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나 같은 대하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때로 등장인물들이 부러워진다. ‘나도 대의를 위해 누가 시키는 잡일 같은 것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유력 가문의 부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대가 없이 목숨을 바치려는 기사, ‘한글 창제’라는 대업을 위해 암약하는 궁녀, 그 장엄한 주술과 맹서의 말들. 너나없이 나보다 큰 것을 위해 살았던 시대의 숭고한 사람들.
문제는 그 ‘대의’란 것이다. 언젠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가 ‘너의 내부 말고 외부로 시선을 돌려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의외로 다른 가능성이 열릴지 모른다고. 나보다 큰 것? 맞다. 세상에는 여전히 나보다 큰 것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대의’란 것의 실체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보다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은, 내 안에 불투명한 안개처럼 깔려 있는 알 수 없는 종류의 부채감이었다.
지금은 누구든 깃발 아래 모이는 시대가 아닌 지 오래다. 부채감이라니? 그것은 1980년대 운동권식의 부채감도, 멀리서 누군가 나를 구원하고 있다는 종교적 부채감도 아닌, 이상한 마음이었다. 나는 어떤 그림자에 대해 계속해서 미안해하고 있는 건가. 기껏 누군가 던져주었는데 텅 비도록 내버려둔 삶에 대해?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지구와 아이들에 대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고양이? 아니면 뉴스 속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가난한 이에 대한 것인가. 나는 이 부채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대의’라는 놈이 있다면, 그 실체가 드러나는 자리에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세계는 (나를 포함해) ‘세상 물정에 밝은 멍청이’들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다. 신문사에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세상 모든 최전선의 뉴스들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게 폭격처럼 쏟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기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 뉴스뿐 아니다. 매일 온갖 정보와 최신 의견과 지식의 물결이 파도처럼 손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구글은 인류의 거대한 외장하드, 몸 바깥의 뇌가 되고 있다. 영국 출신의 명상지도자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아는 자는 없고 앎의 흐름만이 있다’고 했는데, 과정으로서 거대한 앎의 흐름이란 것은 이제 ‘구글’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아는 자는 없고, 구글만 있다’랄까.
사람들은 각자 자발적 ‘인간 인터넷’으로 거듭나고 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오가다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시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인터넷 속 사람들은 모든 일에 모두가 앞다퉈 보란 듯이 네모반듯한 의견을 꺼내어놓는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알고 있는가?
의 저자 마이클 린치는 정보에 머물 뿐 이해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식에 대해 ‘구글노잉’(Google-Knowing)이라 지적하고, 인터넷의 인간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해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부족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직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부족의 삶은, 투하되는 뉴스, 가짜 지식, 자신의 것이 아닌 얄팍한 앎으로 가득 차 있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평생 신문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신문사에 다닐 때 전혀 뉴스를 보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했었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뒤 잠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곧 매일 갱신되는 신문의 트랩에 기꺼이 갇히게 됐다. 매일 도착하는 어제 일어난 새로운 일들의 일목요연한 정리, 수많은 신상 의견의 메모판. 따라서 오늘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며 내일 다시 새로운 오늘이 올 거라는 증명서. 어디선가 무슨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았으며 그리하여 내 삶은 역동성을 확보한다. 이 사실이 부채감과 연루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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