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밤에 대한 공포다. 대여섯 살 때까지 온 식구가 한방에서 잤지만 옆에 누운 엄마가 잠들고 난 뒤 혼자 깨어 있는 그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부끄럽게도 나는 여전히 밤이 무섭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는데 그 무렵부터는 자주 가위에 눌렸다. 가위에 눌린 밤이면 땀에 젖은 몸을 일으켜 온 힘을 다해 언니 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언니가 독립해 나갔을 때는 가끔 부모님 방을 찾았다. 집을 나와 언니와 둘이 살다가 언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이제 나도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설레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이제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언니네 신혼집에 얹혀살았다. (밤에 신혼부부의 방으로 찾아가지는 않았으니 너무 걱정들 마시라.) 결혼한 뒤에도 남편이 늦거나 외박하는 날이면 여전히 무섭다. 나는 종종 ‘독하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인데 유독 밤만 되면 ‘독기’가 사라진다. 결국 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해보지 못한 채 이렇게 늙어가야 하는 것인가.
그랬던 내가 딸아이가 생후 7개월이 되면서부터 방을 따로 마련해 재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다. 아기를 품 안에 끼고 자는 애착육아가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따로 재우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영·유아를 따로 재우는 비율은 5.5%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는 별도의 방에서 재우는 비율이 66.2%다. 육아 커뮤니티에 가보면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많은 부모가 애착육아와 따로 자는 수면교육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애착육아로 돌아선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이 아이에게 더 좋다는 확실한 이론은 없다. 무슨 방식을 택하느냐는 오롯이 부모의 선택이다.
우리 부부는 수면교육을 선택했다. 영·유아기에 제대로 된 애착을 형성해야 정신적 안정감을 찾는다지만 그것이 꼭 아이와 같은 이부자리에서 자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다섯 살 때까지 엄마 옆에서 잠들었어도 여전히 밤만 되면 불안에 떠는 나 같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아이에게 밤을 두려워하는 습성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에는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 의사의 조언도 큰 역할을 차지했다. 그는 아이가 2개월 때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하도록 권유했다. 그 덕분에 지금 아이는 밤에 12시간 동안 깨지 않고 잘 잔다. 이제는 오히려 안고 있거나 누군가 옆에 누워 있으면 불편한지 잠을 잘 못 이룬다. 그와 동시에 나의 수면시간도 늘어나 낮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 훨씬 즐거워졌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엄마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지난해에는 한 교수가 진화론적으로 “아이는 원래 엄마와 함께 잤다”며 혼자 자다가 우는 아이의 서러움과 함께 영아돌연사증후군까지 아이를 따로 재우는 엄마 탓으로 돌리는 듯한 칼럼을 써서 엄마들의 분노를 샀다. (영아돌연사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글에는 ‘아빠’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의 양육을 함께 책임져야 할 ‘아빠’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러더니 최근에는 우리나라 영·유아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서구보다 1시간 이상 짧은 이유가 아이와 엄마가 같이 자는 방식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제목이 가관이다. ‘엄마 때문에 잠 모자란 아기들’이란다. 그러니까 따로 자도 엄마 탓, 같이 자도 엄마 탓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잠을 늦게 자는 이유는 부모의 장시간 노동 탓이지 엄마와 같이 자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왜 개인의 탓으로, 그것도 ‘슈퍼우먼’이길 강요받으며 힘겹게 사는 엄마들의 탓으로 돌리는 건지 정말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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