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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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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여 식사하시라

식성이 너무 다른 두 사람, 육류파와 해산물파를 위해 매주 다른 밥상을 차리는데…
등록 2015-11-28 17:52 수정 2020-05-03 04:28
식당에서 일하는 세 남자, (왼쪽 위부터) 아저씨, 필자, 에그 조. 점심과 저녁 영업 시간 사이, 반찬통을 늘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전호용

식당에서 일하는 세 남자, (왼쪽 위부터) 아저씨, 필자, 에그 조. 점심과 저녁 영업 시간 사이, 반찬통을 늘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전호용

나는 식당에서 두 남자와 함께 일한다. 둘은 1967년생 동갑내기다. 올해로 마흔아홉. 그러니까 두 달 뒤면 50대로 접어드는 ‘늙은이’ 둘을 데리고 식당을 운영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와 장사를 시작했는데 몇 달 하더니 못해먹겠다며 그만두었고 그 뒤 나와 동갑내기 여직원이 들어와 함께 일했지만 그도 몇 달 만에 소리 소문 없이 잠적해버렸다. 그사이 ‘에그 조’라 부르는 고재칠씨가 배달사원으로 입사했고 두어 달 뒤 나의 오랜 친구이자 ‘아저씨’라 부르기도 하는 김필기씨가 주방보조로 입사했다. 에그 조와 아저씨. 두 늙은이의 공통점은 나이와 그에 걸맞은 고집뿐이다.

에그 조.

에그 조는 전남 나주 영산포 출신이다. 전직으로 직업군인, 놀이공원 DJ, 까까장사(제과영업), 택시기사, 족발집 사장 등 인생사가 파란만장하다. 에그 조는 전직만큼이나 말이 많다. “즐라남도 나주” 출신답게 ‘그랑께, 저랑께, 하따, 임병’ 같은 사투리를 붙여가며 쉬지 않고 주절거린다.

에그 조에서 ‘조’는 ‘조 페시’에서 따왔다. 달걀을 너무 좋아해 아침마다 두 알씩 먹는다 해서 ‘에그 고’라 불렀는데 어느 날 끝을 알 수 없이 주절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영화 의 조 페시가 떠올라 ‘에그 조’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조 페시와 무척 닮았다.

에그 조는 육류 마니아다. 풀떼기, 비린 것은 “치다도 보기 싫어” 하는 식성인데 어릴 적에 엄마가 “만날 밥상으다 그런 것들만 올려싸서” 싫어한다. 그런 식성이다보니 밥상 위에 고기 반찬이 오른 날은 밥을 두 공기가 넘게 먹어치우지만 생선탕이나 나물 반찬이 오르면 말문을 닫고 한 공기도 먹는 둥 마는 둥.

군인, 붕어빵 장사 거쳐 여기에

아저씨.

아저씨는 전북 군산 어청도 출신이다. 나와 20년 지기로 그간 이 꼴 저 꼴 안 봐도 그만인 꼴까지 다 보며 함께 늙어가는 마당인지라 호칭은 아저씨지만 친구로 묻어가는 사이다. 아저씨 본인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일지 몰라도 중론을 모아보면 평생 백수로 살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붕어빵을 팔고 잠깐이나마 커피숍도 운영했고 가정주부로서 아내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붉은 청춘 불사른 것은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 해도 육체노동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인생이었는데 나이 쉰을 앞두고 주방보조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저씨는, 당연하게도, 에그 조와 반대로 말이 없다. 보통은 듣는 편이고 말을 해야 할 때만 몇 마디 하고 만다. 그러다보니 에그 조의 수다가 더욱 두드러지는데, 아저씨의 장점이라면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주는 것이어서 에그 조의 수다에 날개를 달아준다.

또한 아저씨는, 당연하게도, 에그 조와 반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애써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외딴섬에서 고기라는 것을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이다. 에그 조는 어린 시절 받아먹던 엄마의 밥상이 싫었던 반면 아저씨는 어린 시절부터 섬에서 먹어버릇한 음식에 길들여졌고 그와 비슷한 상차림을 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도 밥상 위에 비린 것이나 나물, 해초 등이 올라오면 반색하며 밥술을 들지만 닭이라도 삶고 고기라도 굽는 날이면 밥 반 공기도 먹는 둥 마는 둥.

“허따, 뭔 밥상에 젓갈이 이리도 많다냐”

일은 힘들고 벌이는 쥐꼬리만 한 게 식당일이라지만 불문율 한 가지가 있다. ‘밥은 준다’. 장사가 되고 안 되고는 사장 소관이고 끼니때가 되면 일하는 두 늙은이 밥을 챙겨줘야 하는데 두 사람의 식성이 이리도 다르다보니 한 상에 서로의 입맛에 맞는 밥을 차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올리기 시작한 밑반찬이 젓갈이다. 에그 조는 소시지 반찬이라도 입에 맞으면 잘 먹고 입에 맞지 않으면 “맛없다”며 구시렁거리기라도 하는데 아저씨는 통 말이 없으니 그의 입맛에 맞는 밑반찬이라도 잘 갖춰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황석어젓과 바지락젓만 무쳐 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젓갈 가짓수가 늘어났다. 부산에 들렀다 얻어온 멍게젓, 곰소에 들렀다 사온 갈치젓과 가리비젓, 지난해 충남 태안에 들렀다 사둔 자하젓과 코숭어젓까지 밥상에 올리자 에그 조는 볼멘소리를 내뱉고 아저씨는 반대로 환호했다. 나는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모두 잘 먹지만 그럼에도 고기보다 비린 것에 먼저 손이 가는 갯놈인지라 젓갈 반찬이 많은 밥상을 좋아한다.

멍게젓은 시원한 맛이, 갈치젓은 골탕한 감칠맛이, 가리비젓은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자하젓과 코숭어젓은 지난해 태안에 들렀다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자하(紫蝦)란 글자 그대로 보라색 새우를 뜻하고 코숭어는 숭어와 별개로 밴댕이와 비슷한 태안의 특산 어종이다.

지난해 여름 태안 신두리 해변을 어정거리다 뜰망으로 새우를 잡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모기장만큼 코가 가는 그물로 바닷물을 훑었는데 그때마다 아주 작은 새우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 노인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뜰채질을 해서 겨우 자하 한 바가지를 잡았다. 내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하젓을 담는다”고 노인은 대답했다.

자하는 살아 있을 때는 투명한 색을 띠지만 젓으로 담가 4~5개월이 지나면 보라색으로 변한다. 자하는 얼핏 보기에 곤쟁이나 백하와 비슷하지만 곤쟁이나 백하는 젓으로 담그면 회색을 띠고 자하는 보라색을 띤다. 그 맛은 곤쟁이나 백하와 비할 게 아니다. 잘 여문 암게로 담근 게장에서 붉은 내장만 골라 먹는 맛이랄까. 부드럽고 고소한 데다 단맛이 도는 감칠맛까지 풍부해 곧장 밥에 비벼 먹어도 일품이고 탕과 찜, 무침요리의 맛을 내기에도 제격이다.

코숭어젓은 태안 읍내 전통시장의 허름한 국밥집에서 처음 맛보게 되었다. 국밥에 새우젓 대신 코숭어젓이 나왔다. 황석어젓이나 갈치젓보다 골탕해 얼핏 삭힌 홍어를 먹는 듯했지만 입안에 감도는 감칠맛이 너무도 근사해 무슨 젓갈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늙수그레한 주인 아주머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코숭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게국지는 코숭어젓국으로 담가야 제맛인데 이제는 가정집이 아니고는 코숭어게국지를 맛보기 어렵다고 했다.

“허따, 뭔 밥상에 젓갈이 이리도 많다냐. 젓갈을 이렇게 고루가지로 차려놓고 먹는 집도 없을 것이네, 참말로.”

에그 조는 이렇게 볼멘소리로 반찬투정을 하고 아저씨는 처음 맛보는 코숭어젓과 자하젓 맛에 빠져 밥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그래서 며칠 뒤에는 토종닭 세 마리를 삶았다. 에그 조는 에그 조답게 혼자서 닭 한 마리를 먹어치웠고 아저씨는 아저씨답게 국물 한 모금 떠먹지 않았다.

50살을 코앞에 둔 겨울에 우리는

최근엔 일주일 간격으로 메뉴를 달리한다. 한 주는 에그 조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 다른 한 주는 아저씨 좋아하는 해산물 반찬 식이다. 가끔 에그 조에게 청국장을 강요하고 아저씨에게 달걀탕을 강요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숟가락이 오고 간다. 두 사람이 공히 좋아하는 음식은 회뿐인 듯하다. 횟집이 아닌 이상 날마다 회를 먹일 수 없는 일이므로 오는 12월 어느 날은 지천명을 앞둔 두 사람을 모시고 횟집에 들러 하루를 즐겨볼 생각이다.

두 사람 다 그간 하루도 녹록잖은 아비이자 지아비로 살며 기죽고 병들어 오십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휴식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자식들 대학 등록금에 뼛골이 으스러지는 아비 그대로다. 지천명을 알기 전에 밥이라도 한 상 푸지게 자시고 일어서시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늙은이들 밥은 챙겨드리리다.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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