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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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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빛깔 ‘인생 거울’

동서양 사상가들을 통해 삶의 기술 찾는 <나를 공부할 시간>
등록 2016-09-07 21:42 수정 2020-05-03 04:28

‘뭔지’가 되어. 나 누구지, 뭘 원하지, 왜 이러지. 그럴 때마다 책과 생각한테로 가서 해결을 본 자들이 있다. 대개 역사에 이름을 새긴 이다. 김선희의 (풀빛 펴냄)은 고명한 동서양 인문학자 열네 명을 통해 삶의 기술을 명증한다. 이 증명은 가슴 뻐근하다. 글로 정보를 축적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 받아본 적 없는, 바닥없는 위로를 문장에서 받는 이라면 더더욱. 글과 사유가 개입할 때 삶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얘기는, 인간은 글과 사유의 도움 없인 서기 힘들다는 의미여서다.

철학하기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명사형 철학. 연대순으로 철학을 공부한다. 동사형 철학. 현재 나의 삶을 철학이 제시하는 사유로 살핀다. 제목에 ‘나’가 들어 있는 이 책은 동사형 철학 책이다. 사마천-괴테(여행), 디드로-이규경(앎), 브루노-최제우(꿈), 홍수전-로자 룩셈부르크(변혁), 스피노자-정약용(유배), 성호 이익-레비나스(공감), 페트라르카-주희(읽고 쓰기). 책은 어떤 역경을 거쳐 성공했는지 대신 이들이 처했던 문제, 만난 전환, 내린 결단을 보여준다. 성공 대신 성장을 보여준다.

동양철학과 동서양 비교철학 글을 ‘동사적’으로 써온 작가의 특기는 철학 기초가 약한 독자에게도 기쁨이다. 먼저 글이 정확하다. 그다음, 쉽다. 책엔 고전적 삶의 일곱 유형이 동서양 인물 간 비교와 대칭(시메트리)으로 나란하다. 공통성을 띤 시메트리를 동서양의 점이지대로 가꾸는 작가의 재능은 독서의 기쁨이다. 한무제 눈 밖에 난 사마천은 죽음 대신 궁형(거세형)을 택한다. 살아남아,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새 역사서를 쓰는 일은 공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사마천은 여생을 여행에 바쳤고, 를 썼다. 연도에 따라 기록하는 편년체가 아닌 인물과 사건 중심인 기전체란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에 여행은 큰 영향을 줬다. 괴테는 여행광이었다. 복종은 죄가 되고 도전은 선이 되는 가치 전복을 창출한 근대적 인간의 전형, ‘영원한 탐구자’로 불리는 파우스트는 괴테 스스로가 ‘영원한 여행가’였기에 탄생했다고 지은이는 본다.

유대인이던 스피노자는 신은 자연에 깃들어 있다는 주장으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해 사회적 유배에 처했다. 서양 사상의 ‘초기설정’ 모드라 할 플라톤 철학에 처음 이의를 단 스피노자의 파격이 근대철학의 문을 열었다. 정약용은 약 20년간 유배됐다. 그동안 정약용은 유학을 집대성할 뿐 아니라 중국, 서양 학문까지 수용한 조선 최초, 최고의 코즈모폴리턴이 된다. 스피노자와 정약용에게 유배는 ‘나의 세계’에 충실한 여행이 된 셈이다.

이토록 고전은 삶을 심화한다. 기초를 넘어서게 한다. 클래식과 베이식은 다르다.

석진희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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