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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자들은 진짜 그래?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부자들>에 등장한 언론의 생태, 현실 기자들이 대답한 리얼 라이프
등록 2015-11-27 05:15 수정 2020-05-03 04:28
위부터 반짝반짝영화사, 쇼박스 제공

위부터 반짝반짝영화사, 쇼박스 제공

영화와 드라마는 기자들을 좋아한다. 역사의 현장을 가장 앞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가난한 자들의 노래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고, 정치권력과 대형 자본에 날을 세워 말을 걸 수 있다. 더불어 노동 강도도 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할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11월19일 개봉한 영화 과 11월25일 개봉을 앞둔 (이하 )에도 기자가 나란히 나온다. 이 한 스포츠신문사의 초짜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에는 현실의 어떤 신문 이름을 떠오르게 하는 의 논설주간이 등장한다.

“기자처럼 안 생겼어요”

의 도라희(박보영)가 좌충우돌 사건을 헤쳐나가며 기사가 대중에 끼치는 힘을 서서히 알아간다면, 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펜 끝에 서린 힘을 오래전에 간파하고 이를 이용하는 인물이다. 이들 외에도 두 영화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 특종에 목매는 기자, 생활인으로서의 기자, 자본과 권력의 끈을 잡으려는 얄팍한 기회주의자로서의 기자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기자회견 현장에서 기자들은 늘 경쟁적으로 취재하고, 중요한 인물을 만나면 몸싸움을 하며 우르르 달려나간다. 어떤 이는 늘 말끔하게 정장을 하고 일상적으로 사회 권력층과 접촉하고, 어떤 이는 회사에서 세수하고 발 씻고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눈이 빨개져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대중매체에서 클리셰처럼 그려지는 장면들, 영화가 보여주는 기자의 일상을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기자들은 진짜 그래?”

“기자처럼 안 생겼어요.” 한 신문사의 8년차 기자 김아무개씨가 직업을 밝혔을 때 자주 듣는 말이다. 기자같이 생겼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 “공무원처럼 생겼다”고 밝힌 그는 “사람들이 기자라는 이미지에 영화 의 이방우(황정민), 의 수경(김옥빈), 의 오태석(지진희)과 같은 환상을 덧씌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방우는 거칠지만 열정과 카리스마가 넘치고, 수경은 털털하고 괄괄하지만 취재 중인 사건에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물이다. 오태석은 지적이고 사명의식이 투철하지만 독선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문화부에서 일하는 고아무개 기자는 요즘 “강동원 봤어?”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기자들은 세월호 현장에도, 민중총궐기 현장에도, 구제역 살처분으로 동물이 비명을 지르는 현장에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지만 먼 그대는 스타나 정치인이다. “연예인 자주 봐?” “정치 잘 알겠네.” 직업을 밝혔을 때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초짜 기자의 나날은 어떤가. 속 도라희의 일상은 늘, 부장에게 깨지고 김밥 한 줄 못 먹고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일)를 하다 술 마시고 뻗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기사를 쓰면, 사수로부터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분노의 일침뿐이다. “지금은 니 생각, 니 주장, 니 느낌 다 필요 없어!” 도라희의 동기들은 자신이 쓰는 기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볼 틈이 없고, 왜 이토록 압박적인 노동을 견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들 중 한 명은 왜 농구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기사를 쓰라고 시키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유력 신문사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왼쪽)와 스포츠신문사 연예부 기자로 갓 입사한 도라희(박보영)의 가운데에 현실 속 기자들이 있다. 쇼박스 제공, 반짝반짝영화사 제공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유력 신문사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왼쪽)와 스포츠신문사 연예부 기자로 갓 입사한 도라희(박보영)의 가운데에 현실 속 기자들이 있다. 쇼박스 제공, 반짝반짝영화사 제공

누가 내 머리 위에 물 부었어?

영화의 특성상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일견 신문사 말단 기자들의 삶과 닮아 있다. 박아무개 기자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뻗치기’를 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취재원이) 안 나올 게 뻔하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 했기에 벨을 두 번인가 눌렀다. 그러자 안에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나와서 내 머리 위에 부었다. 내가 가기 전에 이미 많은 기자들이 가서 벨 누르고 두드리고 별짓을 다 했을 테니 스트레스를 받아 작작 좀 괴롭히라는 뜻이었겠지만, 엄청 모욕감을 느꼈다.”

김아무개 기자도 눈물의 사건기자 시절을 풀어놓는다. “2009년 장자연 사건 취재 때 장자연 집 앞에서 20여 일간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뻗치며 장자연 오빠에게 한마디를 들으려 했다.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문틈에 편지를 써서 끼워넣기도 했다.”

전직 잡지사 기자인 박아무개(37)씨는 에서 도라희의 상사 하재관(정재영)이 회사 화장실에서 발을 닦고 바지를 둥둥 걷어올리고 나오는 장면을 보며 오래전 함께 일한 동료를 떠올렸다. “어느 마감날 아침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에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부서 입구에 놓인 의자에 흐트러져 걸려 있는 은갈치색 양복 바지와 삐죽이 보이는 맨발. 다행히 그 선배는 다른 바지를 입고 있긴 했는데, 마감을 하다 밤을 새운 건지 떡진 머리로 책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자리에 가면 고릿한 냄새를 자기도 아는지 꼭 향초를 구비해두더라. 독자에게 제일 인기 많은 기자였다.”

취재 현장에서 취재원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늘 있는 일이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김아무개 기자는 “요즘은 그런 경우가 자주 없지만 주요 사건 대상자가 검찰·경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 차량 추격전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중매체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취재 현장에 항상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지고 많은 취재진이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주최 쪽에서 전화를 돌려 방문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박아무개 기자는 “남들이 가지 않는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자들도 있는데,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의 힘을 아는 자의 위험성

영화 은 세파에 물들다 못해 능구렁이 같은 삶을 사는 어느 노후한 기자를 그린다.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의 논설주간 이강희는 자본과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언론인이다. 지금껏 원고지에 연필로 기사를 쓰는, 보수적 인물로 그려지는 그는 대중을 호도하는 글로 재계와 정계를 조종하고 ‘한자리’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성접대, 청부 폭력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언론인으로서 윤리의식을 내팽개치고 언론을 권력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쯤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기자 생활을 한 그는 말이 가진 힘을 일찍 알아차렸다.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 같은 말이어도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끗 차이의 단어가 여론의 방향을 설정하고,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호소력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현실의 기자들이 ‘언론이 권력’이라 느껴지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정치부에서 일하는 김아무개 기자는 “기업이나 정부부처를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기사를 쓸 때, 처음에는 고압적이던 취재원들이 저자세로 나올 때가 있다. 기사가 나간 날, 식사나 한번 하자며 취재원에게 연락이 오는데, 이때 젊은 기자들은 내가 뭐라도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정치인들은 정치부의 오랜 출입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정부 기관일수록 비판 기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기사 내용으로 여론이 형성되면서 정부 정책이 바뀌거나 총리나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물러나는 상황 등을 경험하면서 기자는 언론이 권력에 밀접하다는 것을 체득한다.

“걔네 기사로 조져버려.” 기자들이 무언가를 비판할 때 ‘조진다’는 말을 은어로 쓴다. 비판할 사안일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 감정을 담아 하는 말일 때도 있다. 사적 감정이 실제 기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박아무개 기자는 “그 말을 내뱉는다는 것 자체가 기자들 스스로 자신을 권력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들처럼 현직에 있다가 바로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만큼 언론과 권력이 가깝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과 을 모두 본 한 기자는 “은 모든 것을 전형적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게 함정이고, 은 재계를 좌지우지하는 언론권력을 그리려 했다. 둘 다 ‘보통의 기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보통의 기자들에게 기자란 무엇인가. 역사 현장의 일선에 서서 기록하는 자인가. 특종을 찾아헤매는 한 마리 외로운 짐승인가. 아니면 말의 힘을 이용하는 자인가. 정의 실현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시대의 사자인가.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터뷰를 한 기자들은 “모두 기자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실 대부분 의 우리는 평범한 월급생활자”라며 입을 모아 말한다.

기-승-전-‘넷’, 변화한 언론 현실 다뤄

흥미롭게도 두 편의 영화는 공히 변화한 언론계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했다. 에서 대형 연예기획사의 부정에 관한 기사가 외압으로 지면에 실리지 못하자 도라희의 팀원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사를 올린다. 의 검사 우장훈(조승우)은 이강희와 정·재계의 유착 관계, 성접대 현장을 폭로하기 위해 언론과 접촉하기보다 직접 SNS에 동영상을 뿌리는 방식을 택한다. 의 기자들은 SNS에서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취재하고, 에서도 SNS에 퍼진 동영상을 언론들이 다시 퍼나르며 후속 보도한다. 한 기자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기-승-전-넷’의 결말”이라고 표현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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