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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제주에 살다

바다, 하늘, 바람, 풍경, 낮술 그리고 음악… 국내 최고 모던록 밴드 리더 이기용과 친구들의 제주 정착기
등록 2016-06-24 16:27 수정 2020-05-03 04:28
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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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게 쪼개진 수많은 날 알게 되었어/ 푸른 바다 높은 탑/ 젖은 몸의 널 기다리는 기다리는/ 깊은 잠에 빠진 너/ 깨어나는 그때 달아나라” </font>
<font color="#000000">-밴드 ‘허클베리핀’의 디지털 싱글 중에서 </font>

한 걸음만 뛰면 제주 김녕 바다가 닿는 곳. 위로 하늘이 내려앉고, 아래로 짙은 바다 안개가 올라왔다. 키가 낮아진 하늘이 수평선과 맞닿자,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고깃배는 바다를 넘어 하늘로 올라갔다. 제주 김녕마을은 어른들이 “기후가 척박해 농사짓기 어려운데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딸을 시집보내기 꺼렸다”는 곳이다. 그래도 이기용은 이곳을 “풍경과 바람, 향기, 하늘, 길이 모두 도시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하늘이 70을 차지하고, 바다와 땅이 30인 풍경이 일상인 환상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바람·하늘을 찾아 서울을 떠나다 </font></font>

꼭 2년 전, 이기용은 제주 김녕에 정착했다. 그는 모던록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다. 허클베리핀은 국내 최고 수준의 밴드로 꼽힌다. 1집 과 3집 이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포함됐고, 그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 이듬해 최우수 모던록 앨범부문상을 받았다. 이기용을 따라 그의 음악 동료들이 제주로 내려왔다. 지난 6월8일 이기용, 그의 동료 정나리(키보드)와 마주한 김녕 바닷가의 횟집에 ‘한라산 소주’와 자리물회 안주가 곁들여졌다. 이야기 보따리가 열렸다.

서울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이기용은 “서울에 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감정이 극한까지 치달았고, 그게 폭발해서 나를 파괴하고, 내 안의 감정이 스스로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고 했다. 당시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던 그의 작업공간 ‘샤’가 임대료 압박 등의 이유로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클베리핀 신곡 발표 준비와 62주 연속 공연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걸 ‘62주 자학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2014년 6월 결국 제주행을 택했다. 이기용은 “앞서 제주에 왔다가 완전히 매료돼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뒷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20년 뒤 헤어질 걱정을 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던 날은 특별했다. “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새벽부터 차를 제주행 배에 싣기 위해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였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을 들으며 차 안에서 느꼈던 공기와 냄새가 지금도 기억날 만큼 선명하고 특별한 하루였다.”

잠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버리지 않으면 떠날 수 없었다. 서울 작업실 임대료를 뺐다. 그 돈으로 김녕에 3층짜리 펜션을 임대했다. 근거지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비용 마련을 위해서였다. 차 한 대 안에 짐을 모두 정리했다. 굳이 ‘서울의 삶’을 실어올 까닭도 없었다. 작업실 창고에 쌓아뒀던 수백만원어치 되는 ‘북클립’(음반 CD용 인쇄물)도 버렸다. 오히려 중요하게 챙긴 것은 몇 푼 안 되는 ‘냄비’ 같은 것들이었다. ‘북클립 대신 택한 냄비’가 제주에서 삶의 방식을 예고했다.

“‘CD의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으로 북클립을 재활용쓰레기통에 넣고 생존을 위해 냄비를 챙긴 것이다. (웃음) 막상 내가 가진 게 악기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제주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 덕분에 삶과 음악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기용은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컨테이너에서 1년 넘게 살았다. 비가 오면 컨테이너 안으로 빗물이 주르륵 흐르고, 바람이 거세게 불면 컨테이너와 함께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허름하고 불안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통장 잔고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기용의 뒤를 영화감독 최창환이 따라왔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아보자”는 이기용의 꾐에 빠졌다. 단편영화 (2008) 등을 제작했던 그는 허클베리핀 1집 제작 때 뮤직비디오를 찍어주는 등 이기용과 19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최 감독은 “난 가진 게 (영화 편집이 가능한) 노트북밖에 없어서 제주로 내려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 여럿이 살려면 이런 ‘멀티플레이어’가 한 명쯤 필요한 법이다. 그는 ‘스왈로우’에서 음향과 조명 엔지니어 구실을 해주고 있다. 스왈로우가 운영하는 식당 ‘샤키친’을 ‘막설계’로 짓고 셰프 구실까지 한다. 최 감독은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한 달 정도 고민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창작을 계속하기 위해 삶을 바꾸고 싶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첼로 선율에서 바다를 느끼다 </font></font>
밴드 ‘스왈로우’ 멤버 정나리(키보드), 이소영(보컬), 이기용(기타), 하이람 피스키텔(첼 ·왼쪽 터)이 6월8일 제주 김녕 ‘샤스페이스’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밴드 ‘스왈로우’ 멤버 정나리(키보드), 이소영(보컬), 이기용(기타), 하이람 피스키텔(첼 ·왼쪽 터)이 6월8일 제주 김녕 ‘샤스페이스’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영호 제공

키보드 정나리에 이어 허클베리핀에서 14년간 이기용과 호흡을 맞췄던 보컬 이소영, 외국인 친구 하이람 피스키텔(첼로)이 제주에 합류했다. 이들은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였던 ‘스왈로우’ 이름을 달고 팀을 재편성했다.

올해 초 멤버가 완성되자, 당장 공연장이 필요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펜션 ‘샤스테이’( <font color="#C21A1A">facebook.com/제주-김녕-샤-Jeju-Sha-756538104404075</font> ) 지하에 공연장 ‘샤스페이스’를 만들었다. 허름한 지하 공간을 치우고 닦고 칠해서 그럴듯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첫 공연이 지난 3월19일 열렸다. 제주를 찾았던 허클베리핀 팬들과 동네 주민들이 아담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기용에게도 특별한 시작이었다. “이전까지는 ‘혼자서 진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음악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첫 공연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제주에서 삶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옆집 사는 만화가가 “낚시를 했다”며 고기를 주고 간다든가, 바닷가 공연 때 횟집 아저씨가 전기를 끌어와주는 식이다. 공연 뒤, 막걸리를 먹으러 가면 “공연 잘 봤다”며 회를 한 접시 꺼내주는 일도 있었다. 이기용은 “40년 넘게 살았던 서울은 늘 ‘노이즈’(잡음)가 있는 공간이었다. 음악에서도 격한 감정이 드러났다. 드럼 소리가 지나치게 셌고, 기타의 감성도 신경질적이었다. 제주는 다르다. 여기서 만든 노래에는 노이즈가 없다. 공간과 대기를 향해 멀리 퍼져나가는 소리들만 있다”고 했다.

쫓기듯 살던 서울에서의 일상도 여기서 달라졌다. 늦은 아침 ‘샤키친’ 문을 열고, 점심 장사가 끝나면 펜션 ‘샤스테이’ 정리를 시작한다. 오후에는 일상적으로 스왈로우 공연 연습을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 ‘샤스페이스’에서 무료 공연을 한다. 제주 여행을 떠나온 이들이라면, 김녕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모던록 밴드 공연을 선물처럼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날도 해 질 무렵이 되자 샤스테이의 지하 공연장 ‘샤스페이스’에서 스왈로우의 공연이 펼쳐졌다. 낮게 깔린 첼로 선율 위로 이소영의 보컬이 얹어지면서 바다 냄새가 났다.

마음이 움직이면, 때로 ‘버스킹’(길거리 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이기용은 “주말에 공연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쉬어줘야 한다. (웃음) 서울은 저녁 8시부터 삶이 시작되지만, 여기선 그 시간이면 일상이 끝난다. 또 도시에서 삶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연이 많은데, 여기는 관계를 정리하고 끊은 뒤 다시 회복하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수요일 공연 외에 이들은 제주에서 ‘노마드 2만km’ 꼬리표를 달고 음악 유랑을 하고 있다. 제주 공연 때 이동한 거리를 측정해 2만km가 될 때까지 음악 유랑은 계속된다. 때로는 누군가 찾지 않을 것 같은 오름, 숲 속에서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운이 좋은 제주 여행자라면, 어디선가 스왈로우의 유랑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이기용은 “애초에 제목을 ‘2만km’씩이나 잡아놔서 우리가 제 발목을 잡았다. 섬에서 한번 이동으로 100km 이상 가기 어렵다. 최소 200번 공연을 해야 한다”며 웃었다. 관객이 있든 없든, 오름이나 숲 속 같은 곳에서 ‘우리끼리 즐거운 공연’도 꿈꾸고 있다. 정나리는 “서울은 관객이 공연을 보러 가지만, 여기는 우리 밴드가 만나러 간다는 점이 제일 큰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장사는 ‘맹탕’이지만, 음악 유랑은 끝나지 않는다</font></font>

고비도 있었다. 이기용은 “멤버들이 합류하기 전, 혼자 있던 시간이 극도로 힘든 때였다. 나름으로는 정신의 극한대까지 가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지속 가능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는 문제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장사에 ‘맹탕’인 뮤지션들이 펜션이나 식당 영업에 대한 요령도 익혀야 한다.

그래도 제주에 있는 동안 노래가 많이 쌓였다. 허클베리핀과 스왈로우 이름을 달고 앨범을 각각 하나씩 낼 준비가 됐다.

“제주에서 사는 게 언제, 어떻게 끝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어요. 남들보다 더 돌고 돌아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왜 그런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삶은 조금씩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아울러 예술가로서 이런 경험을 편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의 삶이 바빠선 안 됩니다. 멍하니 있다가 음악 만들고 공연하는 삶이 당분간은 즐겁게 지속될 겁니다!”

김녕(제주)=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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