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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등록 2016-11-26 20:46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끝을 맺지 못하는 기획 기사가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마무리짓기로 한 <font color="#C21A1A">‘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font>는 모든 뉴스를 집어삼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마지막 정거장에 닿기까지 한 회를 남겨두고 기약 없이 주저앉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152억원 vs 35조원 </font></font>

사실 이 기획을 이어가면서 조급증과 무력감이 번갈아 찾아왔다. 아이가 앞으로 살날이 부모가 살날보다 짧을 것이 예견돼 있어 하루가 아쉬운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마음이 바빠졌다. 더 이상 모금방송과 후원단체에 기대지 않고 아픈 아이를 치료하자는 기획 취지에 가족들은 깊이 공감한 한편 “우리 아이 때는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어느 엄마의 목소리엔 짙은 피로와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

마지막 취재원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숙소가 있는 광주로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이게 뭐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건, 5152억원을 말한다. 나는 그날도 취재원인 아이 엄마를 만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정부가 건강보험 흑자분의 2.5%를 헐면, 아동 병원입원비 5152억원을 마련할 수 있어요. 저희는 그런 얘기를….”

은 아픈 아이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기 위한 최소한의 돈을 주장했다. 0~15살 아동의 치료비 중 가장 부담이 큰 입원비를 국가가 책임지는 데 필요한 돈이 연간 5152억원이다. 이 돈이 뭐라고, 국가는 아픈 아이들을 외면할까. 카메라 앞에서 ‘사생활’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하는 이들의 무너지는 자존감을 왜 받쳐주지 못할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초조와 무력감, 그리고 깊은 ‘빡침’은 정점을 찍었다. 이들이 해처먹은 돈에 비하면 5152억원은 모래알 수준의 규모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인해 움직인 경제 규모는 약 56조원, 이로 인한 국민 피해액은 35조원에 육박한다. 35조원이라니. 5152억원의 몇 배나 되나 계산하려고 휴대전화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35조원은 너무 커서 입력조차 되지 않았다. 35조원은 5152억원의 68배에 이르는 돈이다. 0~15살 병원 입원비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치료비 전액을 보장하고도 남는 돈이다.

취재하다 만난 한 엄마는 20대 아들의 이식수술을 예약했다가 취소했다. 이식수술은 비용이 많이 들어 항암치료까지만 하기로 결정했다. 남은 아이들 때문이다. “살 아이라면 살겠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아이의 운명에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이게 뭐라고’ 싶다. 이렇게 매일 버티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정치권력이 공감하고 어루만지리라는 기대는 이번 사태로 더 산산이 부서졌다. 기업을 ‘삥뜯고’, 세금을 줄줄 흘리고, 사익과 공익을 구분 못하는 정치권력의 추함과 무능과 무감각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불안을 느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낮은 목소리가 함성이 될 때까지</font></font>

그들 또한 이렇게 생각할까. ‘이게 뭐라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을까. 웅성거리던 낮은 목소리가 함성이 되어 울리던 그 순간에 광화문 광장 너머 ‘시크릿가든’에 숨어 있었던 그에게 이게 뭐냐고, “이게 최선이냐”고 묻고 싶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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