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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애를 안 낳아봐서 그래”

아이 없는 기혼여성이 자주 맞닥뜨리는 너무 흔한 비정상적인 발상과 질문
등록 2016-08-19 23:49 수정 2020-05-03 04:28
아이 없는 삶을 다룬 책들. 왼쪽부터 북키앙, 푸른숲 제공

아이 없는 삶을 다룬 책들. 왼쪽부터 북키앙, 푸른숲 제공

우리 언니는 결혼한 지 6년 됐다. 나이는 서른아홉. 아이가 없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아니, 왜 아직 아이가 없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대요.” 이렇게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문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네가 아이 낳은 걸 부러워하지는 않고?” “그래서 행복해하니?” “그 행복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에는 전제가 있다.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특히 내가 아이를 낳고부터 언니는 친척을 만날 때마다 더욱 난감해한다. “네 동생도 낳았는데, 너는 뭐하는 거니?”라는 질문은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아이가 백일이 됐을 때 친척들에게 돈봉투를 받는 나를 바라보던 언니에게 누군가는 “부럽지? 너도 아이 낳으면 줄게”라고 얘기했다. 언니가 가끔 당당한 목소리로 “저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면 “그거 자랑 아니거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은 이렇게 쉽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폄하되고 만다. 당당한 태도를 더 ‘미워하는’ 사람들 앞에 선 언니를 보니 평소 “왜 당당하지 못하느냐”고 얘기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언젠가 언니는 말했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 없는 친구를 만나면 내가 정상인 것 같아. 그런데 아이 낳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가 무슨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해져.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듯한 패배감이 느껴지거든. 내 가치관에 따른 삶을 선택했을 뿐인데….” 언니는 최근 “왜 아이가 없느냐”는 질문에 “낳고 싶지 않다”는 대답보다 “안 생겨요”라거나 “생기면 낳아야죠”라는 대답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게 그다음 질문을 막는 데 최선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아직 철이 덜 들었다’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해 은유 작가는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전한다.

“한 사람의 지적·정서적 무능이 출산 경험의 부재에서 왔다는 발상. …그건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고, 애 낳은 여자들에 대한 편의적 망상이다. …애 낳고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 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언니가 단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겪어내야 하는 수많은 편견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힘들다. 때로는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이 오히려 미안해질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저 편견으로부터 탈출한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은근슬쩍 언니에게 속삭인다. 아직 늦지 않았어. 언니도 웬만하면 이쪽 세계로 건너와. 이건 “왜 당당하지 못하느냐”는 타박보다 더 비겁한 행동이다. 나조차도 마음 한구석에 결혼과 출산을 통해 비로소 행복이 완성되며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은 언니를 한없이 딱하게, 그래서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본 것이다.

삶의 방식과 행복을 이렇게 한 가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 ‘애를 낳는 선택’이 정말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사실일까? 미국 임상심리학자가 쓴 책 에서는 ‘아이 없는 삶은 선택’이며 ‘아이가 없어서 생기는 불안은 아이가 있어서 드는 불안의 총량과 비슷하다’고 한다.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행복의 방식만이 ‘완전체’는 아닐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시대는 지났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무엇보다 언니가 늘 주장하듯 우리가 던지는 그 질문이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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