포를 통해 ‘연대’를 이야기한다. 박소현 감독은 말한다. “주인공들이 밀양에 농활을 간다. 거기서 자신들이 코바늘로 뜬 세월호 노란리본을 밀양에 있는 할머니에게 달아준다. 상징적 장면인데 ‘밀양 안에 세월호, 세월호 안에 밀양’ 이렇게 우리는 뜨개질의 실처럼 서로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연대한다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들의 연대는 수다처럼 시끄럽다. 서로 다르기에 이해되지 않은 타자에게 말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타자와 함께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2016년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나프(NAWFF) 어워드’에서는 “자신의 노동환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고통이 있는 곳을 찾아나서, 연대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0대 여성들이 연대할 때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나나, 주이, 빽은 일련의 사회적 사건을 기억하고 그것을 자기 문제로 엮어가는 방법으로 뜨개질을 한다. 그들에게 뜨개질은 사회와 개인이 만나는 접점인 것이다.

첫코뜨기에서 이어붙이기까지의 뜨개질 과정처럼 인정 이론 패러다임 안에서 배제의 논리, 희생의 논리를 극복하고 타자와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연대로 나아간다. 이 연대 방식은 뜨개질 패턴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연결될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기에.

  박소현  감독  인터뷰


함께  엮은  우리의  30대  이야기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박소현 감독은 속 뜨개질 모임의 멤버다.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그는 전공을 살려 이 모임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2년여 제작 기간 동안 실타래가 얽히고 다시 풀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이 있었다. 그때마다 멤버들과 함께하며 서로에게 큰 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함께 엮은 작품이 감독 데뷔작이 되었다. 그동안 재일조선인의 삶을 다룬 , 임신중절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등에서 조감독을 했다.
회사 동료였던 사람들을 찍었다.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보통 육아맘이나 골드미스에 관한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30대 여성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주인공 나나는 감독의 페르소나인가.
나나는 나하고 나이도 같고 ‘야근 대신 뜨개질’ 모임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다. 나랑 무척 다르다. 나는 힘든 것, 마음에 안 드는 것 만날 때는 피해버리는데 나나는 그것을 바꿔나가고 행복하게 고민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신기했다.
작품 속 뜨개질은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극장 개봉 버전에 빠진 장면이 있다. 이 친구들이 부산 여행을 갔는데 탈핵 행사에 참석하다가 그때 스쳐 지나간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는 경북 청도 삼평리 부녀회장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나만 아는 사람들이 엮이고 만나는 것을 편집하면서 알게 됐다.
나나, 주이, 빽 세 주인공은 촬영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
나나는 다른 사회적기업에서 일한다. 전 직장 동료들과 공정여행 관련 블로그도 만들었다. 주이는 모로코에서 외국 공동체를 체험하고 있다. 간간이 이탈리아 등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한다. 빽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 중이다. 제주 강정마을 농성장에 보내려 뜨개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속편을 만들 계획은.
아직 속편 계획은 없다. 이 작품은 30대 때 찍은 30대의 이야기니까 다음에는 40대나 50대 관계 맺기,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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