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 사진 객관적으로 예뻐, 안 예뻐?” 요즘 내가 언니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나는 어느 순간 객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내 눈을 믿지 않기로 했다. 내가 보기엔 눈·코·입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는 내 아이가 남들 눈에는 전혀 예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니, 어떻게 이 사진이 안 예쁠 수 있어?” 내 말에 언니는 진지한 얼굴로 조목조목 반박해주었다. “이거 봐, 얼굴이 너무 커 보이잖아. 코도 낮아 보이고. 넓은 이마가 도드라져 대머리 아저씨 같아.” 속으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언니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난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엄마니까.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난 기자다. 기자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객관성을 철칙으로 여겼다. 심지어 남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하소연할 때도 객관성을 이유로 온전히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아 서운함을 느끼게 할 때도 있었다. 그랬던 나였으니 자식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때로 부모가 된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아이 사진으로 도배하며 자식 자랑하는 걸 보고 ‘난 저러지 말아야지’ 했다. 나만은 내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내 자식이 못생겨서 안 예뻐할까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자 그렇게 믿어왔던 내 두뇌의 객관성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이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로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 뇌 속에 바이러스라도 심어놓은 것 같다. 아니면, 소설 에서 주인공 ‘아오메’가 꽉 막힌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간 순간 두 개의 달이 뜨는 낯선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나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했거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 눈의 콩깍지는 아이를 낳자마자 신내림하듯 찾아오지는 않았다. 처음엔 책임감을 바탕으로 열심히 아이를 먹이고 재웠을 뿐이다. 아이가 밤낮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울어대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을 정도, 딱 그만큼 예뻤다.
그러다가 아이는 울음이 점점 줄어들었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의 웃음소리에 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팔을 바둥거리며 안아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가슴에 스며들면서 애틋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때부터였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입을 삐죽대는 것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러웠다. 한번은 내 아이가 진짜로 예쁜지 보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든 다음 ‘객관의 눈을 장착하자’고 다짐한 뒤 아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예뻤다.
그렇다. 나도 어느새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는 딸바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무관심했던 (심지어 냉소를 보냈던) 다른 이들의 아이 사진에도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너무 예쁘다’며 댓글을 달고 있다. 내 아이를 사랑하게 되니 다른 아이들도 예뻐 보였다. 그리고 딸의 사진은 (내 눈으로는 감별할 수 없으니) 언니의 눈을 빌려 예쁜 사진을 골라 SNS에 올린다. (요샌 언니도 객관성을 서서히 상실해가고 있어서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알고 나면 남들 앞에서 최소한의 겸손한 태도는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다. 지인의 제보에 따르면 남편은 친구들에게 딸 사진을 무더기로 보여주며 칭찬을 강요한다고 한다. 남편님아, 적당히 하자 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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