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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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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육아빠들

아빠의 아이 사랑을 소외하지 말 것 ‘부성보호’를 위한 사회 시스템 필요해
등록 2016-09-09 17:04 수정 2020-05-02 19:28
남편은 아이를 업고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한강을 산책하는 남편과 아이. 송채경화 기자

남편은 아이를 업고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한강을 산책하는 남편과 아이. 송채경화 기자

남편의 딸사랑은 좀 유난한 데가 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나보다 더 자주 신생아실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고는 했다. 새벽에 아이가 깨서 울면 1초 만에 벌떡 일어나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도 나보다 더 열심이었다. 누군가 아기가 먹으면 안 되는 딱딱한 과자나 짠 음식을 주려 하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아들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시부모님이 깜짝 놀랄 정도다. 남편을 보면서 종종 ‘부성’에 대해 생각한다. 모성애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은 부성애를 우리 사회가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최근 집이 가까운 회사 동기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그는 지난 7월부터 육아휴직 중인 ‘육아빠’다. 아내는 1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했다. 두 달 가까이 육아를 전담하는 동안 그의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따르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무서운 걸 볼 때도 본능적으로 아빠에게 먼저 안긴단다. 아직 손톱깎기나 옷 입히기 등이 서툴지만 이유식 만들기는 자신 있다고 했다. 또래 아이를 가진 우리는 즐겁게 ‘엄빠들의 대화’를 나눴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의 호기심, 아이가 생떼 부릴 때의 난감함, 이유식 메뉴 등 대화는 끊길 새가 없었다.

그가 부성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회사의 육아휴직 문화 덕분이다. 현재 ( 포함)에는 나를 포함해 6명의 기자가 육아휴직 중이다. 이 가운데 4명이 남자, 2명이 여자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여성의 두 배라니. 는 진정 ‘부성보호’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부성보호’ 시스템을 도입할 때가 됐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동기 ‘육아빠’는 남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깨알 같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단 대화 상대가 부족하다는 것. 여성 위주인 육아 커뮤니티에 끼기 힘들다고 했다. (아아, 그래서 나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수다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ㅜㅜ) 아이와 둘이 외출할 때 기저귀 갈 곳이 없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고 수유실은 대부분 남성들이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출할 때 밴드형 기저귀 대신 (아기가 서 있어도 갈기 편한) 팬티형 기저귀를 따로 챙겨 나간다고 한다. (육아빠의 세심함이란!)

남성 육아자를 위한 시설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육아 지원 제도 자체가 지나치게 모성 중심이라는 점이다.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육아휴직 급여 신청 항목이 아예 ‘모성보호 급여 신청’으로 표기돼 있다. 정책 실행자들에게 ‘육아휴직자=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정치부에 출입하던 시절 한 정치인은 여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워킹맘을 위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여성만을 위한 제도는 오히려 모든 육아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부성보호’는 ‘모성보호’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우리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아질수록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남성도 자유롭게 육아휴직하는 마당에 여성으로서 육아휴직에 대해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동안에도 ‘나만 뒤처진다’는 공포감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된다. 이뿐 아니라 남성의 육아휴직은 워킹맘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구실도 한다. 워킹맘들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육아빠’가 늘어날수록 사회의 ‘모성 강요’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결국 ‘부성보호’는 ‘모성보호’와 같은 말이다. 부성애를 허하라!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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