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이왕이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사진을 뒷모습이라도 찍자고 말했다. 출판사 편집자를 통해 전해들은 ‘309동 1201호’의 반응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사진 의뢰는 우선 접고 인터뷰를 하며 설득해볼까 생각하며 만남을 약속했다. 인터뷰를 앞두고 책을 마저 찬찬히 읽었다. 에필로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나는 굳이 출신 대학의 명칭이나 수준을 직접 명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물론 신분이 노출될까, 하는 나의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우회적으로라도 어느 수준의 대학임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곧 하위 범주의 모든 대학을 나 스스로 ‘지잡 아래의 지잡’으로 두는 것이 된다. 그러한 틀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
‘309동 1201호’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지방대에서 학부과정을 마쳤고, 지도교수의 연구 업적에 감명받아 모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묵묵히 같은 대학 박사과정도 수료했다(현재는 박사과정 수료 4년차로 박사논문을 쓰는 중이다).
‘309동 1201호’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이다. 일주일에 4일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4시간 맥도날드에서 ‘딜리’ 업무를 한다. 냉동, 냉장, 건자재 대략 150박스를 트럭에서 내려 유통기한에 맞추어 영하 20℃ 냉동고 등에 진열한다. 그리스트랩(배수관) 청소, 워시(설거지), 오일 필터링(기름 교체) 등도 한다.
맥도날드에서는 어떻게든 월 60시간을 채운다. 그래야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이 보장된다. 정년퇴임을 앞둔 아버지를 대신해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그에게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되는지 물으셨다. 물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대학은 그에게 부모를 부양할 4대 보험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피부양’ 상태이며 내 부모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은, 나를 무척 주눅 들게 만들었다.”
대학이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보장은 맥도날드가 해줬다. 2014년 초여름 맥도날드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반기는 부모님께 지도교수님이 연구원으로 등록해줬다고 거짓말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한평생 열심히 일해 가족을 피부양자로 든든히 품어준 내 아버지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서럽고… 그저 너덜너덜하다.”
는 지방대에서 학생들에게 4~6학점 강의를 하고, 1년에 1편 학진(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위해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월 60시간 이상 반드시 노동하는 서른셋 청년의 일기다. 지난해 9월16일~12월31일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연재했던 글과, 이후 온라인 언론 에 연재한 글을 묶었다.
첫 글을 올렸던 2014년 9월16일은 매우 바쁘고 힘든 날이었다. 수업과 학과 회의, 학생 면담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가장 바쁘게 했던 건 수업 전 보게 된 잘 모르는 40대 선배 시간강사의 전자우편이었다. 미처 컴퓨터를 끄지 않고 강의실을 나간 선배 강사의 전자우편을 닫으면서 창에 떠 있는 글을 보게 됐다. 10만원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글에 대한 답신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방학에는 수입이 아예 없는 시간강사야. 지금 내가 빌려줄 수 있는 돈은 5만원이야. 정말 미안해.” 글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5만원은 꼭 갚아주길 부탁한다. 정말 부탁해.”
5만원을 갚아달라고 재차 부탁하는 전자우편에서 찌질함은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그 사람의 처지와 생계가 깊이 와닿았다. “나라도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날 내내 질문이 따라다녔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대학의 노동자로,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가. “내 지난날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글 한 편이 커뮤니티에 올라가 있었다. 그 글은 30분 만에 썼다.”
“5만원은 꼭 갚아주길 정말 부탁해”첫 글 뒤 결코 쉽지 않았던 ‘대학원생의 시간’들을 기록해나갔다. 정규직 직장인으로 자리잡은 친구들과의 격차로 인해 멀어지게 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학자금 대출 이자 독촉을 받으며 네팔 아이 꾸마우더리의 후원금을 끊게 된 이야기, 연구원 등록이라는 희망 고문, 무심하게 그를 상처 입히고 지나간 교수·선배의 말들….
분노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점차 ‘대학이라는 착취의 구조’를 인식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연재 초기 “나는 그저 대학에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펐고 그 원망이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 선후배 연구자, 지도교수에게 가서 닿았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결국 그들도 대학이라는 괴물 안에서 을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시스템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임을” 깨달았다. 온라인 연재글에 달린 ‘정말 나의 이야기다’라는 수많은 공감들은 이 글이 ‘박복한 청춘을 보낸 어느 한 대학원생의 징징댐’이 아니라 “대학뿐 아니라 사회 어디에도 지방시(지방대 시간강사)는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기록한 “세대성의 기록”임을 일깨웠다.
‘대학원생의 시간’을 예민하고 아프게 통과한 ‘309동 1201호’는 ‘시간강사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아픈 시간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선생님이 됐다. 학기가 시작하면 2주 안에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 걸 원칙으로 한다. 강의실 안에서 그 누구도 들러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공평한 시선을 주고, 모두의 움직임을 기억해 발언 기회를 주고 학생 간 위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5차례 강의 중 4차례 ‘우수강사’로 평가받았다(교수 임용 이력서에 우수강사 이력을 쓸 자리는 없다). 가르치는 자, 배우는 자 모두 ‘갑’이 되는 ‘갑갑한 공간’이 그의 강의실이다.
‘309동 1201호’라는 필명은 그가 책 속에 쓴 시간을 버텨낸 집의 주소다. 첫 맥도날드 노동 뒤 연구실에 가기 전 쉬러 들렀다가 깜깜해져버린 바깥을 보며 ‘왜 내 몸은 이걸 못 버티나’ 눈물 날 만큼 억울했던 날, 멋모르고 사회인 동호회에 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연구실로 돌아간 날, ‘언제 선상님이 되는 거냐’ 물으시던 할머니에게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하고 부음을 들은 날, 그 깜깜한 날들에 그를 위로해준 공간이다. 언제건 ‘309동 1201호’ 시절을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썼다.
모두 갑이 되는 ‘갑갑한 강의실’그는 오늘도, 내일도, 당분간은 주 4일 맥도날드에서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연구실로 갈 것이다. 갚아야 할 2천여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있고, 머리카락 속 감춰진 4개의 원형탈모가 있다. 이곳은 여전히 ‘헬조선’이다. 그는 그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글로 말한다. “그다지, 살 만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습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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