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訥). 말(言)이 안(內)으로 든다. 해야 맛이라는 말이 마음에서 맴돈다. 지승호(50)가 그러하다. 그런데 그는 전문 인터뷰어다. 인터뷰를 직업으로 개척한 사람이다. “저를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성격으로 인터뷰를 하지?’ 하고 의아해합니다.” 의아하므로 거기엔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 “지적 파파라치” “상식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데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15년째 그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말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은 줄잡아 300명을 훌쩍 넘는다. 지금까지 펴낸 인터뷰집은 45권. 한 해 평균 3권씩 냈고, 2008년에는 6권을 세상에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전문 인터뷰어로 입에 풀칠해가며 살아가기란, 삼성에 노조가 생기길 기다리며 철야기도를 하는 것보다 고된 일”(허지웅)이라고 할 만큼, 뒷배가 되어줄 매체에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단행본으로 자신의 업을 잇고 수입을 기대하는 인터뷰어란, 고개 들어 짐작하건대 얼마나 척박한 일이런가. 하지만 지승호는 15년을 버텼다. 내처 그의 꿈은 100권을 채우는 것이다.
그런 그가 “중간 결산”의 마음을 담아 새 책을 출간했다. (오픈하우스 펴냄). 그의 46권째 책이고, 인터뷰집이 아닌 인터뷰에 관한 첫 책이다. 15년 악전고투로 얻은 인터뷰 철학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인터뷰 철학 정리한 책 펴내4·13 총선, 정치적 해갈이 온 듯 들뜬 거리를 뒤로하고 그를 만났다. 한겨레신문사가 운영하는 ‘미디어카페 후’에 그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승호의 말. 그는 ‘여유’로 말한다. 여유란 무엇인가. 다산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의 여유를 가리킨다. 다산은 그의 에서 당호 여유당을 에서 가져왔음을 밝혔다. “여(與)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여! 사방이 두려워하는 듯하거라. (…)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들어와 뼈를 깎는 듯할 테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박석무·정해렴 번역)
그 자신 이렇게도 썼다. “불특정 다수와의 대화는 저에게 늘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얘기 좀 하자”는 말로 시작된 아버지의 불호령은 말수 적은 그를 더욱 옭아맸다. 내성적인데다 눌변인 약점을 그는 치밀한 준비와 섬세한 배려로 극복해왔다. 인터뷰할 사람을 정한 뒤에는 그에 대한 모든 기록을 조사하고 300개 넘는 문항을 준비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는 그의 전매특허다. “인터뷰어는 원하는 답을 얻어내고 듣는 사람이지, 대화에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터뷰는 사람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지승호의 글. 그는 말했다. “저를 아끼는 선배가 출판사 얘기를 전해준 적이 있어요. ‘걔는 문장이 안 돼서 책을 못 내준다더라.’ 굉장히 충격이 컸죠. 배우한테 ‘그런 얼굴로 연기도 못하면서 배우 하려고 해?’라고 하면 엄청난 좌절이죠. 그날 펑펑 울고 나서 그다음 날 글을 썼어요. ‘문장이 안 되면 어때, 알아보기만 하면 되지.’”
라면 같은 글이 횡행하는 시대, 그는 냉면 같은 글을 쓴다. ‘인터뷰=기록’이라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인터뷰의 본질은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비록 투박해 보일지라도.”
그는 첫 인터뷰집 (인물과사상사·2002)에서 이렇게 적기도 했다. “‘한 톨의 진실도 포함하지 않은 사상은 없다.’ ‘대화란 편견의 확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전업 인터뷰어로서 그는 여러 편견에 시달렸다. 비단 글솜씨뿐 아니다. 유희가 아닌 노동인 글쓰기 자체에 대한 폄하도 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또는 지금도 받고 있는 폄훼에 대해 여러 차례 아쉬움을 말했다.
“가장 인터뷰를 많이 한 노동자, 그런 부분은 자부심이 있어요. 아주 스타플레이어는 아닐지 몰라도 팀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 꾸준히 뛴 선수가 나중에 평가를 받지 않습니까. 녹음기·속기사 이런 말을 듣기도 해요. 녹취만 15년 동안 했다고 해도 괜찮은 노동자인 셈인데, ‘쟤는 인터뷰이에 기대서 날로 먹는다’ 이런 식입니다. 이걸 사람들이 안 하는 이유는 정신노동을 빼고라도,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육체적인 부분도 만만치 않아요. 누가 영감을 줘서 갑자기 나온 게 아니고, 취재 다니고 자료 준비해야 쓸 수 있는 건데요. 기본적으로 정신의 힘, 텍스트의 힘, 이걸 무시하고 어떻게 (반대 진영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건지….”
그의 글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별과 같다. 그가 쓴 글은 그가 만난 사람의 빛을 받아 빛나는 별이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의 글은 밝다. 한두 시간도 아닌 10시간 만난 사람의 육성을 고되게 고스란히 글로 옮기는 그에게, 자신의 문체란 양복 입고 쓴 갓 신세일지도 모른다.
그라고 왜 욕망이 없겠는가. 다만 그는 욕망을 감추고 상대를 빛나게 할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름을 알렸던 인터뷰어들의 경우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 모차르트라면, 나는 계속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살리에리가 되고 싶다. 비록 그것이 수준이 좀 떨어지면 어떤가? 예술은 못 돼도, 기록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2007)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힘작가의 글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을 펴는 비평가의 숙명처럼, 인터뷰어 지승호의 글은 수많은 인용의 모음이다. 이번 책도 그러하다. 인용한 단행본만 68권이다. 오직 인용만으로 이뤄진 책을 희망했던 발터 베냐민처럼 그는 타인의 지혜를 가져와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드러낸다. 정직하되 욕심꾸러기의 글쓰기다. 그는 말했다.
“‘시간은 금이다’, 조금만 바꾸면 자기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그대로 쓰는 게 훨씬 더 정직한 표현 아닐까 생각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 없다고 하잖아요. 어떤 시각으로 깊이, 다르게 접근할 거냐가 중요하죠. 인용이 많은 걸 남의 것 짜깁기한다고 하지만, 난 그게 더 정직한 태도 아닐까 생각해요.”
지승호의 마음. 그는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에 집요하다. 그는 작가 김탁환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내 것, 내 삶, 내 가족, 내 나라… 끝도 없이 펼쳐지지요. 인터뷰는 이 유아론과의 싸움입니다. 사이(inter)에서 본다(view)는 것은 내 것만이 아닌 내 것이 아닌 것과의 관계를 따지기 때문입니다.” 유아론의 부단한 유혹을 부단히 뿌리치는 일,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 그가 겸손과 정직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말했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진짜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 갖고 있는지 잘 모르지 않습니까. 배우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다가 황혼이혼 당하면서 알게 되고요. 그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을 하되 내가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지승호의 사람. 그는 두 사람을 꼽았다. 홍세화 그리고 고 신해철. 홍세화의 인격에 그는 탄복했다. “워낙 점잖으시고 부드러우시지 않습니까. 글이나 활동과 달리 굉장히 부드러운 분이죠. 막상 사회적 활동을 할 때는 매섭고 적극적이고요. 좋아하고 닮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고 신해철(1968~2014)은 2000년 그를 인터뷰의 세계로 이끈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조곤조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남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자신의 말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대화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신해철은 그와 인터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지승호씨는 신뢰로 열려 있는 인터뷰어죠. ‘저 양반이 사생활을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했고, ‘저 인터뷰어가 나에게 와서 쥐어짜가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긴장이 되니까 싫은 것이고. 대화잖아요, 인터뷰는.”
“상대방 설득하는 건 듣는 힘”“약간 과장이 섞인 말일지 몰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가장 빨리,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인터뷰입니다.”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의사들을 만난 기록(), 작가 정유정 인터뷰집 등을 조만간 펴낼 참이다. 르포에 가까운 책을 내고 싶은 바람도 있다.
“반청지위총(反聽之謂聰) 내시지위명(內視之謂明).” 듣되 거듭 되새기는 것을 귀가 밝다(총) 하고, 보되 마음으로 보는 것을 눈이 밝다(명) 한다. 사마천의 ‘열전’의 한 대목으로, 여기서 ‘총명’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말하고, 말하기 위해 만난다. 서로 말하고 서로 듣는다. 짜장 그래서 우리는 만난다. 그런데 정작 만남의 지혜를 우리는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지승호는 질문과 대답, 말하기와 듣기, 만남과 헤어짐, 결국 사람을 향한 앎과 사랑에 15년째 오체투지하고 있다. 말하기보다 듣기의 지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지승호는 사마천이 말한바, 총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가난한 그의 무기는 단 하나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상대방을 설득하는 마지막 한 방은 듣는 힘에서 나옵니다.”
난독과 난청의 시절, 지승호의 ‘인터뷰’는 질문과 고민의 힘이 길어올린 만남과 대화의 철학이다.
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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