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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조던’과 ‘탈조던’ 사이의 ‘킹’

클리블랜드 창단 사상 첫 우승 안긴 대역전의 서사… 르브론 제임스, NBA 파이널의 역사를 다시 쓰다
등록 2016-07-01 16:29 수정 2020-05-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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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보자. 너무나 결정적이었던 2014-2015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 5차전, 경기 내내 ‘추격자’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얼스는 4쿼터 중반 르브론 제임스의 3점슛으로 겨우 경기를 뒤집었다. 원정팀 에이스의 포효에 경기장은 일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스티븐 커리가 놀라운 ‘풀업점퍼’(Pull-up Jumper)*로 재역전 3점슛을 터뜨렸다. 그 파이널의 승부를 사실상 결정지은 슛이었다.

마이클 조던 이후 브라이언트와 커리 사이에서

마지막, 그땐 누가 봐도 그랬다. 더 이상 패배할 자리가 없는 6차전으로 몰린 제임스는, 그러나 연승을 ‘말했다’. 묘하게 제임스의 패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기자들을 향해 아직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말을 던졌다. “나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다.” 분명 맞다. 맞는 말인데, 이상하게 애달팠다. 그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슈퍼스타’가 자신의 존재감을 퍼포먼스가 아닌 말로 입증해내려는 것 같았다. 만약 마이클 조던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존재감은 확실히 아직 ‘영웅’(big man)이라기보다는 ‘명사’(big name) 레벨에 머무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결국 6차전에서 패배했다. 늘 변두리에 머물던 팀, NBA 리그의 대표적 ‘언더도그’(underdog)가 영광을 독차지했다. 스티븐 커리가 새로운 영웅 서사를 만들어내며 ‘골든스테이트 시대’를 확정한 순간, 제임스는 짧은 포옹으로 커리를 예우했다. 그러곤 빠르게 어둡고 긴 복도로 빠져나갔다. 그 처연한 뒷모습을 집요하게 쫓던 카메라 앵글은 모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2015-2016 시즌 동안 사람들은 솔직히 ‘킹’(르브론 제임스의 별명)에게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세계 농구팬들에게 2016년은 두 ‘사건’만으로 충분했다. 우선, 한 시대를 지배했던 불세출의 스코어러(scorer)가 20년 만에 코트에 안녕을 고했다. ‘포스트 마이클 조던’ 논쟁에서 언제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언급되던 이름, 코비 브라이언트(38·LA 레이커스)가 유니폼을 벗었다.

‘2등은 첫 번째 패배자일 뿐’이라고 말하던 불굴의 승부사 브라이언트는 NBA에서 득점에 대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가진 선수다. 조던의 NBA 통산 득점을 넘어선 브라이언트는 명실상부 2000년대의 시작과 끝을 지배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는 어떤 면에선 분명 조던의 ‘기록’을 넘어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던을 극복하진 못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계승자였지만 종종 그 평가가 과장됐다고 폄훼당했고, 그가 리그를 제패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꾸 조던이 그립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1996년 데뷔해 조던의 마지막 시대에 커리어를 시작한 브라이언트는 충성스런 조던 팬들에게 그저 성장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그런 코비 브라이언트의 시대조차 마감됐다는 것은 NBA를 오랫동안,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배하는 ‘마이클처럼 되자’(be like Mike)**의 시간이 완전히 저물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NBA는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신선한 영웅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황금전사’는 그 시작으로 읽혔다. 말하자면 그건 오랜 ‘포스트조던’ 논쟁 끝에 당도한 ‘탈조던’이었다.

스티븐 커리는 완벽하게 부응했다. 올 시즌 커리를 정점으로 한 골든스테이트는 무적의 팀이었다.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세웠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며 리그를 제패했다(최종 성적 73승 9패). 개막 이후 24연승을 달렸고 홈에선 무려 54연승을 기록했다. ‘운동능력(exercise capacity)이 부족해 NBA에서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드래프트 리포트를 받았던 커리는 ‘세상이 틀렸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올 시즌 결정적 순간 커리가 3점슛을 던졌던 자리는 그의 시대 이전에는 아예 슛 지점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던 아주 먼 곳이었다.

‘황제’ 대관식을 막아선 ‘킹’
어떤 이들은 르브론 제임스 이후 농구가 단순해졌다고 비판한다. 밀고 들어가 쉽게 득점하는 제임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선수도 제임스만큼 쉽게 넣을 순 없다. AP 연합뉴스

어떤 이들은 르브론 제임스 이후 농구가 단순해졌다고 비판한다. 밀고 들어가 쉽게 득점하는 제임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선수도 제임스만큼 쉽게 넣을 순 없다. AP 연합뉴스

그래서일까, 조던과 동시대를 살았던 불세출의 NBA 스타들은 여전히 커리의 존재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하는 건 ‘농구가 아니다’라는 혹평까지 있다. 조던의 오랜 라이벌인 찰스 바클리는 “커리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지만, 여전히 최고 선수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더 글로브’(The Glove)란 별명을 가진 역대 최고의 수비수 게리 페이턴 역시 “골든스테이트는 커리가 없어도 강팀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던이 사실상 모든 것에 능한 그리고 결정적 순간엔 언제나 변함없이 강력한 존재였던 데 비해, 커리는 ‘점프슛’이 전부라는 시각이 여전히 있다. NBA에는 “점프슛 팀은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오랜 불문율이 있다. NBA 역사상 최강의 점프슛 팀을 이끄는 커리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 관념과 쟁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런저런 말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였다면 올 시즌 NBA 파이널은 커리가 새로운 시대의 확고한 주인으로 등극하는 자리여야 마땅했다. 역대 최고 승률을 올린 팀이 마지막에 웃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상대는 이미 한 번 이겨본 팀이었다.

커리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는 제임스를 리더로 하는 클리블랜드와 다시 붙었다. 시리즈 중반까진 예상대로였다. 골든스테이트는 4차전까지 1승 3패로 앞서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5차전부터 뭔가 이상해지더니 끝내 뒤엎어졌다.

그 중심에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인 제임스가 있었다. 5차전부터 시작된 제임스의 무한 ‘아이솔레이션’(isolation)에 점프슛 팀 골든스테이트의 스몰라인업은 그야말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농구에서 아이솔레이션은 특출한 선수 한 명이 득점하는 전술이다. 코트를 세로로 잘라 선수 4명이 한쪽으로 몰리면, 한 명의 에이스가 1:1 상황에서 단독으로 공격한다. 클리블랜드에는 아이솔레이션을 하는 선수 2명이 있다. 한 명은 물론 르브론 제임스고, 또 한 명은 카이리 어빙이다.

제임스는 파이널 5차전과 6차전에서 41득점을 기록했고, 7차전에선 27득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역대 NBA 파이널 가운데 첫 4경기에서 1승 3패로 지고 있다가 상황을 7차전까지 끌고 가서 우승한 것은 클리블랜드가 처음이다. 클리블랜드는 주요 스포츠 우승 경력이 없어 ‘패배자들의 도시’라고 불린다. 제임스는 NBA 파이널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다시 쓰며 클리블랜드에 우승을 안겼다.

사실 이 대목에선 반론도 있다. 안 통하던 제임스의 아이솔레이션이 5차전부터 통하기 시작한 것은 골든스테이트의 센터 앤드루 보거트의 부상 아웃이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아이솔레이션은 사실 낡은 전술이다. 1-4 수비라고 불리는 ‘박스원’을 통해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스원은 4명이 지역방어 편대의 수비를 유지하고 하프코트에서부터 상대 에이스를 한 명이 전담 마크하는 수비 시스템이다. 예컨대,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아이솔레이션을 했을 때 게리 페이턴이 그를 전담 마크하며 역대 파이널 최소 득점으로 묶은 적이 있다. 스포츠에서 가정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겠지만, 보거트가 있었다면 최소한 제임스가 그렇게 완벽하게 활약하긴 어려웠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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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능력과 기술 사이

르브론 제임스는 마이클 조던 이후 나이키가 ‘시그니처 슈즈’(Signature Shoes)를 만들어준 ‘보증(endorse) 스타’ 3명(나머지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카이리 어빙) 가운데 한 명이다. 물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제임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초고교급 스타였다.

고교 시절 역사상 최초로 미국 대표팀에 3번이나 뽑혔고, 이때 이미 ‘킹 제임스’(King James)란 별명을 얻었다. 고졸 선수 역대 최다 득점인 25점으로 NBA 무대에 데뷔한 그는 데뷔 시즌 2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해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2시즌을 치르며 11번이나 올스타에 뽑혔다. 정규시즌 MVP를 4번 수상했고, 올 시즌 우승으로 파이널 MVP도 3번이나 받았다. 12년을 뛰며 6번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맥도널드화된 스포츠 스타 생산 시스템의 대표적 수혜자라는 비판과 싸워야 했다. 그건 물론 동시대의 브라이언트가 그랬던 것처럼 조던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승산 없는 게임이었다. 스포츠 스타들은 언제나 앞시대를 살아간 이들보다 실력이 우위라는 것을 입증하는 상품성의 게임을 해야 한다.

농구에서 초실재적(hyperreal) 존재가 된 마이클 조던과 싸우기에 제임스는 여러 단점을 갖고 있다. 제임스는 ‘트리플더블 머신’이란 애칭이 있을 만큼 전 포지션에서 플레이가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지만, 공격 루트가 지나치게 단조롭단 혹평에 시달렸다. 제임스를 대표하는 공격은 엄청난 피지컬을 활용한 돌파다. 쉽사리 막을 수 없지만, ‘에어’(Air)와 ‘비행’(Flight)으로 상징되는 조던의 화려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제임스는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이지만 ‘운동기능’(exercise function)에 있어선 늘 의문이 따랐다. 강력한 신체를 통한 인사이드 돌파로 팀을 이끌어야 했던 입장에선, 숙명 같은 문제였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홀버스텀의 묘사를 빌리자면, 조던의 플레이는 ‘눈부시고 발레를 보는 듯하며 말할 수 없이 격정적’이었던 데 반해 브라이언트나 제임스의 플레이는 그 요소들 가운데 확실히 뭔가 빠져 있다고 느껴졌다.

다시 돌아온 ‘원맨’
르브론 제임스 인스타그램

르브론 제임스 인스타그램

르브론 제임스와 스티브 커리. 당대 NBA의 두 지배자는 확실히 다르다. 제임스가 나이키에 의해 발굴돼 글로벌 마케팅의 세례를 받은 제국의 ‘슈퍼맨’이라면, 커리는 신흥 스포츠웨어 회사 언더아머(Underarmour)에 발탁된 개척자 이미지의 ‘배트맨’이다. 제임스가 압도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전형적으로 훌륭한 플레이를 한다면, 커리는 운동능력의 열세를 극복하는 슈팅 능력을 가졌다. 제임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 전체를 대표해온 비범한 선수라면, 커리는 NBA를 갈 수나 있을까 고민하던 평범한 선수였다.

4살 터울이지만, 제임스가 이룰 수 있는 업적을 거의 다 이뤄냈다면, 커리는 이제 막 업적을 쌓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포스트조던’이 되고자 투쟁해왔지만, 커리는 비로소 조던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진출하고 있다. 그 둘이 구축한 스포츠 스타로서의 명사성(celebrityhood)은 완전히 상반되는 서사를 갖고 있고, 의미를 교섭한 영토 역시 완전히 다르다. 순리대로였다면 올 시즌 교차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이들의 위계는, 그러나 제임스의 믿을 수 없는 활약으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2010년 제임스가 클리블랜드를 떠나 마이애미행을 택했을 때, 클리블랜드 팬들은 그의 백넘버 23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찢고 불태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끝내 시카고와 LA에서 커리어를 마감한 조던이나 코비와 달리,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4년 만에 다시 돌아와 그는 고향팀에 영원히 각인될 승리를 안겼다. 6년 전 ‘원맨팀’을 이끄는 일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우승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떠났던 그는 다시 돌아와 ‘원맨팀’의 파괴력이 무엇인지 또 한 번 입증해내는 역설의 주인공이 됐다.

새로운 시대와 벌여야 하는 싸움

당대 최고의 ‘원맨’이 누구인지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제임스는 선수로서의 타고난 재능, 노력, 행운, 자질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여기에 이제 우승을 좇아 고향팀을 떠났던 배신자가 아니라 다시 돌아와 우승컵을 안긴, 명예 재건의 감동 스토리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제임스의 나이도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하고 있다. 운동능력도 정점을 지나 조금씩, 어쩌면 쇠락에 접어들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의 경기력은 이제부터 시험대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대단한 선수를 넘어 위대한 선수가 되려 한다면 제임스는 자신을 어떻게 변모해가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한 차례 은퇴했다가 복귀한 조던조차 흐르는 세월을 인정하여 플레이의 패턴을 바꿨고, 그 원숙함으로 팀의 3연패를 이뤄냈다. 반면 코비 브라이언트는 커리어 막판, 여전히 슛을 주체하지 못해 ‘난사’라는 빈정거림을 견뎌야 했다.

더 빠르고 강력해질 ‘황금전사’들의 공세에도 제임스가 한 번 더 ‘세계 최고 선수’로 군림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조던의 슛들이 얻은 지위처럼 그의 별명 ‘킹’ 역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big name)를 넘어 불멸의 영웅(big man)을 뜻하는 대명사가 될 것이다.




용어 설명


*풀업점퍼: 공을 받아 드리블하고 다시 쏘는 슛. 반대 개념으로 패스를 받아 스텝만 밟고 바로 슛을 하는 ‘캐치앤드슛’이 있다.
**‘마이클처럼 되자’(be like Mike)는 1991년 마이클 조던과 광고 계약을 한 게토레이의 광고 슬로건이다. 우리는 흔히 ‘조던=나이키’를 떠올리지만, 조던은 게토레이의 운명을 바꿔놓은 존재이기도 하다. 조던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이후 게토레이는 1998년 세계 스포츠 음료 시장을 80%까지 점유했다.


* 참고 문헌
, 데이비드 엔드루스·스티븐 잭슨 지음, 이소출판사 펴냄
‘돌아온 킹, 새로운 야망을 꿈꾸다’, , 손대범
‘40년 만에 황금을 캔 스테판 커리’, , 박세운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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