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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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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자유를 허하라!

남편의 24시간 ‘독박육아’에 아내는 흩날리는 벚꽃잎이…
등록 2016-03-31 19:15 수정 2020-05-03 04:28

남편이 3일째 외박을 했다. 최근 들어 일이 부쩍 늘었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방해하기 싫어 바가지를 긁지는 않았지만 낮 시간의 독박육아를 넘어서 밤까지 혼자 보내자니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말 못하는 아기와 단둘이 보내다 저녁이 되면 남편을 붙들고 수다를 떨어야 조금이나마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그럴 수 없는 하루하루는 얼마나 말라비틀어진 삶인지.
대체 왜 나 혼자만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2주에 한 번, 하루 24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는 것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 에서도 48시간 동안 엄마 없이 아빠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던가. 그것을 내 삶에 차용해보는 거다.
남편에게 2주에 한 번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대신 평소에는 내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예. 갑자기 신이 났다. 이 자유로운 하루를 위해서라면 외로운 2주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낳은 뒤 혼자 두세 시간 정도 외출한 적은 있지만 하루를 통째로 나를 위해 써보기는 처음이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엔 이 둘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이를 잠시 맡기고 나갔다가 서둘러 돌아와 다시 돌보는 것과 하루 종일 육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오롯이 나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이날 하루만은 아이에 대해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남편은 아기 씻기기, 먹이기, 재우기, 놀아주기 모두에 익숙하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루 종일 뭘 했느냐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전거 타기였다. 이 사소한 일이 나에게는 가장 하고 싶던 것이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5분만 달리면 바로 한강공원이었지만 1년 넘게 자전거를 타보지 못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자전거 페달을 밟으니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아, 내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9kg이 넘는 아기를 안거나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 밀고 다니다가 내 한 몸 훌쩍 자전거에 올라타고 달리자니 바람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벚꽃잎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나만을 위한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꽉 채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아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남편의 표정도 의외로 밝았다.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놀았단다. 아이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며 아빠한테만 오겠다고 하는 걸 보고 이제는 확실히 아빠를 알아보는구나 싶어서 기뻤다고 했다. 온종일 아이를 데리고 있어보니 요리를 한다는 것은 사치이고 겨우 밑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그동안의 내 노고를 치하했다. 아하, 바로 이런 걸 가리켜 일석이조, 일거양득이라고 하는 거군.

아기와 함께 하는 식사는 전쟁이다. 남편이 아기를 업은 채 힘겹게 밥을 먹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아기와 함께 하는 식사는 전쟁이다. 남편이 아기를 업은 채 힘겹게 밥을 먹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를 열심히 보면서도 그동안 왜 한 번도 우리 집에 적용해볼 생각을 못했을까.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아이와 절대 떨어져선 안 되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작용한 탓일 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엄마를 향한 비판적 시선은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남편의 경우 생각보다 덜 미안해해도 된다. 예상보다 남편의 만족도가 높았다. 아이와 온종일 부대끼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꽤 컸던 모양이다.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날에도 아이는 대체로 엄마가 돌보게 되지 않던가. 남편에게도 아이를 오랜 시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필요하다. 나머지 날에는 아내의 잔소리를 덜 들어도 되니 그에게도 남는 장사다. 엄마들이여, 우리도 ‘슈퍼맨’을 적극 활용합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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