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잔, 마음은 시작부터 무너졌다. 그들은 본능이었다. 판단하기 전, 등장부터 멋졌다. 빅뱅 데뷔 10주년 콘서트 ‘0.to.10’. 격렬한 사운드를 뚫고 무대에 오르는 다섯 멤버의 실루엣은 그 형상만으로도 ‘스웨그’(swag)가 넘쳤다. 단일 그룹 역사상 가장 많은 유료 관객을 운집시킨 저력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그 한 신(scene)이면 충분했다. ‘칼군무’에 갇히지 않는 허세와 건들거림, 잘 짜여 있으나 그것과 상관없이 완벽하게 놀아내고 있는 호흡. 충분했다.
아이돌 너머의 아이돌, 아이돌의 문법에서 탈주한 아이돌은 6만5천 명의 VIP(빅뱅 팬클럽 이름)를 향해 “잘 지내셨나요?”라고 물었다. 월드투어로 바쁜 ‘국제’ 가수는 이제 오히려 생경해진 국내 무대를 향해 능숙한 농담을 던지며 쇼를 시작했다.
대체 불가능한 팬덤‘스펙터클’은 단순히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다.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완성된다. 빅뱅의 스펙터클은 무대 바깥에서, 훨씬 전엔 티케팅에서 이미 만연했다. 애초 6만 석으로 설계된 콘서트는 팬들의 요청으로 이른바 ‘시야방해석’ 5천 석이 추가되는 해프닝을 겪으며 6만5천 석까지 늘어났다. 지정석 가격이 11만원, 테이블석 가격이 17만원이었으니 최소 80억~90억원에 달하는 돈이 시간을 기다려, 일사불란하게 그 공연으로 빨려 들어간 셈이다.
YG엔터테인먼트 쪽은 콘서트 시작 며칠 전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대에 “빅뱅 콘서트 소음으로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콘서트 당일 지하철 6호선은 그야말로 국제화의 현장이었고, 월드컵경기장역에는 집회 관리에 맞먹는 제복들이 촘촘히 배치됐다. 콘서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한 인터넷 매체는 ‘열광의 상암벌은 지금 뱅뱅뱅’이란 제목의 기사를 쏘아올렸다.
시작은 미약했다. 2006년 7월, 대중문화의 리듬이 아직은 지상파 방송 바깥의 채널들과 잘 조응하지 못할 때 케이블 방송에서 작은 프로그램이 하나 시작됐다. 오직 ‘데뷔’만을 갈구하는 소년들의 일상을 통째로 관람하는 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였다. 프로그램 이름은 . 굳이 10년 전의 미약한 이야기를 꺼낸 건,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프로그램이 정말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은 이후 모든 아이돌 그룹의 데뷔에 영향을 미친 ‘사건적 사건’이다. 은 기획사 시스템 속에 길러진 누군가들이, 방송을 기반으로 어떻게 스타로 ‘생산’될 수 있는지, 그 출발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재규정한 이정표다. 1992년 서태지의 등장이 ‘스타덤’ 창출의 문법을 바꿨다면, 2006년 빅뱅의 등장은 ‘팬덤’을 조직하는 방법을 바꿨다.
인생의 갈구가 오직 ‘데뷔’뿐이던 그 소년들이 보낸 지난 10년의 시간은 진심으로 대단했다. 에서 양현석에게 “집에 갈래?”란 말을 듣기도 했던 권지용은 ‘GD’란 이름의 대한민국 ‘힙’함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2006년 빅뱅의 데뷔 무대를 본 양현석은 싸이에게 “쟤네가 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다던데, 그 예언은 GD가 일으킨 감각의 반란 속에 그대로 현실이 됐다.
배반적 요구를 배반한 아이돌GD의 지난 10년은 흡사 ‘마이크를 든 무사’와도 같았다. 어떤 소설가가 ‘한국 문단에 내려진 벼락같은 축복’이었다면, 그 역시 한국 대중음악에 등장한 ‘벼락같은 축복’이었다. 콘서트에서 GD의 노래를 대신 부른 승리의 말대로 “히트곡이 너무 많아 콘서트 레퍼토리를 짜기 힘들” 정도의 가수가 됐고, 그의 영향력 안에서 한국 가요계의 어떤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위상의 아티스트로 군림하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빅뱅의 다섯 멤버 모두가, 각각의 고유한 정체성과 자존감을 말해도 좋은 존재들로 성장했다. 태양의 보컬은 이미 당대의 대체 불가능한 고유함이고, T.O.P의 스타일은 동시대 남성 모두의 꿈이다.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청국장, 누룽지’에 비견하는 대성의 넉살은 언제든 ‘스타디움’을 열광으로 이끄는 힘을 갖고 있다. 팀에 최종적으로 합류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승리 역시 “그 합류가 가장 잘한 일이었다”는 멤버들의 평가 속에 독자적으로 해외 활동이 가능한 가수로 성장했다. 멤버 모두가 이토록 고르게 입지를 확보하고 그 입지 속에서 자유롭게 경연할 수 있는 아이돌은 전에도 지금도 빅뱅이 유일하다.
이 희귀한 광경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이 존재하는 상황을 놓고 판단해보면 해독 불가능한 좌표이기도 하다. 아이돌은 속물적 상업 의도로 기획된 자본의 상품으로 등장하고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윤리와 규율에서 모범적 존재로 ‘유지’돼야 한다. 응시 가능한 전위의 대상이어야 하면서 동시에 보편타당한 도덕적 시민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이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허덕인다. 배반적 요구를 모두 감당할 수 없고, 언제든 차갑게 식어버리는 대중과 싸울 수도 없으니 언제나 패배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GD를 위시로 한 빅뱅은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도 거의 유일하게 비껴서 있는 아이돌이다.
과잉 해석이 아니다. 빅뱅의 다섯 멤버는 모두 다른 아이돌이었다면 파국적이었을 스캔들에 수차례 휩싸였다. 그럼에도 10년을 고유하게, 오히려 확장적인 존재로 살아남았다. 이에 대해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빅뱅이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정신적 고통, 트라우마 같은 것을 음악적 열정으로 반전되는 판을 만들어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러 사건들 이후 발표된 (LOSER) 같은 노래에서 그들은 자조적으로 스스로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상처뿐인 머저리 더러운 쓰레기”라고 읊조렸다. 하지만 ‘M.A.D.E’ 순서로 발매된 그 노래들의 완성도와 파급력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지배력으로 2015년을 완성했다. 아이돌은 응당 그래야 한단 세상의 질문을 빅뱅은 ‘힙합, 일렉트로닉, 팝, 하드코어 장르를 자신들의 감각만으로 혼성 교배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능력’으로 돌파해왔다.
어떤 세대의 완벽한 ‘배후’‘우리가 더 행복하게 해줄게’. 빅뱅 팬들이 1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슬로건이다. 콘서트가 끝나갈 무렵 빅뱅의 다섯 멤버가 넓은 월드컵경기장을 뛰어다니며 그 슬로건을 팬들에게 돌려줬다. 울컥했다. 때때로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관대하게 만든다. 누가 스타이고 누가 팬인가를 떠나서 시간의 누적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경험과 감각만으로 어떤 환상의 관계도 ‘우정’으로 인식될 수 있다. 어느 순간 오직 그/녀만이 날 외롭지 않게 해준 것 같은 ‘착각’ 같은 착각 아닌 환영이 감각을 자극할 때, 그 시간만큼은 흥건히 행복해진다. 그것은 일종의 ‘연애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성보다는 환상성에 의존하고, 논리보단 즉흥적 감정에 의지하는.
H.O.T.로부터 시작된 아이돌의 서사가 20년이 넘었다. 구축된 아이돌 서사의 두터움에 비해 아이돌 문제는 지나칠 정도로 특정 세대의 취향으로, 산업적 관점에서,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연속으로만 이해돼왔던 건 아닐까. 시간의 누적 속에 누군가는 더 이상 트렌드의 ‘징후’가 아닌 어떤 세대들의 완벽한 ‘배후’가 됐다. 소년에서 이제 서른의 아저씨가 되어가는 빅뱅의 서사는 곧 ‘군대’로 잠시 중단될 것이다. 당대의 누가 빅뱅의 스웨그를 대체할 수 있을까. 긴 순간의 절정이 지나고, 또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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