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에 가면 꼭 그 집의 안부를 묻곤 했다. 바닷가 근처 언덕에 졸졸이 서 있던 낮은 층의 아파트. 날 때부터 6살 때까지 살았던 그 동네의 기억은, 대부분 사진으로 되새김질해야 가물가물 떠오르는 정도다. 하지만 수영복 위에 티셔츠 하나 달랑 걸치고 바다로 달려갔던 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한밤중에 방파제에 올라 엄마랑 이웃집 아줌마랑 낚시로 작은 게를 잡아 함지박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을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마지막 거처그 시절 사진첩을 들여다보노라면, 엄마는 어떤 아줌마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여자가 온 동네 아줌마 돈 다 빌려서 안 갚고 사라졌다 아이가!”라고 말하며 분해하곤 했다.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기억이 고여 있는 곳. 웃고 울었던 시간이 교차하며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 그곳이 사라져 없어지면 평화로웠던 어린 날의 일부도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공간은 사람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한가한 추억은 자꾸만 몸집을 키워 오늘, 무너지는 도시에 가닿는다.
할머니가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에 드러누웠다. 서울 서대문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의 주인장 이길자(63) 할머니.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17일, 옥바라지 골목에 강제 철거가 단행된 날이다. 그날 오후 서울의 기온은 27℃였다고 나는 어느 글에 썼다. 그때도 등에 내리꽂히는 햇살이 너무 따갑다고 생각했는데, 석 달여가 지나고 기온은 사람 체온을 육박했다. 끈적한 더위가 집요한 자본 권력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던 8월22일, 철거 용역이 다시 들이닥쳤다.
이길자 할머니는 30년 넘게 여관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먹여살렸다. 여기저기 터를 옮기다 옥바라지 골목에 자리잡고는 그곳이 일생 마지막 여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번듯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근처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품을 그런 공간도 도시의 한켠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철거가 재개되던 날, 포클레인이 외딴섬처럼 서 있는 구본장여관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할머니는 자기 허리 한켠이 베어나가는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일터와 삶터가 밑도 끝도 없이 무너졌다. 앞으로 어떻게,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할머니는 너무 무력해져 그만 맨몸으로 차로에 드러누워버렸다.
할머니가 춤을 췄다. 8월25일 밤 9시, 서울 마포구 아현동, 거기에도 포클레인에 삶의 터전이 쓸려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아현포차’ 할머니들. 자본의 횡포에 도시가 날카롭게 베이는 것이 아픈 청년들이 그곳에 모였다. 노래하고 춤추며 할머니들을 응원했다. 청년 연대자들 앞에서는 좀체 울지 않는 할머니들은 대신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야박한 인심, 절박한 3만원할머니들은 30년 넘는 세월 아현동 일대에서 포장마차를 해왔다. 하나둘 모여 20개 남짓, 요즘 도시에서 보기 힘든 포장마차촌을 이뤘다.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민원이 들어왔다. 포장마차를 ‘치워달라’는 것이 새 주민들의 목소리였다. 할머니들은 밤새 불을 밝히고 서서 하루에 3만원이나마 벌었다. 언젠가 이 고된 일을 그만둬야지, 했던 할머니들은 말없이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하루치 벌이가 없으면 당장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할머니들은 도무지 갈 곳이 없다. 세 사람이 남았다. 기습 철거로 단골들 연락처 빼곡하게 쓰인 노트 한 권 못 챙겨 나왔다. 믿을 건 “이렇게 찾아와주는 청년들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 사는 곳이므로 도시 또한 생로병사를 겪으며 무너지고 쌓이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의 도시 개발이 사람 사는 곳에 숨을 불어넣는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가 노래하는 청년 뒤에서 춤을 추며 추임새를 넣었다. “살리고~ 살리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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