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했던 우리 집 거실이 아이를 낳은 뒤 놀이방으로 변했다. 송채경화 기자
스너그, 부스터, 러닝홈, 바운서, 베이비룸, 힙시트, 아기체육관, 놀이방매트, 알집매트, 슬리핑백, 범퍼침대…. 이 용어들이 외계어로 들린다고? 만일 임신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정신 똑바로 차리기를 당부한다. 나도 임신부 시절 아기용품 목록을 만들다가 현기증이 나다 못해 안 하던 입덧까지 할 뻔했다. 거짓말 안 하고 아기용품 목록으로 이 칼럼을 다 채울 수도 있다. 꼭 필요하다는 용품만 해도 몇십 가지가 된다. 그 용어들 또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이 대부분이라 처음 접했을 땐 마치 내가 간첩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임신 8개월 즈음 나보다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가 작성했던 용품 목록을 받았다. 거기서 ‘아기체육관’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는 권투장에 있을 법한 ‘사각링’이었다. 아기가 들어가서 운동하라고 작게 만든 미니 사각링이 아닐까 추측했다. (상상력의 빈곤함이여!) 아기용품을 챙겨주던 사촌언니가 “근데, 힙시트는 있니?”라고 물었을 때는 그게 뭔지 한참을 고민했다. ‘hip seat’라는 영어 단어의 조합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언니, 나 산모방석은 있는데…”라고 대답했다. 힙시트는 엄마의 허리에 둘러 그 위에 아기를 앉힐 수 있도록 만든 아기띠의 한 종류다.
자, 여기까지가 입문 단계다. 용어를 마스터했다면 이제 이것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돈이 많으면 그냥 다 사면 된다. 새 물건을 살 돈이 부족하면 중고시장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나처럼 중고시장을 기웃거리기도 귀찮거나 돈이 많이 부족하다면? 인맥을 활용하면 된다. 일단 임신 사실을 만방에 알린 뒤 안 쓰는 물품이 있으면 물려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방법으로 옷과 장난감 등 아기용품의 90% 이상을 얻어 쓰고 있다. 회사 동료, 학교 선후배, 친인척, 동네 친구 등등 평소 연락도 자주 안 하고 지내던 지인들까지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어떤 것들은 다른 집을 두세 바퀴 돌아 우리 집으로 오기도 했다.
물품을 구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가장 어려운 단계가 아직 남아 있다. 대체 이 물건들을 집 안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신혼 초 우리 집 인테리어의 콘셉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모던 스타일’이었다. (어디선가 실소를 터뜨리는 엄마들이 눈에 보인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참 지난 뒤까지 나는 이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아기가 본격적으로 기어다니기 시작하자 인테리어 폭탄인 ‘놀이방매트’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닥에 깔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놀이방’으로 변신한다. 이걸 피하고자 많은 엄마들이 알록달록한 놀이방매트 대신 심플한 디자인의 매트를 구매해보지만 그렇다고 한들 ‘놀이방 인테리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매트 위에 아기와 함께 올려진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들은 어쩔 건데! 이 글 맨 앞에 적힌 물품들을 그냥 어딘가에 놓기만 해도 집 안의 인테리어는 전혀 모던하지 않게 변한다.
원래 서재였던 방을 아이방으로 꾸며주고 거실까지 놀이방으로 만들어주고 나니 내 공간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외출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지저분한 거실 때문에 한숨부터 나온다. (빨리 익숙해지자고 되뇌어보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침실만은 아이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혹시 아이가 놀다 떨어질까봐 침대 프레임을 없애긴 했지만 그럭저럭 신혼 초의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침실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진정한 휴식이 시작된다. 아가야, 앞으로도 이곳만은 엄마·아빠를 위해 남겨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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